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추억 – 바다, 호텔, 맛집 가이드
바다도 있고 산도 있다. 거기 속초에는 다 있다.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자식을 키웠을까 가끔 생각한다. 복잡한 마음은 경외감이기도 하고, 측은함이기도 하다. 주5일제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토요일도 일하면서 돈도 벌고 아이도 키우고 했을까. 자식들을 위해 주말마다 나들이에 여름휴가도 꼬박꼬박 챙겼다. 그때의 여름휴가는 지금하고는 또 달랐다. 지금처럼 회사원이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하는 게 불과 10~20년 사이 일이라는 걸 아는가? 그 전에는 전 국민이 8월 1일부터 5일 사이에 휴가를 갔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는 그런 ‘피서철’이 존재했고 어디나 인산인해였다. 피서를 가는 날의 풍경은 해마다 같았다. 새벽 4시 깜깜한 공기 속에서 엄마는 나와 두 동생을 깨워 옷을 입혀 차에 태운다. 아빠는 아이스박스를 트렁크에 싣고, 당시 운전자들의 필수품이었던 한국도로지도를 펴고 운전대를 잡는다. 그래야만 막히는 길에서 4~5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침대를 벗어나 좁은 뒷자석에서 서로를 밀치며 다시 잠이 든다. 잠을 깨면 이미 설악산이었다. 새벽녘 아무도 없는 설악산 계곡에서 유부초밥을 먹으며 물놀이를 했다. 난생처음 회를 먹은 것도 속초였다. 어린 시절의 여름휴가라면 항상 속초와 강릉이 떠오른다.
추억은 힘이 센 것인지, 오랜만에 찾은 속초에서 어린 시절에 머문 숙소를 찾아냈다. 주로 콘도나 관광호텔에서 머물렀지만, 어느 피서철에는 예약 없이 그야말로 문을 두드려 방 있는 곳에 묵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구한 설악산 기슭의 작은 호텔은 아직 영업 중이었다. 음식점 골목에서 파는 바다골뱅이가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안 사줘서 서러웠던 기억도 났다. 이제는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됐는데 바다골뱅이 노점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시절, 속초에 추억을 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오랜만에 찾은 속초는 많은 게 새로웠지만 추억을 품고 있는 도시는 낯설지 않고 따스했다.
바다에서
여행자들에게 숙소는 중요하다. 숙소의 쾌적함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도, 잠만 자면 족하다는 사람도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몸을 누일 곳은 필요하다. 롯데리조트 속초의 위용은 대단한데, 속초 해수욕장 옆 언덕에 위치해 속초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2017년 문을 연 객실 392개의 대형 리조트로 “그렇게 괜찮다며?”라는 입소문과 함께 속초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다. 전 객실이 오션뷰라 어느 객실에서나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볼 수 있고, 리조트를 중심으로 해변부터 항구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은 숙박객이 아닌 사람들도 찾는 명소다. 객실은 호텔 타입과 콘도 타입으로 나누어져 있고, 인피니티 풀과 워터파크도 갖추고 있어 여행을 즐기는 요즘 여행자들의 기호를 충실히 반영했다.
거대한 리조트가 들어오면서 주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속초 해수욕장 주변도 더욱 활기를 띤다. 강릉 안목해변에서 시작한 로스터리 카페인 보사노바 커피로스터스도 속초 해수욕장 앞 조양동에 속초점을 두고 있다. “보사노바는 바닷가 앞에서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조양동은 속초의 대표적인 해변인 속초해변을 품은 동네입니다. 속초해변을 가장 가까이서 즐길 수 있기에 조양동을 선택했습니다.” 보사노바 커피로스터스 진주희의 설명이다. 4층 규모의 보사노바 주변으로도 이디아 커피 같은 체인점을 비롯한 작은 카페들이 점점 자리를 잡고 있다. 속초의 크래프트 브루어리인 몽트비어도 이곳에 ‘속초해변점’을 열었다. 초여름인 6월의 주중에는 아직 한산한 모습이지만 주말이 되면 약속한 것처럼 사람들이 속초 해수욕장으로 모여든다. 돗자리, 파라솔, 캠핑 의자 등 각자 동원할 수 있는 짐을 모두 꺼내 해변에 자리를 잡는다. 바다만큼 공짜로 좋은 건 없으니까.
