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해지면 보이는 것들

진정한 웰니스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다소 불편하고 무례하다고 느낄지 모르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거절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추는 일이니까.

참고로 난 이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얼루어>에서 ‘단호한 거절’과 ‘개인적 행복’ 사이의 연관성에 흥미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내 마음속 반응은 이랬다. ‘사실 내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라요. 평생 대립을 피하려 애써왔거든요. 제 혈액형은 젤리 같은 O형, 웬만한 일에 긍정적이죠. 거절하려다가도 생각을 거쳐 입 밖으로 나올 때는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러니까 전 복화술사처럼 뭔가를 감추면서 연기를 해요. 싫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절 불안하게 만드니까요.’ 확실히 난 단호하거나 강압적으로 보이는 걸 싫어한다.

햇살이 화창한 오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모든 면에서 ‘만만한 사람’이 됐는지를 찾는 중이다. 확실히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순간이 있다기보다는 대체로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거리를 두면서 내 솔직한 감정을 감춰왔기 때문이다. 때론 진취성을 기르기 위해 용감하고 근성 있는 여자들의 책을 읽기도 했다. 일종의 자기위안이랄까? 위기의 상황에서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적극적이고 강인해진 내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워터루 전투에서 연합군의 용맹한 영웅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불평등과 맞서 싸우는 여성 정치인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방송에 난입해 남성 시위자를 저지하는 여성 시사평론가 카린 장-피에르(Karine Jean-Pierre)가 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내 태도는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호구’에 가깝다. 연봉협상에 쉽게 순응하고 휴가 중에도 업무 메일에 칼같이 답하고, 베이비시터가 늦게 도착하더라도 나 혼자 공황 상태를 견뎌낸다. 18개월의 임금체불에도, 보험담당자가 딴 짓을 하면서 나를 기다리게 할지라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이번 주에 내가 해야 할 일, 에베레스트 산만큼 쌓인 일 더미만 멍하니 바라본다.

그렇게 모든 걸 잘 인내하다가도 가끔씩 주변 사람들에게 포화를 퍼붓곤 한다. 이러한 패턴이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다. 정리가 안 된 감정의 잔해 속을 계속 헤매다가는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도움을 얻기 위해 심리학자이자 마인드셋 코치인 사샤 하인즈(Sasha Heinz)를 찾아갔다. 그녀를 통해 명확한 해결책을 얻고 싶었다.

“왜 나 같은 사람은 직접적으로 말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이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상냥하게 굴면서 다른 사람의 요구를 수용하려 애쓰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하인즈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호감을 얻기 위해 애쓰는 행동이 남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 깨달아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어수룩하고 만만한 사람, 즉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놀랍도록 직설적인 지적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솔직히 더 자세한 답변을 원했다기보다는, 여기서 멈추었다간 영원히 호구 취급을 당할 것만 같았다). “많은 걸 양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몰래 열받게 되거든요.” 하인즈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들은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때가 많아요.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돼서 진실을 숨기고 있는 거죠. 그들이 나 때문에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자신보다 그들의 욕구를 우선시하다 보면 결국 나중엔 그들을 원망하게 돼요.”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이런 식으로 타인을 원망했던 것 같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은 다음과 같다. 다행히 이런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 대부분의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주로 회피하는 쪽을 택한다. 다비스 캘리포니아 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 피터 옐로리스(Peter Yellowlees)는 “우린 본질적으로 문제나 대립을 피하는 걸 선호해요. 그건 불가피한 인간의 반응이니까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생물학적인 이유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회피하거나 친절한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 하인즈는 특히 위협적인 상황이나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을 때 이러한 행동이 더욱 뚜렷해진다고 했다. “여성과 남성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에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어요. UCLA의 심리학자 셸리 E. 테일러가 ‘여성들은 불안할 때 정면에서 싸우기보다는 외면하거나 친구에게 연락하거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밝혔죠. 이는 적응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에요. 수렵채집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맹수와의 1:1 조우 때 대결과 도피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여성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죠. 자신보다 어리고 연약한 아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었으니까요. 여성들에게는 이렇게 나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려는 본능도 있어요.” 여성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2018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동정심, 친절, 책임감과 같은 감정이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소중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하인즈는 ‘단호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완전히 중립적인 단어예요. 누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이를테면 누군가는 그걸 성공의 비결로 바라보고 근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강압적이어서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해석의 관점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나 부정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죠.”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한 얘기다. 잠시 다시 생각해보자. 사회적 체계와 생물학적 특성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 여성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길 꺼려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힘을 기를 수 있을까? “주장을 숨기는 것은 내가 갇혀 있고 꼼짝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해요. 하지만 생각을 관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완전한 자율성을 갖게 될 거예요.”

그렇다. 자율성은 웰니스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하인즈는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심리적 요구 중 하나가 자율성이에요. 이러한 자율성을 표출하는 요령은 ‘너무 남에게 퍼주지 않는 것’이죠. 우린 하루 종일 다른 사람에게 많은 걸 떠넘기고 감정을 묻어버리려 해요. 남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내 감정을 정하는 것이죠”라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고조됐거나 마음 상했다면, 스스로 그 감정을 책임지는 방법 또한 배워야 한다. 이는 대개 힘들고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뭔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남을 비난하는 것이 더 쉬운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요령을 터득하면 그 결과는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내적 자율성과 웰니스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어요” 하인즈는 강조한다. “친구, 애인, 직장 동료에게 더 이상 내 감정을 떠넘기지 않는다면 경험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죠. ‘남에게 판단 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내 주장을 숨기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과 여기에 종속되어버리는 건 커다란 차이가 있어요. 만일 우리가 남의 의견을 지나치게 내실화하지 않는다면 훨씬 해방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해방’이라는 말은 나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를 쓰면서 내가 나를 위해 단호한 결심을 했던 적이 있는지 더듬어보았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저항이나 단호한 자기주장은 아니었지만 조용한 결심의 순간이 있었다. 난 그저 내 아이들을 해변에 데려가고 싶었다. 여름이 거의 끝나가고 공기는 제법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8살과 4살짜리 아들들이 들뜬 맘으로 차에 올라탄 상태에서 메일함에 갑작스러운 메시지가 들어왔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명망 있는 출판사에서 보내온 다급한 부탁이었다. 메시지를 읽으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좋은 기회를 갖는다는 건 모든 걸 포기하고 그 임무를 맡아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책임감 있게 인내하면서 때론 불가능한 마감일까지 감당하는 것 말이다. 차를 세우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곤 내 아이들이 광활한 해변의 하늘 아래서 서로 달음박질치는 걸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자유로운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보니 그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었다.

    에디터
    황혜진
    리아나 샤프너(Liana Schaffner)
    PHOTO COLLAGE
    SARAH 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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