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IN REVOLT, 한국의 ‘그레타 툰베리’ 10인
2018년 8월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가 적힌 팻말을 치켜올리면서 시작된 청(소)년들의 기후 행동은 전 세계 청(소)년들의 뜨거운 연대로 하나가 되었다. 기후 위기의 당사자로서 당연한 일상을 살기 위해, 미래를 꿈꿀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청(소)년 활동가 열 명이 모였다. 청소년이 주체인 청소년기후행동과 청년이 주체인 청년기후긴급행동, 기후변화 청년단체 GYEK 등 각자 활동하는 단체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외침은 결국 하나다.
‘다음 멸종 위기종은 나’, ‘미래 없는 미래 세대’,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어요’라는 피켓의 문구가 어떤 울림으로 다가와요. 질문을 던지죠. 가장 크게 와 닿는 공포와 두려움이 뭔가요?
배은지 행복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단순히 순간의 위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가 살아 있는 한 영원할 것만 같아요. 코로나19도 언젠가는 종식되겠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미지의 전염병이 확산할 거예요. 점점 더 그런 위험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커지겠죠. 안타까운 건 그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해 결국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픈 거죠. 그 모든 위협이 모두 기후위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고요. 그 불안한 마음이 저를 비롯한 젊은 활동가들의 마음을 어렵게 해요. 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행동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행동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오늘날 기후위기의 현실에 맞서는 맨 앞줄에는 여러분 같은 청소년과 청년이 자리하고 있죠.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호소와 함께 분노하고 있어요.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양예빈 저희는 2030년에도, 2050년에도 이 땅에서 계속 살아야 해요. 근데 어쩌면 그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거예요. 그런 불확실성을 껴안은 채 미래를 계획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닥쳐올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이자 직접 피해자인 청소년과 청년들은 정작 기후위기 대응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에 함께할 수 없거나, 실질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도 없어요. 우리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도, 반영하지도 않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전 세계의 청소년과 청년들을 분노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기존 환경 단체와 여러분의 활동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오지혁 개인적으로 ‘환경단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져요. 우리는 4대 강 재자연화나 케이블카 설치 반대 같은 이슈보다 오로지 기후위기에 맞설 목적으로 모였으니까요. 일부 언론이 저희를 ‘환경 단체’라고 할 때마다 꼭 ‘기후 단체’로 정정을 요청하기도 해요. 또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환경 운동의 핵심이 보존과 재자연화라면, 기후 운동의 핵심은 전환과 축소이기 때문이죠.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동시에 위협하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후위기에 영향을 끼치는 제조업, 에너지, 교통, 수송, 농축산업, 군사, 심지어 교육 부문 등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나경 우리는 환경이나 기후 전문가가 아니에요. 오히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죠. 함께하는 다양한 청년들은 각자의 직장도 있고, 전공도 저마다 다른데 기후위기라는 하나의 공감대 아래 모인 자발적 연대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기성세대에게, 사회에, 국회에, 기업에 요구하는 핵심이 뭔가요?
김도현 저는 올해 고1이 됐어요. 그야말로 ‘미래 세대’라고 불리죠. 어른들은 우리를 이 땅의 미래라고 치켜세워요. 훌륭한 어른이 되라면서요. 근데 저는 어른들이 말하는 그 미래가 올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어요. 암울하기만 해요. 그래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거예요. 그럼 또 어른들은 말하죠. 지금은 일단 공부를 하라고요.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일단 앉아서 공부나 하란 말이군요.
김도현 심지어 어떤 경우는 제가 참여하는 이 활동을 ‘자소서 한 줄용’으로 치부해버릴 때도 있었어요. 저는 제가 살아야 할 안전한 미래를 위해 몸부림치는 것뿐인데 그걸 단순히 입시와 결부하는 시선은 정말 견디기가 어려웠어요. 위기를 인지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연한 요구를 하는 건 나이도,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세대도 존재하지 않아요. 이 땅에 사는 한 너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제 또래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우리를 살려주세요.
