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위의 저 수정
배우 예수정이 주한 독일문화원의 얕은 무대 위에 다시 올랐다.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이렇게 마주 앉으니까 다 잦아드는 기분이 되네요.
내가 좀 그래요. 그게 문제랍니다. 무슨 산속의 외딴 바위도 아니면서 상승시킬 줄을 몰라요. 다 이렇게 가라앉혀버리는 재주가 있어요.
정화의 기운이 전해져요. 여기 오면서 무슨 생각 하셨어요?
궁금했어요. 당신이 우리 매니저를 통해 편지를 보냈잖아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더라고요. 피싱당한 거죠, 뭐. 완전히 낚였어요.(웃음)
남산에서 만났네요. 하룻밤 사이에 쨍하게 추워졌고요. 소월로를 지나는데 서울이 새삼 다르게 보였어요. 구름이 유난히 크고, 나뒹구는 은행잎은 선명했죠.
참 좋죠? 남산에 올 땐 늘 설레요. 세금 내는 거 하나도 안 아까워져요. 우리 다 편의상 닭장 속에서 살잖아요. 어느 동네 어느 닭장 속에서 사는지 그것만 다르죠. 도시에 이런 정원이나 공원, 광장, 거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우리를 숨 쉬도록 해주거든요. 도시에 산다는 건 뭔가가 내내 시민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의미인 거 같아요. 그걸 누가 느끼지 못하겠어요. 그러다가 여기 남산 같은 곳에 오면 탁 풀어지듯 숨을 쉴 수 있어요. 정말 중요한 공간이에요. 모두의 것이고요.
요즘은 뭘 찍고 계세요?
김태곤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와 이응복 감독의 드라마 <지리산>을 찍고 있어요.
어떠세요? 촬영은 잘 진행 중인가요?
<지리산>을 먼저 찍게 됐는데요. 덕분에 지리산에 자주 내려가요. 너무 좋지요. 흙과 나무와 일체되는 느낌이 들고요. 얼마 전에 계곡물에 한쪽 팔을 담그고 있어야 하는 장면을 찍었어요. 까만 밤에요. 얼어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내 손을 타고 흘러가는 물결이 온전히 다 느껴지는데, 알 수 없는 평화와 행복을 느꼈어요. 죽음을 맞는 장면이었거든요. 인도 사람들은 죽음을 그렇게 여긴다고 하잖아요. 그때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내 장례식이 진행되는 시점이기도 했어요.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한쪽에선 장례식을 치르고, 여기서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나는 살아 있어요.
진짜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들이닥치진 않나요?
진짜 내가 있긴 해요? 그게 어디 있어요?(웃음) 진짜 내가 없을 수도 있고, 뭐가 진짠지 몰라서 더 재미있어요. 그 모든 게 다 나죠. 예수정이요. 우리 다 유기체잖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생성, 소멸, 유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는 거예요.
끝이 없어 보이는 출연작의 맨 처음에 1973년 주한 독일문화원 소속 극회 프라이 뷔네의 <깨어진 항아리>가 있더군요. 바로 이곳이죠.
주한 독일문화원에서 만나자고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마음에 들더군요. 여기랑 기운이 잘 맞아요. 독일문화원이라는 이름도 그렇고요. ‘독일’과 ‘문화’가 다 들어가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요즘 유동성이라는 말 많이 하던데 유동성이 없으면서 소박하지만 꼭 있어야 할 것을 잘 지키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독일을 생각하면 그래요. 그 이미지를 잘 담아내고 있는 곳이 주한 독일문화원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이나 분위기가 참 단정하죠. 수선스럽지 않고.
건물의 위치나 형태, 공간의 구성이 몹시 특별하고 낯선 이 공간이 배우 예수정의 시작이라는 게 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네요.
이 강당이 제 첫 무대였겠죠. <대부>를 보고 불현듯 뛰어올라왔으니까. 어릴 때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 있는데 수정이 입에 곰팡이 슬 거라고. 그렇게 조용한 애였는데 느닷없이 “저 연극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극회에 참여한 거죠. 열심히 하니까 쫓겨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어요. 오늘날까지 왔네요.
처음 혹은 시작 같은 순간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편인가요?
미안해요. 이 나이가 되면 뭐든 별 의미 부여를 안 한답니다.(웃음) 다만 누군가 일깨워주면 다시금 생각하곤 하죠. 지금도 그래요. 당신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딱 꼬집어주니까 설레네요. 내가 좋아했던 말론 브란도도 떠오르고요.
