새의 친구
20여 년째,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낙동강하구에서 망원경과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새를 쫓아가는 남자가 있다. 새들의 삶터, 습지의 보존 가치를 알리며 운동을 펼치는 환경 NGO,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활동가 박중록 얘기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에서 치열한 환경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것만 봤을 땐 조류학자 혹은 전업 활동가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본업이 ‘선생님’이다. 새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지난해 8월까지 약 31년간 부산 대명여고에서 생물 교사로 일했다. 아이들에게 시험 치는 기술, 교과서 안의 죽은 지식을 넘어 살아 있는 자연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이하 환생교)’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자연을 접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아이들과 환경 관련 활동을 하면서 낙동강하구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새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 낙동강하구를 본격적으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경험을 만들어주던 교사에서 습지와 새들을 보호하는 환경 운동가가 되기까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나?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이 파괴된 대표적인 장소이자, 여전히 한국 최고의 철새 도래지이자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숱한 새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아가던 차, 부산시가 이곳에서 진행 중인 갖가지 개발 계획을 알게 됐다. 2000년에 본격화된 부산시의 명지대교(을숙도대교) 건설이 큰 계기가 되었다. 우리(환생교)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뜻이 모여 2000년 10월 8일, 우리나라 최초의 습지보전전문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시작됐다.
15년 넘는 세월 동안 매달 주말이면 낙동강하구에 나가 탐조 활동과 조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
17년째 매월 1회 도요물떼새를 비롯해 낙동강하구에 서식하는 혹은 머무르는 조류를 조사하고 있다. 습지를 지키고 알리는 일 역시 주요 활동이다. 6년간 을숙도대교 건설 반대 운동을 했고 지금은 또 다른 개발사업인 대저대교, 엄궁대교 등의 교량 건설 철회와 변경을 요구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습지NGO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국내 습지의 무분별한 파괴를 막고, 이를 위해 람사르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참석, 한일습지포럼 개최와 같은 국내외 연대 활동도 힘 닿는 대로 펼치고 있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탐조를 통해 ‘낙동강에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보존 등급이 가장 높은 멸종위기종 1급 11종을 비롯해 280종, 34만 마리의 새가 관찰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낙동강하구는 환경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던 1960년대에 철새도래지로 문화재보호구역(천연기념물제 179호)으로 지정된 곳이다. 지금은 문화재보호구역 외에도 습지보호구역 등 5개의 법으로 정부가 중복 지정해 보호하는 세계적인 습지다. 그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가 새들이다. 낙동강하구를 대표하는 겨울새가 우리에게 ‘백조’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큰고니이고, 여름새가 역시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쇠제비갈매기다. 매년 3000~4000마리가 도래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조가 3000마리가 찾아오는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 밖에 넓적부리도요, 노랑부리백로, 청다리도요사촌, 저어새 같은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숱한 새들이 이곳을 삶터로 살아간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가 줄었다’라고들 하지 않나. 현실은 어떤가?
낙동강하구를 대표하는 여름새, 쇠제비갈매기 번식개체군은 지금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겨울새 큰고니(백조) 역시 3000마리대에서 3년 전부터는 절반, 올해는 1000마리대로 급감했다. 새들이 사라진다는 말은 새의 삶터, 자연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자연은 우리 생존의 토대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마실 물, 벼와 같은 식량이 모두 자연, 습지에서 온다. 자연이 사라지면 사람도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대가가 미세먼지의 증가, 일상적인 기상이변, 전염병 등이다.
최근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낙동강하구에서 여름 철새인 제비를 발견했다던데.
