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대란의 신상 향수를 글로 맡아본다? 향덕의 리뷰 8탄
글로 향을 맡은 적 있나요? 갓 나온 따끈따끈한 5월 신상 향수와 곧 우리 곁으로 찾아올 6월의 신상 향수 중 딱 3가지만 골라 리뷰했습니다.
자라 Emotions Collection by Jo Loves 워터 릴리 티 드레스 90ml 4만9천원
자라와 조 러브스 창업자인 조 말론 CBE 여사가 콜라보한 향수. 패션 컬렉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총 8가지 향으로 각자 독특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 8종 중 에디터의 취향을 저격한 ‘워터 릴리 티 드레스’는 베르가못, 스피어민트, 머스크의 조합으로 부드러운 재즈 음악과 함께 푸른 잔디 위에서 피크닉이 한창. 부드러운 바람에 빈티지 티 드레스가 기분 좋게 흩날리는 느낌을 담았다.
향 노트 베르가못, 스피어 민트, 머스크
어떤 향?
매우 청량한 느낌에 사랑스러움 한 스푼을 섞은 물향. “부드러운 재즈 음악이 흐르고, 푸른 잔디 위에서 피크닉이 한창. 부드러운 바람에 빈티지 티 드레스가 기분 좋게 흩날립니다” 라고 설명한 공식 소개글이 정확하게 들어 맞는 느낌이다. 꼭 빈티지 드레스가 아니더라도 포말한 정장에, 캐주얼룩에도 무난히 어울릴 향이지만.. 베르가못 특유의 상쾌함으로 시작했다가 머스크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마무리되며, 전체적으로 촉촉히 젖은 듯한 물 비린내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공개된 노트에는 없지만 ‘은방울 꽃’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향수들과 상당히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조말론의 ‘와일드 블루벨’이 아주 쉽게 연상됐다.
안 읽어도 상관없는 에디터의 사족
8가지 향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에보니 우드’를 재치고 ‘워터릴리 티 드레스’를 선택한 이유는? (아무도 궁금해하진 않겠지만) ‘에보니 우드’는 계절감에 맞지 않게 끈적하고 무거운 느낌의 향이었기 때문. 멋대로 베스트 3위 까지 뽑아보자면 1위 워터릴리 티 드레스, 2위 보헤미안 블루벨, 3위 베티버 팜플무스. ‘베티버 팜플무스’는 라임즙을 뿌린 듯한 상큼 그 자체의 시트러스 계열 향, ‘보헤미안 블루벨’은 라벤더를 한아름 품에 안은 듯 풍성한 향이다. 특히 보헤미안 블루벨은 상당히 흔하지 않은 향이라 시향을 하자마자 구매욕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판매 개시됨과 동시에 품절이 속속 뜨고 있다고 하니 얼른 구매를 서둘러야겠다.
바이레도 릴 플레르 오 드 퍼퓸 100ml 29만원대
바이레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벤 고헴’이 10대 초반의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느낀 10대의 순수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역동적으로 담은 향. 플로럴 계열의 향수로 탠저린, 블랙 커런트로 생기있게 시작하다가 다마스크 장미, 샤프론, 레더가 섞여들어 중성적인 매력을 뽐낸 뒤 우드, 앰버, 바닐라로 안정감있게 마무리된다.
탑노트 블랙커런트, 탠저린, 샤프란
하트 노트 다마스크 장미(오일), 레더
베이스 노트 블론드 우드, 앰버, 바닐라
어떤 향?
전체적으로 장미향이 강하게 남는 편이지만 레더 노트와 우디 베이스가 마냥 사랑스런 꽃향으로 남을 수 있는 향을 중성적으로 살짝 비튼다. 불완전하고 성숙하지 않은 10대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바이레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벤 고햄’의 말처럼 예쁜 꽃 향 같다가도 어딘가 불완전하고 씁쓸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느낌. 베이스 노트가 다소 무겁게 보이지만 앞서 말했듯 장미향이 상당히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느끼하거나, 묵직한 느낌 없이 그대로 산뜻하게 남는다.