기후위기 활동은 결국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는군요. 정부와 기업이 정책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주장이겠죠. 그렇다면 개인 생활 속 에코백과 텀블러 사용, 철저한 분리배출, 플라스틱 빨대 사용하지 않기 등은 기후위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이지우 기본적으로 개인의 작은 실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작은 행동이 모여 사회 문화적 인식을 바꾸고 제도도 변화시키기 때문이죠. 다만 일상 속 실천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대부분은 에코백과 텀블러, 일회용품 줄이기 등을 생각해요. 물론 그것도 효과적일 거예요. 하지만 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어요. 바로 ‘보이콧’이에요. 환경을 파괴하는, 나아가 그린 워싱을 일삼는 기업에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거죠. 우리의 활동이 정치적이라는 것 인정해요. 근데 우리는 정치를 하기 위해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인 거죠. 우리의 주장이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오지혁 기후위기의 핵심 원인은 인간이 활동하며 배출하는 온실가스예요. 개인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을 좀 줄인다고 해서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진 않아요. 기본적으로 기후운동은 화석 연료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투쟁이에요. 모든 사회 운동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정치는 곧 특정 집단이나 시민 다수의 문제를 공공의 영역에서 다루는 현상이니까요. 다양한 집단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다수의 시민이 거리에 모여 행진하는 건 당연한 행동이고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천이 아닌 집단의 실현이 필요해요.
사실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어림짐작을 할 뿐,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강다연 ‘기후위기’는 ‘기후변화’를 넘어 더욱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단어예요. 뉴스를 통해 자주 접했을 텐데, 지구의 평균 온도는 매년 높아지고 있어요. 지구촌 곳곳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체감하지 못할 뿐이죠. 사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변화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에게는 아주 큰 재앙이죠.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인도에서는 만년설이 녹아 대홍수가 났어요.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걸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기후위기의 당사자라는 증거인데 말이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요.
‘기후 정의’는 또 어떤 의미인가요? 기후 변화를 기후 정의 차원으로 넓히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잖아요.
이나경 기후 정의는 정의롭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기후 정의의 핵심 구호가 ‘이윤보다 민중과 지구를’인데요. 저는 이 말이 좋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기후 정의는 돈과 성장만을 좇는 세상에서 기후위기의 원인과 피해가 국가, 성별, 세대, 계급, 인종 등에 따라 불평등하므로 이것을 시정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해요. 지금까지 우리는 환경파괴, 탄소배출이 인류 공동체의 문제라고 생각해왔잖아요. 근데 그게 정말 사실일까요?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 기온의 피해를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입고 있나요? 기후 정의는 민주주의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미래를 꿈꿀 기회조차 박탈당한 청소년과 청년 세대가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해요. 기성세대와 맞서 동등하게요. 허공에 대고 소리치면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에요.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바꾸라고 요구할지 더 분명하게 말할 자격이 있어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이미 있었죠. ‘기상 이변’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양예빈 맞아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파괴성을 강조했어요. 그럼에도 대응은 지연됐죠. 기후위기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탄소 다배출 산업, 국가, 개인 등 모두에게요. 이를 극복할 수 있음에도 실천하지 않고 미뤄둔 책임 당사자는 존재해요. 누가 의사 결정 구조 안에 있는지, 선택권을 가졌는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진심으로 바라고 꿈꾸는 이 땅의, 지구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이지우 생존을 걱정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해요. 저희는 이제 생존 그 자체를 걱정해요. 30년 뒤에도, 50년 뒤에도 내가 계속 이 땅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런 걱정을 하는 거죠.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야 해요. 그러려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지금과 완전히 달라져야 해요. 자연을 인간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사고를 버려야 해요. 그건 단순히 윤리적인, 혹은 환경적인 이야기만이 아니에요. 맹목적인 경제성장 대신 지속가능한 방향을 아주 현실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다연 돈과 물질이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요. 내가 소유할 수 있는 만큼만 소유해도 모자라지 않는 세상.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쓸모없다고 버려지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요.
기후위기를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면 무엇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이두원 무슨 일이든 대단한 것부터 하려 나서면 막막한 법이잖아요. 일단 기후위기를 제대로 잘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면 좋겠어요. 그런 다큐멘터리도 많이 있으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부담 없이 시청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비건 지향식을 하고 있는데요. 농업 부문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2위고 그중 60%가 축산업에서 배출된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석탄 발전으로 인한 영향도 크겠지만 우리가 먹는 밥상이 기후위기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죠.
이나경 세상은 혼자서는 바꿀 수 없어요. 몇몇의 소수자가 모여도 그렇고요. 국가의 정책과 기업의 태도를 바꾸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아주 많이 모여야만 가능해요. 거리에 나서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멈추지 않고 행동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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