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소리와 로빈 미나드

캐나다의 작곡가 겸 설치 아티스트로 1980년대부터 음향설치 작업을 해왔다. 콘서트홀 바깥의, 공공장소에서의 음향에 흥미를 느끼며 다양한 방식의 듣기에 집중한다. 작곡을 전공했고 소리를 설치하며 공간을 바꿔나간다. 그는 로빈 미나드다.

이번 전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디뮤지엄이 제안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전형적인 화이트 박스가 아니었고 그래서 공공장소(Public Area)에 음향설치를 하는 기존의 작업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팀이 참여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단독 전시와는 무엇이 다른가?
다양한 방식의 듣기를 경험할 수 있다. 음악이나 자연을 들을 때의 방식은 확실히 다르지 않나. 건축이나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부피나 형태에 따라 소리와 듣는 경험은 언제나 변화한다. 공간 역시 소리에 따라 다른 곳으로 바뀌기도 하고. 나의 작품을 포함해 이번 전시는 그런 변화를 지향하고 보여주고자 한다.

소리로 공간이 바뀐다는 건가? 
공간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귀로 듣는 행위는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소리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공간을 아주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간을 ‘듣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간에 특정한 소리를 설치한다면 그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결국 그 공간은 다른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말하자면 공간은 유동적인 것이다. 햇빛에 따라 건축이 다르게 보이듯 소리 또한 공간을 바꾸어놓는다.

여러 곳에 작품을 설치해왔는데 공간마다 어떤 걸 신경 쓰는지 궁금하다. 
공간에 들어설 때부터 그곳을 이해하려 한다. 그곳에 들어설 때 무엇을 보고, 어떤 순서로 둘러볼지, 공간의 어떤 요소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한다. 설치미술은 관계를 맺는 예술이다. 무엇을, 어디에서, 왜 하는지 관계를 찾아야 한다. 고정된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Climate Change’라는 작품명이 눈에 띈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날씨가 바뀌는 것처럼 공간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작은 스피커들과 저마다의 소리, 진동 사이를 지나며 느껴지는 공기나 기후의 변화 같은 것들. 그와 동시에 우리가 그렇게 공간을, 변화를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하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바꾸기로 결심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할 거다. 환경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아주 자연적이면서도 도시적인 소리로 느껴진다.
우선, 자연의 소리가 아니다. 잘 들어보면 400여 개의 작은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미세한 소리들은 모두 전자음이다. 이어진 전선과 스피커를 통해 분명 인공적인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계속 자연적인 소리로 느끼는, 이중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에 대해서 묻고 싶기도 했다. 우리는 스스로 자연을 지배하고, 다루고 있다고 여기지만 정작 무엇이 자연인지 그 경계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지 않나.

예술과 소음의 경계는 어떤가?
공간에 따라 다르다. 나는 가끔 도서관에 소음을 위한 장치도 설치하는데 ‘침묵’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침묵이라 여기는 건 엄밀히 말해, 객관적으로 고요한 진공상태가 아니다. 그렇게 아무 소리도 없는 곳에서는 작고 미세한 소리마저 오히려 크게 느껴지니까. 아주 가벼운 소음을 설치함으로써 큰 소음을 덮을 수 있다. 사실상 소음은 공간의 침묵을 만들어내는 꽤 중요한 요소이고 예술적이라 여겨지는 소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Robin Minard, SILENCE(BLUE)-Galerie VOXXX, Chemnitz 2003

공간을 덮은 푸른빛이 인상적이다. 푸른색을 선택한 이유는?
파란색은 특별하고 특이한 색이다. 차분하면서도 우울하고, 자연적이다. 샤갈이 사랑한 색이기도 하고. 같은 공간이더라도 파란빛으로 가득 차면 낯설게 보이고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나. 그런 인식의 변화도 재미있다. 마치 꿈속에서 현실과 공간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그런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의 소리는 어떤가? 
교통소음이 다른 모든 소리를 덮어버린다. 대도시의 대부분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를 도입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건축은 아름다운 건물을 올리지만 건물의 소리까지 신경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도시의 소리와 소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때다.

일상에서는 무엇을 듣나?
아주 많은 것들, 거의 모든 것.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걸 꼽자면 자연의 소리다. 돌아다니며 직접 레코딩을 하기도 하는데 비와 눈 오는 소리를 녹음하는가 하면 때때로 침묵을 담기도 한다. 작년에는 브라질에서 열대우림의 소리를 들었다.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다.

음악은 어떤가?
작곡을 공부했기에 당연히 다양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한다. 클래식부터 팝, 거의 모든 것을 듣는다. 바흐를 연주한 글렌 굴드, 사운드 아티스트인 앨빈 루시에를 특히 좋아한다. 클래식과 현대음향의, 거의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사이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인스타그램이 전시 관람 문화를 많이 바꾸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이기도 한데, 이런 태도에 거부감은 없나?
인지와 감상의 방식이 고착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언젠가 캐나다의 보트에서 엄청난 경관을 본 적 있다. 그런데 한 남자는 그 놀라운 풍경을 그저 카메라를 통해서만 보고 있었다. 사진이 잘 찍혔는지 동영상이 제대로 찍혔는지만 체크하며 자연이 아닌, 자연의 이미지만 보는 거다. 이번 전시가 공간과 소리인 만큼 그것에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소모하고 소비하는 게 늘어나는 시대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집중했으면 한다. 순수하게 듣기,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개최 일정이 늦춰졌는데, 이제 무엇을 할 계획인가?
아쉽지만 나는 이번 주에 돌아간다. 오프닝과 사람들이 어떻게 듣는지 직접 보진 못하겠지만 계속 전해 들을 예정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발견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계속해갈 생각이다. 안녕히, 또 봐요.

    에디터
    정지원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COURTESY OF D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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