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DIFFERENT / 심은우

어제와는 다른, 느리지만 선명한 배우 심은우의 오후.

옅은 블루 컬러 드레스는 잉크(Eenk). 골드 펜던트 네크리스는 포츠 1961(Ports 1961).

<부부의 세계>가 끝난 지 3주쯤 지났네요. 좀 달라졌어요?
처음 대본만 보고 잘될 것 같은 느낌이 왔어요. 이야기도 흥미로운 데다가 최고의 팀이 모였으니까요. 근데 이렇게까지 폭발적일 줄은 몰랐어요. 드라마가 잘됐다고 해서 달라진 건 체감하지 못했는데 몇 개의 예능에 출연하고 나니까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알아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것도 참 좋지만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선택할 기회의 폭이 넓어졌다는 게 제일 소중해요.

불현듯 등장한 신인 배우로 짐작했는데, 데뷔가 2015년이더군요.
덕분에 요즘 지난 시간을 복기하게 됐어요. 당장의 기쁨도 기쁨이지만, 지난날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힘들 때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니 아름답더라고요. 작은 작품 하나 만들고자 지지고 볶던 날, 밤새워 연습하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은 없을 거예요.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커요.

노래와 춤 등 다양한 분야의 실력도 출중한 것으로 알아요. 
먼 미래보다 오늘 맞닥뜨린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어요. 그때그때 제가 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을 하면서요. 다행히 그 결과가 긍정적으로 쌓인 것 같아요. <부부의 세계> 촬영장에서 늘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왜 이거밖에 못 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나름 준비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도 그렇더라고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보다 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서’를 만났다면 저는 결코 잘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부부의 세계>는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낳았죠. 하지만 무신경한 드라마라는 비판도 가능해 보여요. 
어떤 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관해서요. 특히 VR 게임을 연상시키는 화면으로 폭력을 전시한 연출은 당황스러웠죠.
그 장면이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작품에 출연한 배우로서 이 드라마의 대본과 연출 의도가 여성을 약자로 그릴 마음은 없었다고 확신해요. ‘선우’나 ‘현서’를 포함한 다양한 여성 캐릭터의 선택과 행동은 오히려 많은 이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여러 의미의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해요. 작품 속 여성들은 결국 자기 삶을 찾았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현서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잘 살고 있을 거예요.

초록색 슬리브리스 톱은 르누이(Lenuee). 크림색 데님 쇼츠는 렉토(Recto). 꼬임 디테일 브레이슬릿은 모니카 비나더(Monica Vinader).

그 말이 좋게 들리네요. 지금 한 말을 ‘현서’가 해맑게 웃는 현장 스틸 사진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 있죠?
촬영이 다 끝나고 그 사진을 봤어요.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면서 보여주시더라고요. 작품에선 웃는 얼굴이 나오지 않는데 우연히 현장에서 찍힌 그 모습이 제가 봐도 참 예쁘더라고요. ‘현서도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지’, 그게 새삼스러웠어요. 현서는 연약하지만은 않은 친구예요. 한 번 했던 실수를 다신 하지 않고,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고 있을 거예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스틸 사진에는 캐릭터와 배우 개인의 얼굴이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이 들어요. 참 오묘하죠.
정말 그렇죠? 감독님이 그랬어요. ‘네 안에 현서가 있다’고. 저는 데이트 폭력을 경험해보지 않았고, 현서랑은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요. 따뜻한 마음과 의리, 다른 누군가를 측은하게 여길 줄 아는 정서는 많이 닮았어요. 온전한 나를 싹 다 지우고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안고 있는 삶의 무게나 흔적이 얼굴과 몸에 묻어나기 마련이에요.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래서 중요한 거 같아요.

갑자기, 당신에게 요가란 뭘까요? 
요가는 내가 나와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도구예요. 저는 요가가 1등이고, 그것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수많은 방법의 하나죠.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하면 돼요. 저는 이게 잘 맞아서 열심히 하는 거예요.