당시의 서울은 어떤 곳이었나요? 지금보다 순수하게 아름다웠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나다니는 사람이 아닌지라 서울에 대해선 잘 몰라요. 남산하고 명동은 잘 알아요. 주한 독일문화원도 그렇고 숭의여고도 남산에 있었거든요. 여기서 10분만 내려가면 명동이 나오잖아요. 그땐 명동이야말로 서울에서 유일하게 핫한 곳이었어요.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 주한 독일문화원과 명동의 휘황찬란함 사이에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의 어떤 격차가 존재하죠. 격차는 꼭 신선한 기류를 만들어내요. 여기서 연습 끝내고 별빛을 따라 내려가면 한참 환한 명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숭의여고를 뺀 나머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네요.
우리에겐 또 뭐가 있었느냐?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어요. 혈기 왕성한 젊음이, 뜨거운 피와 빛나는 밤이 더 안타깝고 절실한 시절이었죠. 심하게 출렁거렸고요. 그 에너지가 지금도 아주 선명해요. 작품을 통해서 참 이상하고 불쌍한 사회, 달라져야 할 사회를 이야기하고 주장하며 소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뜨거운 동지애가 있었어요. 뭔들 아름답지 않았겠어요. 뭔들 뜨겁지 않았을 것이며.
동지애라는 말이 낭만적이네요. 지금 우리에게 그 마음이 남아 있으려나요?
없는 게 좋은 거예요. 동지애라는 건 결핍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사회적 결핍에서요. 그만큼 많이 비뚤어져 있고 망가진 사회였다는 거죠.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시절이 사람을 만든 것뿐이에요. 요즘 젊은이들이 개인에만 충실하다고들 하던데 그게 좋은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면 인류 보전이 되는 거예요. 더는 동지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큰 의미에서 인류애가 자리 잡았다는 거로 생각해요. 쓸데없이 괜히 뭉쳐서 날뛰다가 개인을 잃게 되는 게 위험한 거예요. 그러니 당신 같은 젊은이가 집단보다 개인에 충실한 거 난 응원해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방금 연극의 한 장면 같았어요. 역시 배우는 달라요.
우린 아무 때나 막 뛰쳐나와요. 가림막이 필요 없어요.(웃음)
타고난 본능일까요? 오랜 훈련을 통해 체득한 일종의 기술인가요?
훈련을 통해서는 감추는 걸 배우죠. 이렇게 드러나는 건 그냥 특성 같아요. 배우 혹은 개인의 특성이요. 난 일단 무조건 찢고 나가요. 막상 나갔는데 아이고, 진흙탕이네. 뭐 할 수 없지. 신발 벗고 바짓단 둘둘 말아 입고 맨발로 그냥 가요.
연기에 관한 건 궁금하지 않아요. 보는 사람이 판단하면 될 일이니까요. 하필 궁금하네요. 내지르는 대신 삼키는 듯 연기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거든요.
결국 삶의 결이죠. 배우의 삶의 결과 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전 테크닉이 부족한 배우예요. 테크닉을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추구하는 건 아치보다는 기둥이에요. 기둥을 잘 세워야 아치를 쌓을 수 있잖아요. 좀 더 본질적인 걸 보고 싶고, 표현하기를 원해요. 위보다는 아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게 좋아요.
인터뷰로 만난 <69세>의 임선애 감독이 그랬어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공부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대요.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아, 창피해라.(웃음) 골기를 확실히 이해하면 한결 편안하니까, 쓸데없는 데 기운을 안 줘도 되니까 대본을 열심히 보는 거예요. 골기를 정확하게 모르면 뭘 하려고 막 애쓰게 되거든요. 이 나이에 그렇게 애쓰면 나야 상관없지만, 남들이 불편해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나도 그런 나를 보고 싶지 않아요. 노력은 집에서, 현장에선 “오케이, 알았어. 할 수 있어” 그게 더 편해요.
마음은 어떠세요? 임선애 감독은 40대가 돼서 돌아보니 지난 시절의 마음과 변함없음을 알게 됐고, 어쩌면 60대가 돼도 그대로일 것 같다고 했어요.
우리 임선애 감독이 마음에 대해서, 마음의 입장에서 아주 본질적인 생각을 한 것 같네요. 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마음이라는 게 있긴 있나, 그게 어디에 있나? 여기까지 살면서,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을 거잖아요. 그렇게 갈 곳 몰라 하던 내 마음이, 언제 어디로든 휙 날아가버리는 내 마음 때문에 존재 자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경험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 다짐했죠.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로잡는 훈련을 해야겠다고.
삶의 균형을 맞추는 건 누구에게나 늘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신은 묻고 싶겠죠. 60대인 예수정의 마음이 20대 그 시절과 같냐고. 아름다움에 감염되는 속도는 변함없이 같은 것 같아요. 그건 분명해요. 그것 말고는 앞서 말한 정신의 훈련에 의해서, 또 어떤 조율에 의해서 어쩌면 내 마음이 좀 달라져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마음이 달라질까봐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마음이 뭔지 나도 몰라요. 그게 결론이랍니다.
