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작’ 열전! 넷플릭스&왓챠플레이 정주행 리스트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에서 건져 올린 정주행 리스트.

<킬링 이브> | 왓챠플레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한국어 수상 소감으로 우리를 울컥하게 만든 산드라 오에게 골든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다. 영국 소설가 루크 제닝스의 소설 <킬링 이브: 코드네임 빌라넬>을 원작으로 삼은 이 시리즈는 꿈은 첩보원이지만 현실은 책상 앞에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는 영국정보국(MI 5) 직원 이브가 주인공이다. 빌라넬이라는 여성이 얽힌 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벌이는 추격 게임이 주요 내용이다. 여성 스파이 둘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하는 방식부터 기존 스파이 장르의 틀을 깨는 요소로 가득한데 남자 캐릭터들은 이들 주변에서 업무를 돕거나, 무참히 살해당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간 수많은 액션과 스릴러물에서 남자 킬러에게 죽임을 당한 여성 캐릭터들의 원한을 갚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시즌 1, 2는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4월 22일에는 시즌 3도 공개된다.

<닥터 포스터> | 왓챠플레이

<부부의 세계>를 본방 사수하고 홈쇼핑 채널로 돌렸는데 쇼호스트의 “자, 지금 부세 끝나고 들어오신 분들 어서 오세요”라는 멘트에 괜히 뒤를 한 번 돌아본 일이 있다. SNS 피드는 실시간 감상평과 실황 중계로 도배되니 가히 오랜만에 목격하는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극한의 이야기에 압도되고야 마는 건 온전히 배우 김희애의 에너지와 능력 때문일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부부의 세계>는 영국 BBC에서 2015년 시즌 1과 2017년 시즌 2를 방영한 <닥터 포스터>를 기반으로 한다. 영국에서 방영할 당시 평균 시청자가 약 1000만 명에 달했고 최고 점유율은 경쟁 채널의 3배가 넘었으며, 같은 해 영국에서 방영된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매 방송이 마지막 회 같은 이 기묘한 드라마의 진짜 마지막은 영국판 결말을 참고하면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주요 스토리는 같지만 양쪽을 모두 봤다면 다른 디테일을 찾아내는 재미가 생긴다. 왓챠플레이에서는 <부부의 세계> 무삭제판과 원작 <닥터 포스터>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부부의 세계>는 매회 본방송이 끝난 직후 공개된다. 지금 막 6회 방송이 끝났다. 이태오가 고산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 넷플릭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건 도무지 익숙해질 줄 모르는 감각일 것이다. 사고로 친언니를 잃은 소녀 바이올렛은 그 트라우마를 쉽사리 지우지 못한다. 세상에 문을 닫고 그저 그렇게 버티던 그는 어느 날 언니가 죽은 다리 위로 향한다. 위험천만한 순간 거기에는 소년 시어도어가 있었다. 술과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청춘물이 난무한 지금,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는 제목만큼이나 보기 드물게 예쁜 사랑 영화다. 소녀와 소년을 가깝게 잇는 건 버지니아 울프나 체사레 파베세의 시구절이다. 이제 둘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누구보다 단단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고 있는 젊은 배우 엘르 패닝의 사랑에 빠진 눈동자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 넷플릭스

작가 데보라 펠드먼의 회고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뉴욕 윌리엄스버그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보다 많은 유대인이 산다. 뉴욕의 정통 유대인 하시디즘 공동체 속 에스티의 선택을 그린다. 엄격한 공동체 규율과 답답한 결혼생활에 숨 막혀 하던 그는 마침내 탈출을 감행한다. 자유의 도시 뉴욕에서 자유의 도시 베를린으로의 탈출은 이 이야기가 그리는 모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품은 한 여성의 용감한 여정을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로 그리는 것보다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재단하는 공동체의 부조리한 모순을 신랄하게 드러내는 데 관심이 있어 보인다.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리즈는 짧지만 강렬하다. 시리즈를 다 보고 여운이 남는다면 독립된 콘텐츠로 제작된 <그리고 베를린에서 메이킹>을 연달아 보기를 권한다.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는 물음표가 정리될 거다.

<마인드 헌터> | 넷플릭스

시즌 2까지 제작된 지금, 범죄심리에 호기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미 교과서 같은 존재로 등극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미국에서 무차별적 범죄가 급증한 1970년대 기존의 수사 방식으로는 범인 검거에 한계를 느낀 FBI 행동과학부 요원들이 전혀 새로운 수사 방식을 발견하고 구축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인터뷰하며 연쇄살인이라는 정의를 처음 만들어내고, 왜 많은 사이코패스 성향의 연쇄살인범이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는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설명이 담겨 있다. 원작 소설 <마인드 헌터>를 먼저 알아본 건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다. 판권을 사들인 그가 범죄 스릴러 장르 전문가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게 제작과 연출을 제안한 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애틀랜틱스> | 넷플릭스

러닝타임 내내 당혹과 흥미로움이 차례로 지나간다. 서사는 느슨하고, 심지어 뚝뚝 끊어지는데 어느 순간 장르적 무드마저 부침개 뒤집듯 아무렇지도 않게 휙 엎어버린다. 우리가 잘 모르는 세네갈의 풍경과 보편타당한 사랑 이야기를 아리송하게 펼치더니 별안간 초자연적인 SF 장르의 탈을 쓴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정확한 문장으로 증명하는 건 좀 어리석다. 마티 디옵 감독은 세네갈계 프랑스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영화 안에 투영한다. 카메라는 몇 번쯤 우두커니 바다를 향하는데 잔잔한 물결 속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때 <애틀랜틱스>는 그 다음 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극장 개봉은 하지 않았고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이어즈 앤 이어즈> | 왓챠플레이

영국 B BC와 미국 HB O가 공동 제작한 시리즈로 한국에서는 왓챠플레이에서 독점 공개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지지자인 나는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기 위해 왓챠플레이 결제를 결심했을 정도다. <닥터 후>의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각본과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브렉시트 이후 근 미래 영국의 한 가족이 겪는 시련과 고난, 옅은 희망을 그린다. 신랄한 정치 풍자와 S F적인 상상력을 끌어와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무역 전쟁, 난민 문제와 전염병까지 상상에 기반한 이야기라고 웃어넘기기엔 소름 돋게 현실적인 이슈를 능숙하게 녹여낸다. 기술 발달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디스토피아적 감수성으로 그려낸 또 하나의 작품 <블랙 미러>를 한층 더 확장하고, 그 변화의 틈에 있을 법한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까운 미래의 암울함을 일상으로 끌어낸다. 혐오와 분열의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랑이라고 말하는 마지막이 어쩐지 시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디빈: 여신들> | 넷플릭스

올해는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지만 매년 5월엔 칸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수상작 발표가 끝나면 꼭 다시 찾아보는 부문이 있는데 바로 최고의 장편 데뷔작에 주어지는 ‘황금 카메라상 ’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감독과 배우가 등장할 확률이 높으니 이 상의 수상작이 국내에 개봉하는 일은 잘 없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2016년 황금카메라상 수상작인 <디빈: 여신들>의 독점 배급권을 사들이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지금, 지난 몇 년간 세상에 나온 최고의 성장 영화 중 한 편을 안방에 누워 볼 수 있다. 파리 변두리에 사는 소녀는 가난하다. 그는 부자가 되거나 부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죽는 게 인간의 삶이라고 믿는다. 출구 없는 현실 속에서 어김없이 희망을 좇아 달린다. 성장 영화의 법칙을 고스란히 따르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삶은 늘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에디터
    최지웅
    포토그래퍼
    COURTESY OF NETFLIX, WATCHA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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