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닝 뷰티 시장의 변화

BLS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주의와 컬러리즘에 대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이는 결국 오랫동안 ‘피부를 희고 밝게 만드는’ 비즈니스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많은 뷰티 브랜드의 방향까지 바꾸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리브랜딩이 우리의 뿌리 깊은 편견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피부는 생물학적인 것이지,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피부색은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멜리닌 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뿐인데 많은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작년 7월,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가 미국에서 사망한 후 BLS(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또다시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대두시켰다. 다행인 것은 시위로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에 걸친 인종차별의 고질적 문제를 재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인종차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언어’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매일 습관적으로 접하는 이러한 언어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까지 지배하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보자. IT 업계에서 ‘블랙리스트’는 거부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와 반대로 ‘화이트리스트’는 승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최근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리눅스 등이 그동안 사용해왔던 업계 용어를 바꿔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업계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뷰티 업계에도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화이트닝’ 카테고리 역시 인종차별 검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피부색에 상관없이 ‘밝고 흰 피부’를 선망한다는 편견 자체가 인종차별적인 생각인 것이다. 화장품은 피부를 좋게 가꾸는 역할도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효과도 분명 있다. 매일 아침 좋은 향의 크림을 바르고, 손끝에 닿는 부드러운 피부결을 느끼는 것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힐링 의식과도 같다. 그런데 그러한 뷰티 제품에 쓰여 있는 ‘미백’, ‘화이트닝’이라는 문구는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 “저는 동네에서 가장 피부색이 까만 아이였어요. 어렸을 적 제 별명은 바로 ‘검은 그림자’ 였죠.” 나이지리아 피부과 의사이자 비정부기구 EMI(Melanin Initiative)의 설립자인 아니타 벤슨이 말한다. “다들 저에게 ‘피부 표백’을 생각해보라고 말해왔어요. 사람들은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떻게 하면 피부를 조금이라도 하얗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조언했죠.” 벤슨은 자신의 피부를 사랑하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결국 이 제품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로 부당한 일을 겪으며 끊임없이 스스로의 피부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도 많다. 벤슨은 나이지리아에서 피부 표백이나 미백 제품을 찾는 젊은이들은 종종 그들의 부모 때부터 비웃음과 괴롭힘을 경험해왔으며, 실제로 피부색으로 차별을 당해 취업이 거절된 경우도 많았다고 말한다. 이는 흑인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화이트닝 스킨케어 제품의 인기는 이에 못지않게 뜨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더 어두운 피부에 대한 편견은 화이트닝 스킨케어 시장을 번창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글로벌 산업 분석에 따르면, 팬데믹 상황을 고려할지라도 전 세계적으로 화이트닝 화장품 시장은 2020년에 86억 달러 규모이고 2027년까지 12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변화의 실행

화이트닝 뷰티 제품은 은연중에 흰 피부가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판매해왔다. 예컨대, 한 태국 화장품 브랜드는 미백 크림 광고에서 검은 피부의 여성과 대조를 이루며 “이기려면 하얘져야 해!”라는 멘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극적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많은 뷰티 브랜드 광고에서 ‘더 밝은 피부’, ‘환한 광채’와 같은 문구를 사용하며, 티끌 하나 없이 하얀 피부의 모델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NS가 발달하고 사회 문제에 더 많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비자들은 이러한 뷰티 브랜드의 마케팅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유니레버의 미백 크림 제품 ‘페어 앤 러블리(Fair & Lovely)’의 판매 중단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12만 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서명을 했다. 국내에서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에스티 로더의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화장품 색상과는 다른 색상의 제품을 임의로 보내면서 ‘동양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컬러’라는 쪽지를 동봉한 것.

다행인 것은 많은 브랜드가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로레알은 작년 6월, 하얀 피부를 강조하는 홍보 문구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존슨 앤 존슨 역시 뉴트로지나의 ‘파인 페어니스(Fine Fairness)’와 ‘클린 앤 클리어 페어니스(Fairness)’ 등 두 가지 피부 미백 라인을 중단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 라인의 일부 제품명들은 타고난 피부톤보다는 흰 피부를 더 강조하는 단어를 사용해왔으니까요”라고 존슨 앤 존슨의 대변인은 <얼루어 US>에서 밝혔다. 같은 달, 유니레버는 ‘모든 피부색을 존중하는 글로벌 스킨케어 브랜드가 될 것’이라 밝혔다. 유니레버의 대변인은 “2014년부터 우리는 여성의 힘과 관련된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왔고 커뮤니케이션 및 포장 방식을 바꾸려 노력해왔어요. 비포 앤 애프터 이미지나 피부색 가이드 등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해서요.” 그 일환으로 페어 앤 러블리 라인의 이름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여성의 투명한 피부가 화이트닝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며 시장을 이끌어오던 국내 뷰티 브랜드 역시 행보를 같이한다. 아모레퍼시픽은 ‘화이트닝’ 대신 ‘브라이트닝’이라는 단어로 교체했다.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각자의 피부색은 인정하면서도 건강하고 맑은 피부로 가꾸는 케어를 지향한다는 것. 실제로 한국 시장의 화이트닝 카테고리는 기미를 없애거나 피부색을 하얗게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 충분한 수분 공급 등을 통해 맑은 안색과 광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시장의 트렌드가 변화했다.

“당신의 신념은 당신의 생각이 되고, 당신의 생각은 당신의 말이 되고, 당신의 말은 당신의 행동이 되고, 당신의 행동은 당신의 습관이 되고, 당신의 습관은 당신의 가치가 되고,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운명이 된다.” – 마하트마 간디

이것으로 충분할까?

인도 델리에서 활동 중인 뷰티 저널리스트 바수다 라이는 진정한 변화는 다음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흰 피부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바꿀 수 있을까?’ 우선 그녀는 피부색이 어두운 여성들이 뷰티 캠페인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화이트닝 제품 광고는 항상 5~6톤 정도 더 밝은 모델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면, 크림을 바르더라도 더 이상 흰 피부가 될 수 없는 유색인 모델들도 포함시켜야 하죠. 또 그 대안으로 어두운 피부톤이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더 많은 제품이 출시되어야 할 거고요.”

배우이자 프로듀서인 나야는 2014년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FiftyShadesOfBlack 캠페인을 진행하고, 넷플렉스 다큐멘터리 <SKIN>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이지리아에서 더 많은 인식을 일깨워주었죠. 컬러리즘과 피부 미백 크림과의 싸움에 대해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니베아는 이전 그녀와 광고를 함께한 경험을 되살려, 다큐멘터리 시사회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에서 역시 LG생활건강이 보다 적극적으로 유색인종 지원 사업에 나서겠다고 뜻을 밝혔다. 미국 자회사인 뉴에이본이 비영리 단체 길 원더와 손을 잡고 17~22세 유색인종 여성들의 경력 개발을 지원하는 것. 장학금 등을 통해 학비를 지원하며, 인턴십 등 취업 준비를 돕는 구체적인 활동을 같이한다.

화이트닝 제품을 없애고, 광고의 문구를 바꾸는 것. 아무도 이것이 인종적인 평등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주입받아온 이 뿌리 깊은 편견이 행동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컬러리즘의 체계적 뿌리와 싸우는 것이다. “이 전투는 아직까지 갈 길이 멀어요”라고 벤슨은 말한다. “관행을 바꾸려면, 먼저 흑인 피부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하죠. 하지만 저는 희망적이에요. 이제 이 바퀴가 움직일 때가 됐으니까요!”

    에디터
    서혜원
    포토그래퍼
    GETTY IMAGES
    다리안 하빈(Darian Har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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