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사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성공을 목표로 숨가쁜 20대를 보내다 보면 숨 고르기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명품백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한 여자들의 이야기.

영화 시사회장으로 가기 직전, 샤넬 No.5를 바르는 마릴린 먼로.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샤넬 No.5의 관능적인 향으로 기억되는 그녀다.

영화 시사회장으로 가기 직전, 샤넬 No.5를 바르는 마릴린 먼로.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샤넬 No.5의 관능적인 향으로 기억되는 그녀다.

마사지 대신 선택한 필라테스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올해로 7년째. 일주일에 한 번 개인 레슨을 받고 있다. 한 회 수업료가 9만5천원, 한 달로 치면 4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비싼 수업료에도 필라테스를 계속하는 이유는 필라테스의 놀라운 치료 효과 때문이다. 근육이 경직돼 허리부터 어깨, 목까지 심한 통증이 느껴져 전신 마사지를 여러 번 받아봤지만 효과는 그때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이후 퍼스널 트레이닝도 받아보고, 수영도 해보고, 에어로빅과 요가까지 해봤지만 만성적인 통증을 없애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필라테스를 시작한 뒤로 평소 잘 쓰지 않던 근육을 단련하고, 경직된 근육이 풀어지면서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적당히 근육이 잡히면서 몸매도 예뻐지고, 조금씩 살도 빠졌다. 내 몸의 근육과 뼈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하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세 달이면 명품백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필라테스에 투자하는 내가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한때는 비싼 옷, 비싼 가방을 열심히 사 모은 적이 있지만, 사고 나면 금세 싫증나는 물건과 달리 운동은 만족도가 훨씬 크고 오래갔다. 명품백보다 어떤 옷을 입어도 명품처럼 소화하는 몸매를 만드는 게 더 가치 있지 않을까? – 서지혜(<마리 끌레르> 뷰티 에디터)

침실 곳곳에 향초의 따스한 온기와 향이 스미면 헛헛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진다.

침실 곳곳에 향초의 따스한 온기와 향이 스미면 헛헛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진다.

시간과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향초
나에게 향초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어려서부터 외국에 나가 혼자 공부하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늘 외로웠다. 향초의 포근한 온기와 향이 공간을 채우면 쓸쓸함을 좀 달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저렴한 향초를 하나둘 사 모으다 나중에는 마음에 들면 5백 달러짜리 향초에도 지갑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향초 수입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향초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늘 향초와 함께한다. 집 안 여기저기와 사무실, 차 안, 심지어 가방에도 틴 캔들을 넣어 다닐 정도다. 향수를 레이어링하듯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여러 개의 향초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디퓨저와 매치해 세상에 하나뿐인 향으로 공간을 채운다. 향초는 시간과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한 시간, 점심 이후에 한 시간 정도 향초를 피우면 삭막한 사무실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향초를 피운다. 집 안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침실 곳곳에 따스한 온기가 스며 포근하게 잠들 수 있다. – 김비주(조나단 워드 런던 대표)

향으로 욕실을 훈훈하게 채우고 몸의 부드러운 감촉과 은은한 향을 느끼다 보면 흐트러진 마음이 반듯해진다.

향으로 욕실을 훈훈하게 채우고 몸의 부드러운 감촉과 은은한 향을 느끼다 보면 흐트러진 마음이 반듯해진다.

지친 몸과 마음을 향기롭게 어루만지는 시간
겉옷 안에 입는 속옷과 양말, 부드러운 살결과 은은한 향, 바른 체형과 자세,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처럼, 나이가 들수록 보여지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소한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모델이 직업이다 보니 얼굴뿐 아니라 몸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높아졌는데, 고가의 스파 대신 보디 제품을 다양하게 구비해 스스로 관리한다. 힘든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향으로 욕실을 훈훈하게 채우고 마음을 몸과 향에 쏟다 보면 흐트러진 몸과 마음이 반듯하게 정돈된다. 최근 들어 향 관련 제품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어브나 카르마카멧 같은 태국 아로마 브랜드의 제품을 즐긴다. 특히 어브의 이스턴 트리트 바디오일은 번들거림 없이 피부에 쏙 스며들어 사계절 내내 애용하는 제품이다. 같은 향의 보디크림과 섞어 바르기도 하는데, 실크처럼 부드러운 감촉과 살 냄새와 섞여 은은하게 피어나는 향이 매력적이다. 국내에서는 어브를 비롯해 천연재료로 만든 향 제품을 다양하게 구비해놓은 멀티숍인 레흐를 자주 찾는다. 남들의 시선보다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풍요롭게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송경아(모델)

