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물이다, 이동시 작가 현희진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위기, 생명, 동물권…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환경단체들의 그 프로젝트를 들어봤다.
“나는 오늘 동물로서 말한다.” 지난여름 세종문화회관에 모인 30명의 예술가들은 각자 다른 동물로서 인간에게 10가지 유언을 남겼다. 2018년부터 환경, 동물 이슈에 대해 실험적이고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온 창작 집단 ‘이동시’가 기획한 퍼포먼스 <절멸>이다.
현희진 | 이동시 작가
‘이동시’를 소개해달라. 환경단체와 예술단체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어떤 단체인가?
이동시는 ‘이야기와 동물과 시’의 앞 글자를 딴 말로 기후, 환경, 동물 관련 이슈를 다루는 창작 집단이다. 현재 영장류 학자인 김산하, 김한민 작가, 현희진 작가, 정혜윤 피디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8년부터 동물과 환경에 관한 전시 및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왜 이야기, 동물, 그리고 시인가?
우리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현재 인간들이 외면하고 있는 동물들이다.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사회에서 동물의 이야기는 은폐되어 있으니, 이것을 깨고 동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복이다. 동물이 시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 말하자면 관점을 바꾸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환경단체와 다른 점은?
방식의 차이다. 이동시는 동물을 보호하자고 말하기보다, 동물로서 상상하고 동물로서 말하며 기꺼이 동물이 되고자 한다. 이는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동물을 하나의 주체로 보고, 그들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그들의 영혼을 대변하는 ‘전문 번역가’가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에게 자신을 이입하고 그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며 마침내 그 자신이 되고 싶어 하듯, 이동시는 인간 아닌 동물로서 지금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존 환경단체와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동시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구 가열의 임계점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 ‘기후위기 티핑 포인트’라고 부르는 지점이다. 영국 <가디언>지를 비롯한 매체들이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말 그대로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구의 기온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지구는 더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동시는 아직 ‘기후 행동’이 유의미한 향후 10년, 2030년까지 대중의 시선을 바꾸고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완수하고자 한다.
작년 여름에는 30명의 활동가, 작가, 예술가와 퍼포먼스 <절멸>을 선보였다. 활동에 대해 소개해달라.
코로나19 이후 전염병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보다 동물에 대한 혐오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기획하게 됐다. 참여 작가들은 천산갑, 박쥐, 돼지, 혹등고래 등의 동물이 되어 공동 선언문과 짧은 글을 낭독하는 기자회견 겸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각 동물의 목소리로 동물 문제에 직면했음에도 이를 침묵하는 인간 사회를 향해 유언과 같은 경고를 전했다. 실제로 새롭게 창궐하는 전염병의 75%는 동물에서 유래했으며 앞으로 도래할 미지의 질병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자연서식지 파괴, 공산식 축산 시스템 등의 동물학대가 이어지는 한 동물과 인간은 공멸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절멸>은 동물들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큰 기획 포인트였는데, 지금 이 시기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빌린 이유가 무엇인가?
코로나19는 박쥐에서 기인해 중간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옮겨진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 영장류 학자인 제인 구달이 ‘코로나19의 원인은 동물 학대’라 말하고, 진정한 문제는 기후위기임을 증명하는 기사가 끊임없이 등장했음에도 바이러스를 옮기는 닭과 돼지, 박쥐에 대한 혐오만이 계속됐다. 정작 중요한 동물학대 문제는 배제된 채 혐오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변화를 말해야 했고, 이는 당연히 동물의 목소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동물의 대리자’가 되어줄 창작자들을 소환한 것이다.
김하나 작가, 이슬아 작가, 요조 등 다양한 예술가가 참여한 것이 큰 이목을 끌었다. 작가들과 함께한 이유가 있나?
