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미스지, 레전드 디자이너 지춘희의 포스!
미스지 컬렉션을 이끄는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 지춘희에게 오랜 시간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레전드 디자이너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것. 그런 그녀의 담백한 대답에 시시콜콜한 질문을 추가했다. 이를테면 “안경이 몇 개예요?”와 같은.
사진 촬영 마음에 들었나? 사진을 잘 안 보는 것 같던데.
사실 좀 쑥스럽다.
의외다. 이것저것 컷마다 체크할 줄 알았다.
알아서 예쁘게 나오게 해주겠지. 누가 이렇게 하라는 대로 하는 촬영은 이번이 처음인데, 해보니까 또 재미있다.
다행이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종종 얼굴을 비춰서 잠시 잊고 있던 지춘희의 포스를 새삼 깨닫고 있다. 모두가 쩔쩔매는 선생님 중의 선생님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니 어느 정도 연출은 들어가 있다.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는데, 일할 때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주의다.
업계에서도 디자이너 지춘희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어느 정도 인정하나?
까다롭다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완벽하게 하고 싶은 거지 사람에게 까다롭게 대하지는 않는다. 좋은 결과를 위해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고, 그 시간 안에 모든 일이 돌아가게끔 요구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부분이 무섭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디자인 콘셉트와 의도를 한번 정하면 함께하는 스태프를 전적으로 믿고 맡긴다. 모델도 마찬가지다.
미스지 쇼에는 톱 모델만 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신인 모델도 많이 선다. 대신 신인 모델은 일부러 피팅을 자주 본다. 옷이 몸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다. 신인 모델에게는 그 순간도 긴장의 시간이 될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모델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상스럽지 않은 사람이 첫 번째 조건이다. 꼭 외적인 조건이 다는 아니고, 사람을 본다. 그리고 본인의 색과 순수함이 있는 마스크를 좋아한다.
상스럽지 않다는 건 뭘까? 디자이너로서 꼴 보기 싫은 스타일이 있나?
그것은 태도의 문제 같은 것이다. 너무 드러내는 것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는 것은 보기에 조금 불편하다.
미스지의 컬렉션 피스는 드레스 라인까지 하면 그 수가 어마어마한데 매 시즌 모든 디자인을 소화하나?
그렇다. 대부분의 디자인은 내가 하고, 일부 디자인은 스태프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편이다. 액세서리는 딸인 지진희 팀장이 모두 맡아서 한다.
힘들지 않나?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처음에 할 주제만 정해놓으면 다 흘러가게 되어 있다. 하루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덧 6개월(한 컬렉션을 완성하는 시간)이 완성된다.
그 생활을 아주 오래 해온 것 아닌가? 정확히 데뷔한 지 얼마나 된 건가? 인터넷 포털을 찾아도 나오지가 않더라.
굳이 얘기해야 하나? 나의 경력이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을 구분 짓는 잣대가 되는 것이 싫다. 오래 해오는 것이 낡은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니까. 그것도 편견이다. 굳이 내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를 어필할 이유가 있나.
긴 시간 현업에 종사하고 톱의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이 그것일까?
사람들은 디자이너라고 하면 큰 포부를 가지고 이 일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난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 뿐이다. 살다 보면 그렇게 거창한 게 필요가 없더라고.
그것도 꿈을 이루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일 수 있겠다. 또 궁금한 게 있었다. 고급 부티크 성격이 강한 미스지 컬렉션(물론 라인은 다르지만)이 홈쇼핑에 나올 줄은 몰랐다. g 스튜디오를 시작한 이유가 있나?
예전부터 세컨드 브랜드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물리적인 한계가 고민이었다. 독특한 유통 구조를 가진 마켓이라 처음에는 주춤했는데, 홈쇼핑도 어느 정도 무르익고 안정적인 구조를 갖게 되었고, 그 후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많은 디자이너가 홈쇼핑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지만 디자이너들의 홈쇼핑 입문 초기 때만 해도 품질에 대해 별로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더 합리적인 가격대의 질이 좋은 옷을 만들고 싶었다. 오랫동안 거래했던 이탈리아 원단 회사에서 원단을 공수해서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얻은 것이 있다면?
미스지 컬렉션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독특한 유통 구조를 경험한 것.
이전의 미스지 컬렉션은 청담동 며느리 룩의 대명사이자 고급 부티크 룩이었다. 파격적인 행보다.