연출가이자 극작가 브레히트를 흠모하는 건 이미 유명해요.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브레히트에 대해서는 공산주의자다, 자본주의자다 입장이 분분해요. 그러니 딱히 머물 곳이 없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그는 진정한 예술가인 것 같아요. 하나의 명확한 좌표 위에 둘 수 없는 존재인데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규정하려 들어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죠.
브레히트를 어떻게 보세요?
머물러 있는 동시대인에 대한 애정이 극진했던 예술가예요. “깨어나, 당신이 슬프고 괴로운 건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야. 사회의 시스템이 멍청해서 그런 거야. 당신은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야. 어서 깨어나!”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중에게 말했어요. 죽을 때까지 그랬어요. 브레히트의 ‘극장은 시민의 계몽공간’이라는 말에 반했어요. 계몽이라는 건 스스로 환해지기를 결단하는 거예요. 그 결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 극장이에요. 연극이든 영화든 공연이든 장르는 상관없어요. 안방극장도 좋아요. 컨택트, 언택트 상관없어요.
수상한 2020년이 떠나갑니다. 수많은 극장의 목줄을 끌고 함께 가려나봐요. 극장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스스로 살아남을 거예요. 진짜는 남고 가짜는 사라져요. 두고 보면 알아요. 난 극장에서 좋은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우리의 욕구가 식어버릴까봐 그게 걱정이지, 극장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은 안 해요. 극장이 왜 수천 개, 수만 개씩 필요해요?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줄 아는 몇 개의 극장이 더 소중해요.
희끗희끗한 머리와 대비되는 까만 눈은 여전히 청년처럼 빛이 나요. 지난 인터뷰와 삶의 궤적, 오늘의 대화 속에서 짐작하는 게 있어요. 혁명을 꿈꾸세요? 세상을 확 뒤집어버리고 싶다거나.
아주 젊었을 땐 나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정말 순수하기도 했고요. 기본적으로 정신의 주류가 전체에 닿아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에 대한 어떤 가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화나 분노가 아니라요. 태극기 부대라든지, 목사라는 직책에 맞지 않는 한심한 일을 일삼는 이들을 보면서는 분노했어요. 어릴 땐 사회가 참 가엾게 느껴졌죠. 그래서 브레히트에게 쉽게 감염됐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덕분에 ‘나는 배우가 될 거야. 평생 이 일을 할 거야’. 인생의 방향을 일찍 확정할 수 있었어요. 생각하니까 막 눈물이 날 것 같은데요. 음,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못된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공연을 준비하는 몇 달만큼은 그 옛날 수정이가 여기에 살아요. 그때의 순수함이 한껏 함께하는 것 같아요. 아주 충만하게요. 그랬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막 떨리네요.
떨림은 확실한 사랑의 증거죠. 사랑을 할 거면 확실하게.
브레히트라는 사람은 모르지만 행적을 통해 그를 알고, 영향받고, 존경하는 거죠.
인간은 다 늙는데, 다들 망각하고 사는 것 같아요.
망각하고 살아도 괜찮아요. 잊어버릴 때까지 잊고 사세요. 어차피 다가올 일인데 굳이 걱정하고 생각할 필요 있나요?(웃음)
배우는 결국 여러 번 고쳐 죽고 다시 살아나는 존재죠. 죽음은 끝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일까요?
환상을 깨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죽음을 맞이할 때 또 다른 문이, 또 다른 문이, 또 다른 어떤 문이 열린다고 믿고 있어요. 자동문이 처음 생겼을 때 있잖아요. 나는 그냥 걸어갔는데 문이 알아서 열리는 거예요. 하하. 이게 뭔가 싶었죠. 죽음의 순간에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듯 그렇게 문이 열릴 거라고 믿어요. 가장 새로운 버전의 문이 열리는 거죠. 내가 죽을 땐 내 인생 최고 버전의 문이 열릴 거고요. 당신이 죽을 땐 당신 인생 최고 버전의 문이 열릴 거예요.
모든 만남, 모든 대화에서 뭘 하나씩 배워요. 이 까만 밤에 주한 독일문화원을 무대 삼아 이제 사진을 찍어볼까요?
스스로 배워나가길 잘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괜히 꼰대 같은 소리 하나 해도 돼요? 흐흐. 놀 땐 그냥 놀아도 돼요. 놀면서도 뭘 배우려는 태도는 별로예요. 놀 땐 그냥 확 놀아도 좋겠어요.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뭐부터 할까요? 시키는 대로 하죠. 그게 내 직업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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