몸도 몸이지만 마음을 정리하기에 이로운 행위라는 짐작이 가능하네요.
맞아요. 처음 요가를 하면 누구나 찰나의 순간에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다고 해요. 참 이상한 경험이죠. 우리 다 너무 바쁘게, 힘들게 살아가잖아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치지 않아요. 답을 얻기 위해 애쓰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흐릿해져요. 세상이 내 멱살을 딱 움켜쥐고 앞으로 끌고 가는데 별 수 있어요? 어영부영 그냥 끌려가는 거죠. 아마 그런 고통과 갈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요가를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여러 감정이 막 올라오죠. 괜찮은 얼굴을 하고 지내지만 다들 그런 순간을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멀티 컬러 줄무늬 톱은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레드 컬러 브레이슬릿은 피아트룩스(Fiatlux). 데님 스커트는 타미 진스(Tommy Jeans).

요가만이 품고 있는 힘은 뭘까요?
사람들이 필라테스와 요가의 차이점을 자주 묻곤 해요. 둘은 시작점부터 다르거든요. 필라테스가 재활과 치료에 방점을 찍는다면, 요가는 오래전부터 심신의 안정과 수련을 목적으로 시작했거든요. 요가라는 말에 담긴 의미가 그래요. 되게 어지럽고 어려운 마음을 고요하게, 혼돈이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뜻해요. 요가라는 큰 울타리 안에 명상이 있고, 호흡이 있고, 아사나라고 불리는 동작이 있어요. 그 전부가 다 요가예요. 함께 해도 좋고 하나만 해도 돼요. 그때 나오는 좋은 에너지를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요.

요가의 방식은 호흡, 명상, 행동 이상으로 무궁무진할 수 있겠네요.
누군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면 그 사람에게는 봉사가 곧 요가가 될 수 있겠죠. 동물을 돌볼 때 가장 고요한 마음이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요가일 테고요. 삶에서 꾸준히 그런 식의 요가를 하고 있다면 굳이 요가 학원에 가서 쭉쭉 뻗는 그 요가를 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편안하게 앉아서 말하고 있는데도 되게 곧고 선명해 보여요. 
정말 그렇다면 요가의 힘일 거예요.(웃음) 원래 남의 말과 시선에 더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진 게 있죠. 노력하고 있어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틀릴지언정 내 말을 해보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자주 흔들리지만 이제 송두리째 뽑혀나갈 것 같은 두려움은 없어요. 복원력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죠.

아이보리 컬러 원피스는 폴로 랄프 로렌, 어깨에 걸친 스웨트 셔츠는 비아 플레인(Viaplain), 위빙 디테일 슈트는 프라다(Prada).

일할 때도 도움이 되나요?
많이요. 저는 배우라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외부의 영향에 흔들릴 일이 많은 직업인데, 그럴 때 확실히 도움이 되죠. 몸과 마음은 하나예요. 몸에 활력이 없으면 마음이 알고, 마음이 지치면 몸도 따라가요. 뭐든지 균형이 중요한데, 몸과 마음을 함께 끌어올리기에 요가만 한 게 없죠.

배우 심은우는 어떤 이야기에 마음이 가요?
대단한 스케일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아요. 좀 작더라도 잔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최근에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봤는데 좋았어요. 진짜요. 나도 이런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일상에서 생기는 기쁨과 재미가 제일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고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 같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웃음) 그 시리즈에 나오는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 너무 부럽지 않아요? 긴 세월에 걸쳐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부러운 얼굴이네요. 지금 여기를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게 담긴 작품의 촬영장이라고 친다면, 이제 어떤 장면을 찍을래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에요. 더운 여름이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잘 익은 수박을 먹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또 어떤 손님이 찾아올지 궁금해하면서요. 날마다 다른 손님이 찾아와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는데, 저는 아무 경계심이나 편견 없이 그들을 맞이해요. 넓은 마음으로요.

모르는 사람과 논두렁에서 함께 요가를 하는 장면은 어때요?
좋네요.(웃음) 그건 또 제가 전문이니까요.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에디터
    이하얀
    인터뷰 에디터
    최지웅
    헤어
    김주연(차홍아르더
    메이크업
    공하영(차홍아르더)
    어시스턴트 에디터
    이다솔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