역지사지는 곧 나에게서 상대방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과 동물에 구분을 두지 않았던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위치의 존재로 여겼고, 그렇기에 동물의 관점을 취하는 데 능했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관점 전환에 가장 능숙한 이들이 바로 작가다. 작가는 끊임없이 ‘나’ 아닌 존재를 상상하고 그에 이입한다. 이동시는 그중에서도 평소 동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던 작가들, 동물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작가들 30명을 모았다. 동물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더라도 말하고자 했고 시인, 소설가, 시각예술가, 뮤지션 등의 창작자들이 뜻에 동참해주었다.
프로젝트 기획 및 진행 중에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본래 <절멸>은 오프라인 기자회견 방식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하며 갑작스럽게 다른 방식의 집회를 시도하게 되었다. 참여 작가들이 정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명씩 정해진 자리에 참석했고 이후 각자의 선언을 기록한 영상을 하나의 장면으로 합성했다. 동시에 여러 사람이 모이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함께 목소리를 낸 셈이다. 방식이 바뀐 것은 변수였지만 새로운 형태의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절멸> 퍼포먼스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지금까지 이동시의 활동 중 대중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퍼포먼스였다. 기사 댓글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메시지 등으로 감상을 전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동물과 지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분도 있었고, 채식을 시도해보고자 조언을 구하는 메시지도 기억에 남는다. 이동시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수 있을지,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질문하게 된다. 분명한 건 이런 반응을 확인할 때마다 누군가에게는 닿고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연초에는 생명다양성재단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021년 동물의 날 달력을 만들었다. 2019년에 이어 두 번째 달력인데, 무엇이 달라졌나?
모기나 악어처럼 인간에게 인기가 없는 동물에게도 기념의 날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누군가 나서서 이날만은 이 동물을 생각하자고 약속한 날만을 모은 것이 바로 동물의 날 달력이다. 이동시 김한민 작가의 그림이 들어갔는데, 첫 달력을 만들었을 때도 반응이 좋았다. 2019년에는 달마다 대표 동물이 그려졌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동물이 등장해 함께 축하하며 즐기는 분위기가 콘셉트다. 펀딩은 예상보다 빨리 목표를 달성했고, 이후로도 줄곧 구매 문의가 이어졌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지금 주목하고 있는 동물을 소개한다면?
소를 주목한다. 2021년은 신축년 소의 해다. 하지만 소의 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소가 죽고 있다. 빵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우유로 만든 디저트에 소 사진과 캐릭터를 활용해 상품을 홍보하고, 사람들은 ‘소고기’를 더 많이 소비한다. 그 아래 우리가 아는 진짜 ‘소’가 겪는 현실은 은폐되고 있다.
점차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물권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콘텐츠는?
이동시 김한민 작가가 쓴 <아무튼, 비건>을 추천한다. 비거니즘을 처음 접할 때 궁금할 수 있는 지점들을 쉽고 명료하게 짚은 책이다. 추가로 두루미출판사의 계간지 <물결>을 권하고 싶다. 비거니즘을 주제로 하는 계간지로 동물권에 대해 지금 가장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는 활동가, 학자, 작가의 글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마침 2021년 봄호의 주제가 ‘소’라고 한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올해 안에 페이크 다큐멘터리 <비관론자>를 완성하고 영화제 등을 통해 릴리즈하고자 한다. 2019년 비건 페스티벌에서 <비관론자 vs 비건론자>라는 연극 겸 게임을 진행한 바 있다. 비거니즘에 대해 갖고 있는 비관을 재미있게 풀어낸, 참여형 연극에 가까웠는데 이때의 녹화본을 중심으로 픽션이 섞인 다큐를 준비 중이다. 추가로 상반기 안에는 ‘저항 통신: 레지스땅스’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론칭할 계획이다. 흔히 주류로 통하는 가부장제, 신자유주의 등의 현체제에 반하는 ‘저항군’들을 위한 통신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쉽게 고립되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며 동력을 잃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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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정지원
- 포토그래퍼
- KIM MYUNG 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