살아 있는 꽃과 식물이 가진 신선한 활기는 단단하게 굳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살아 있는 꽃과 식물이 가진 신선한 활기는 단단하게 굳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건조한 삶에 생기를 더하는 플라워 클래스
갈수록 메말라가는 영혼에 위기감을 느낄 때 친한 지인들과 플라워 클래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꽃다발부터 시작해 조금씩 솜씨가 늘면 커다란 부케도 만들고, 오아시스에 꽂는 테이블 피스도 만든다. 꽃꽂이의 매력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정답이 없으니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성에 안 차는 무딘 손끝을 원망할 이유도 없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지인들마다 만드는 방법이나 결과물이 다 달라 함께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직접 만든 꽃을 선물하는 것도 즐거웠다. 어버이날에는 직접 만든 꽃바구니를 부모님께 드렸다. 예전에는 꽃을 선물 받는 기쁨만 알았다면, 꽃꽂이를 배우고 나서는 꽃을 선물하는 기쁨을 알게 됐다. 나 역시 한때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끝에는 공허함과 좁아진 집만이 남았을 뿐이다. 아름다운 꽃에 둘러싸여 싱싱한 꽃이 내뿜는 생명력을 눈과 손끝으로 느끼며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꽃이 아름다운 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벚꽃이 피면 곧 시들어버릴 아름다움이기에 마음을 다해 누리는 것처럼, 언젠가 시들어버릴 인생이기에 하루하루를 마음을 다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황선우(<W> 피처 디렉터)

손톱을 꾸미는 데 온 마음을 쏟다 보면 고민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손톱을 꾸미는 데 온 마음을 쏟다 보면 고민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스트레스를 잊게 하는 네일 아트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네일 제품이 화장대에 가득하지만 신기하거나 예쁜 제품만 보면 저절로 지갑이 열린다. 한 달에 한 번 네일숍에서 손톱과 큐티클을 정리하는 것 말고는 웬만한 네일 아트는 직접 하는 대신 네일 제품을 구매하는 데 투자한다. 국내보다는 해외가 네일 브랜드도 다양하고 독특한 제품도 많아서 블로그나 잡지를 보고 사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두었다가 출장을 갈 때 왕창 사오는 편이다. 캐비어 네일로 유명한 시아떼는 야광, 벨벳, 데님, 깃털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이 많아 기회가 될 때마다 반드시 들른다. 다양한 종류의 레깅스만큼이나 네일 에나멜 역시 색이 화려하고 다양한 아메리칸 어패럴과 데보라 립만, 마크 제이콥스, 진순 최 등 다양한 네일 브랜드가 입접해 있는 세포라 매장도 즐겨 찾는 곳이다. 전문적인 네일 도구와 소품을 구입하기 위해 동대문 네일 도매 상가를 찾기도 한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특기가 되어 올해부터 <보그> 웹사이트에 셀프 네일 팁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네일 아트는 요가나 명상과 다름없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운 날에는 손톱에 복잡한 무늬를 그려 넣는다. 손톱에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 임승은(<보그> 패션 에디터)

여행지에서 산 빈티지 소품들로 집 안을 꾸미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여행지에서 산 빈티지 소품들로 집 안을 꾸미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머릿속 경계를 한 뼘씩 넓히는 여행
도쿄와 교토, 홍콩, 프라하, 필젠, 파리, 뉘렌베르크, 보르도. 지난 1년간 여행한 도시들이다. 여행이 주는 마약 같은 즐거움에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난다.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걷고, 사람들과 만나고, 처음 보는 음식과 술을 맛보는 경험은 머릿속의 경계를 한 뼘씩 확장시킨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렘 또한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올해 5월 마드리드와 리스본, 파리, 헬싱키로 3주간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여행을 준비하면서 현지인의 빈집이나 빈방을 여행객들에게 연결해주는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알게 됐다. 가격도 호텔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집마다 인테리어도 다르고, 동네의 특색도 다른 곳에 묵을 수 있어 마음이 설렌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옥상 테라스에 반해 리스본의 현지인 아파트를 빌렸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즐기고, 밤에는 동네 술집에서 포트 와인을 마음껏 마실 생각이다. 마지막 여정인 파리와 헬싱키는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 될 것 같다. 3년 전부터 1년에 한 번 가이드를 자청해 엄마와 유럽여행을 떠나는데, 처음에는 낯선 식당에서 음식도 제대로 못 드시던 엄마가 요즘은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생맥주 한 잔부터 주문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요즘은 비싼 옷과 가방을 사고 싶어도 ‘이 돈이면 외국에서 더 싼 옷을 사고, 남은 돈으로 빈티지 그릇을 좀 더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2~3주간의 여행을 위해 나머지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여행 시점을 기준으로 앞뒤로 몇 달은 지속되기에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 여행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이라면 말 안 해도 다 알 거다. – 손기은(<GQ> 피처 에디터)

부드러운 흙반죽을 만지며 모든 감각을 손끝에 집중하다 보면 행복이란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부드러운 흙반죽을 만지며 모든 감각을 손끝에 집중하다 보면 행복이란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예
시간과 정성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실력이 느는 나만의 기술을 갖고 싶다는 바람에 도예를 시작했다.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두 달째에 접어들면서 도예를 배우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해야 하는 도예는 만드는 즐거움과 더불어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아기 얼굴처럼 곱고 예쁜 반죽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코끝으로 흙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무뎌진 손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도 느낀다. 정성껏 만든 그릇에 소박한 음식을 담아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도 도예가 가져다준 소중한 선물이다. 가족을 위해 차린 소박한 밥상이나 손 글씨로 정성스레 써 내려간 카드처럼 손끝에 정성을 담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삶을 조금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한다. – 조소민(키엘 홍보팀)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조은선
    포토그래퍼
    이정훈
    기타
    사진출처 /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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