향 자체는 10대에게 잘 맞을 것처럼 엄청 달거나 가볍지는 않다. 실제 10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향수 몇 개(마크제이콥스, 랑콤, 페라가모 등)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상당히 성숙한 편. 여기서 벤 고햄이 말한 대목을 다시 곱씹어보면 이해가 빠를 듯. ’10대를 위한/10대에게 잘 맞을 것 같은 향’이 아니라, ‘사춘기 딸을 둔 아버지의 시점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10대의 똥꼬발랄함과 널뛰는 감정을 표현한 향’이다.
비슷한 향
스파이시하고 신비로운 장미향을 표현한 ‘조 말론의 로즈 앤 매그놀리아’, 로즈와 레더의 조합으로 중성적인 매력을 표현한 ‘프레데릭 말 로즈 앤 뀌흐’
안 읽어도 상관없는 에디터의 사족
이 향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이렇다. 1) 향 너무 좋을 것 같아 기대돼요..! 2) 10대의 향??? 참나… 그럼 늙은 여자의 향도 있나??? 향 자체는 좋은 것 같으니 마케팅 제대로 하세요. 3) 아재가 10대 밈써서 만든 변방의 래퍼같은 향수 이름 뭐냐… 10대들이 플렉스로 지를만 하긴 하네요
에디터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전지적 아빠 시점, 사춘기 10대 소녀를 키우는 가장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향(??) 적어도 위의 반응들처럼 10대를 위한 향이라는 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 노트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하트 노트와 베이스 노트에 각자 한 개씩 묘하게 뒤틀리는 노트를 배치해놨는데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의 불완전함, 순수하고 발랄하지만 때로는 무모하고 철없는 점들을 표현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그가 실제로 10대 소녀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묘하게 찡해진다.
겔랑 아쿠아 알레고리아 오렌지 쏠레이아 오 드 뚜왈렛 75ml 11만원 (6월 1일 출시 예정)
블러드 오렌지, 우드 노트, 베르가못이 어우러진 시트러스 프레시 계열 향수. 석류, 세이지, 장미가 어우러진 ‘그라나다 샐비어’와 함께 선보이는 겔랑 아쿠아 알레고리아의 새로운 향이다. 반짝거리는 햇빛과 함께 시칠리아의 시트러스 숲에서 난 신선한 오렌지를 맛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탑 노트 베르가못,핑크 페퍼콘
미들 노트 블러드 오렌지, 패티 그레인, 민트
베이스 노트 우드 노트, 통카빈, 머스크
조향사 티에리 바세(Thierry Wasser)
어떤 향?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오렌지에 코를 처박고 숨을 들이쉬면 나는 냄새, 혹은 라임즙이 듬뿍 들어간 프로즌 마가리타의 첫 맛. 주스 컬러부터 이름까지 오렌지향이 매우 강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베르가못과 민트향이 제일 강하게 남는다. 탑 노트와 미들 노트의 강렬함 때문일까 베이스 노트의 통카빈, 우디 노트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하게 상큼하게 잔향이 남는다. 특이한 점은 민트가 섞여 아주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함께 든다는 것. 브랜드에서는 이를 ‘산들바람이 부는 넓은 시칠리아 시트러스 숲에서 까먹는 오렌지’라고 표현했지만 산들바람 보다는.. 초가을의 좀 더 차가운 바람이 떠오른다. 푹푹 찌는 여름에 뿌리면 몸 온도가 더 낮아질 것 같은 향이라서 확실히 봄보다는 여름에 어울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 조각난 라임을 타코 위에 쥐어짠 뒤 손가락에서 나는 냄새와 매우 흡사하다고 느껴졌는데 궁금하다면 직접 시향해보시길.
안 읽어도 상관없는 에디터의 사족
아쿠아 알레고리아는 대학 새내기 때 어머니께 처음 선물 받은 향수. 그 때문일까 같은 향은 아니지만 아쿠아 알레고리아만의 보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감정이 생긴다. 그 이후로 아쿠아 알레고리아 라인에는 아주 많은 향이 생겨났지만 새내기 시절 ‘그 향’처럼 특유의 순수하고 청량한 이미지는 언제나 한결 같이 느껴진다. 다만 그 때 보단 나이를 먹어 좀 칙칙해졌기(?) 때문에 지금 뿌리기엔 살짝 가벼운 느낌이다. 결론은 30대 보단 20대에게 추천…
최신기사
- 에디터
- 송예인
- 사진 제공
- 자라, 바이레도, 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