나는 그런 박제된 듯한 느낌이 싫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그로 인해 평소 지춘희를 모르던 젊은 친구들도 많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건 그간 도움을 많이 받은 에스팀 김소연 대표의 부탁 때문이었다. 미디어 노출을 자주 하진 않는데, 일하는 모습을 담는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나간 후 실시간 검색 1위에 떴다.
깜짝 놀랐다. 너무 무섭더라. 지인들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다. 쇼 끝났을 때보다 많이 받았다.
미디어에 노출된 적이 많지 않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디자이너 지춘희의 일상적인 모습도 궁금하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 5~6개를 정독한다. 요즘에는 모바일로도 챙겨본다.
일하지 않을 땐 무엇을 하나? 휴식 방법은?
구글 맵을 즐겨 본다. 내가 가고 싶은 곳, 웬만하면 다 구글 맵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매일 밤마다 여행을 떠난다. 또 최근엔 장아찌를 많이 담갔다. 마늘종, 통마늘, 참외, 살구 같은 계절별로 나오는 재료로 장아찌를 만들어봤다. 장아찌는 담가놓고 기다리는 시간도 중요한데, 덕분에 집중력이 많이 생겼다.
레전드 디자이너와 장아찌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제철 음식은 웬만큼은 하는 편이다. 시장을 자주 가고 좋은 재료를 많이 본다. 재료가 좋으면 음식은 뭘 해도 맛있다. 푸릇푸릇한 봄날의 것을 좋아한다. 신선하고 건강하다.
오늘 저녁 메뉴는?
지금은 익어가는 계절이라 푸릇푸릇한 게 생각이 안 난다.(웃음) 오늘은 냉장고에 있는 거나 꺼내서 만들어 먹어야겠다.
요즘 같은 때. 지춘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미스터 트롯>이 정말 위로가 되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투표시키느라 바빴다.
의외다. 클래식만 들을 것 같았는데.
그것도 편견이다. 이찬원과 정동원처럼 어린 친구들이 트로트를 부르니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 그렇게 신드롬이 되는 것을 보니 또 신선하기도 하고. 아 어제는 <하트 시그널> 최종회를 봤다.
그것도 의외다. 청춘 남녀의 데이트 장면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말인가?
남녀 관계와 심리를 다루는 게 참 재밌더라.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설레고 감정이입이 되는 것도 좋다.
아직 소녀 감성이 가득하다. 설렘이 느껴지나?
감정이입이 된다. 연애 감정을 대리 만족하는 것도 많이 경험하면 좋은 거니까.
그러고 보니 미스지 컬렉션엔 언제나 소녀가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안경은 몇 개나 가지고 있나? 항상 안경을 끼고 있고 오늘도 꽤 많이 가져왔다.
수백 개 되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안경을 껴왔는데, 하나 둘 모으다 보니 금방 몇백 개가 됐다. 한 번 정리해서 클래식한 것들만 남았다.
액세서리 중에 하나만 해야 한다면?
역시 안경이 나에게 가장 큰 액세서리이긴 하다. 그런데 워낙 만드는 걸 좋아해서 목걸이, 반지 등 다양한 주얼리를 만들어 착용하는 것도 좋아한다.
딸 지진희 팀장이 그 영향을 받은 건가?
그런 것 같다. 딸이 가지고 다니는 연장통이 하나 있는데, 그것만 있으면 뭐든 만들어내더라. 덕분에 미스지 컬렉션의 액세서리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든든하겠다.
좋다. 그런데 딸 앞에선 그런 내색 안 한다. 긴장감도 필요하고, 트레이닝을 시키기 위해서다.
역시 깐깐하고 무서운 선생님이 맞는 것 같다.(웃음). 2020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은 패션 필름으로 대체했다. 뉴노멀 시대의 미스지 컬렉션은 또 어떨까?
흐름에 또 따라가겠지. 그것이 새로운 협업이 되든 온라인상에서의 무언가이든 말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 같이 모여 또 흘러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젊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을까?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고 느껴봤으면 좋겠다. 왜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것도 잘 알고 요리도 잘하지 않나. 단, 자기 자신을 좋은 쪽으로 살찌우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흐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그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는 것. 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는 자기가 잘 알 것이다. 지금 자기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흘러간 오늘도, 젊음도 다시 오지 않는다.
- 포토그래퍼
- Lee Jun Kyoung
- 에디터
- 이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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