지난 1월 13일, 가장 추워야 할 때 낙동강하구에 제비가 나타났다. 반가움보다 기후 위기의 실체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아열대 기후 지역에 서식하는 검은이마직박구리, 긴꼬리때까치 등이 전국에 텃새로 자리 잡았다. 해마다 찾아오던 흑기러기, 고니, 검둥오리사촌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낙동강하구의 습지와 새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1990년대, 환경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오직 개발만이 지상 과제였던 시기에 수립된 도시계획이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거다. 부산시는 지금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대저대교, 엄궁대교, 장락대교 등 10개의 교량과 3개의 내수면 마리나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인데, 교량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백조(큰고니)의 핵심 서식지를 관통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갖고 있는 핵심 보호정책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20년 가까이 이어온 긴 조류 탐사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2008년 4월 20일, ‘얄비’를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북반구에서 남반구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먼 거리(약 3만km)를 여행하는 ‘큰뒷부리도요’의 애칭으로 다리에 YRBY(Yellow, Red, Blue and Yellow) 컬러의 가락지 4개를 차고 있어 붙인 별명이다. 무게가 고작 250~300g에 불과한 이 작은 새는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의 툰드라에서 태어나 자란 뒤, 땅이 얼기 시작하면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남반구로 1만1700km를 비행한 후 거기에서 짧은 겨울을 난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약 한 달간 낙동강하구에 머물며 배를 채우고 체력을 보충하는 모습을 무려 4년 동안 지켜봤다. 이 놀라운 이야기에 감동한 KNN의 진재운 프로듀서는 얄비의 여행을 기록한 <위대한 비행>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 작은 새가 평생을 남반구에서 북반구까지 죽지 않고 이동하는 일이 가능한가?
새들의 이동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얄비는 뉴질랜드 마나와투 강 하구에서 낙동강하구까지 일주일 밤낮을 쉬지 않고 날아온다. 알래스카에서의 번식을 끝내고 뉴질랜드로 돌아갈 때는 무려 열흘간 멈추지 않고 비행한다. 새들의 이동을 생각하면 그저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습지는 그 긴 여정의 휴식처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덕분에 2011년까지 총 네 번 얄비를 만났다. 2012년 봄, 우리는 얄비와의 다섯 번째 만남을 기대하며 환영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얄비에게 가락지를 채운 뉴질랜드의 조류학자 제시 콘클린에게 소식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2011년 겨울에 얄비가 뉴질랜드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갈을 받았다. 낙동강하구에서 알래스카로 비행하는 중 죽었는지, 지구온난화로 고래, 물개 등을 잡기 어려워진 에스키모의 사냥감이 되었는지, 뉴질랜드로 돌아가는 태평양 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났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얄비의 친구들, 다른 큰뒷부리도요의 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해 그 지구의 순례자들의 수가 나날이 줄고 쉴 곳이 사라져 여행이 날로 위태로워지고 있어 무척 마음이 아프다.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비둘기, 참새, 까치가 유일한 ‘버드워칭’의 대상이다. 더 많은 새를 만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낙동강하구, 순천만, 금강하구, 한강하구, 강화갯벌, 주남저수지, 우포늪과 같은 이름난 곳만 습지가 아니다. 논, 개울, 얕은 바다처럼 물이 있는 모든 곳이 곧 습지다. 거기엔 항상 물새가 있다. 새들이 살지 않는 곳은 없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어디에서나 새들을 만날 수 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와 집 마당에는 ‘선녀탕’이 있다. 사람들이 버린 장독뚜껑과 불고기판을 가져다놓은 후 붙인 이름인데, 매일 여기에 새를 위해 물을 채워놓는다. 맑은 물을 찾지 못한 도심의 새들이 매일 내려와 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고 간다. 마음만 있다면 매일 눈앞에서 그 아름다운 존재를 만날 수 있다.
‘새에 관심을 갖는 일’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새는 지구와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새들의 안위가 곧 자연의 안위다. 보이던 새들이 안 보이면 자연이 사라졌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 인간의 삶의 토대가 무너졌다는 신호다. 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새들의 노래 소리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는 일을 버드워칭(Birdwatching) 혹은 탐조라고 부른다. 산업화 과정을 먼저 거치며 자연의 소중함을 먼저 깨달은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여가에 버드워칭을 즐긴다. 새를 만나는 일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보길. 그게 자신의 삶터를 지키는 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에디터
- 류진(프리랜스 에디터)
- 포토그래퍼
- WETLANDS & BIRDS KOREA, W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