바닷가에서 지금의 별미를 즐기고 싶다면 동명항 오징어 난전으로. 1월부터 4월까지 금어기를 거친 후 5월부터 연말까지 열린다. ‘난전’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야외 시장을 뜻한다. 번호와 이름을 단 선명하게 푸르고 붉은 천막들이 쫙 깔린다. 가게의 모습은 다르지 않고, 파는 메뉴도 똑같다. 그날의 시세대로 오징어 요리를 판다. “언니, 오늘은 2마리 1만원.” 마음에 드는 가게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면 회, 물회, 무침, 통찜, 라면… 한국인이라면 모두 좋아할 음식이다. 주문도 비슷하게 하면 된다.
“회 두 마리, 통찜 두 마리, 라면 하나요.” 금방 수조에서 건져 올린 오징어가 접시에 담긴다. 오징어를 넣은 라면은 산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오징어내장까지 들었다. 오징어가 귀해지고 겨울이 되면 오징어가 있던 자리에는 양미리와 도루묵이 올라온다. 만약 겨울에 온다면 연탄불에 굽는 도루묵 냄새가 이곳을 채울 것이다.
짬뽕 말고 교동
닭강정이나 튀김으로 유명한 중앙시장, 순대의 고장 아바이마을, 어딘가 긴장하게 되는 대포항 등 변함없는 곳이 있고, MZ 여행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매력적이고 새로운 장소도 속속 들어선다. 멋진 곳이라면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가기 마련이라, 꼭 바닷가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비건 카페 루루흐도 그런 공간 중 하나다. 속초의 한적한 주택가인 교동에 자리 잡은 카페 루루흐는 오너들의 특별한 철학이 공간을 지배하는 곳이다.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 촬영을 허용하지 않고 최근엔 한 번에 2명만 착석이 가능하기에 요즘 카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그날의 커피와 음료, 비건 디저트, 카페 책장에서 고른 책에 절로 집중하게 한다. 휴식 같은 시간을 선물해준 루루흐에서 돌아 나오는 길목에는 ‘노웨어’라고 쓰인 작은 초록색 간판이 보인다. 큰 창을 통해 가득 꽂힌 바이닐이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음악과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뮤직 펍이다. “저희는 밤에 분위기가 좋은데요”라는 말에 이곳이 서울과 운영시간 제한이 다른 속초임을 깨닫는다. 다시 올 기약이 없어 방금 차를 마셨는데도 또 자리에 앉았다. 진토닉이나 하이볼,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면서 오너가 직접 고른 음악을 듣거나, 신청할 수도 있다. 교동에 점점 호기심이 든다. 카페 루루흐와 노웨어가 있는 곳이 교동이 되었다. 짬뽕 말고.
속초를 대표하는 동아서점 역시 교동에 있다. 초여름 들장미가 만발한 교동초등학교와 마주 보고 있다. 책을 다루는 모습에서 사랑이 넘실넘실 느껴지는 서점이 있는데, 바로 동아서점이 그런 곳이다. 한 책이라도 더 독자의 시선을 받게, 한 사람의 방문자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마련된 공간이다. 동아서점은 1956년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온 서점이다. 공동운영자인 김영건은 책 <속초>의 저자이기도 한데, “속초에 대한 책은 어디 있나요?”라고 묻는 손님들을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속초는 토박이들의 도시이고, 3대는 살아야 토박이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초 동아서점을 떠올렸다.
산으로
모처럼 날이 갠 날, 해변에서 홍게샌드위치를 먹어치운 뒤 산으로 향했다. 작은 어촌이었던 속초는 1970년대 정부 주도로 설악동에 관광단지를 조성하며 대표적인 여행지가 된다. 1980년대에 설악산 관광을 위해 한 해 속초를 방문한 사람 수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중에 나의 가족도 있었던 것. 설악산은 지금 속초를 만든 주역으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속초시 로고에도 설악산은 빠지지 않는다.
설악산은 좋지만, 등산은 사양하고 싶어 나는 설악산이 보이는 호텔을 예약했다. 어린 시절에 보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켄싱턴호텔 설악은 넘어져서 다섯 번 구르면 설악산 입구에 닿을 정도로 가깝다. 그렇다 보니 객실에서도 설악산의 웅장함이 보인다. 이곳에 오면 절로 두세 번은 심호흡을 하게 된다. 허파꽈리가 환영하는 맑은 공기가 주변을 감돌고, 어쩐지 상쾌한 기분이 든다. 1996년 오픈한 이곳은 어느덧 클래식 호텔이 되었다. 영국풍의 인테리어도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속초에 머무는 동안 너무 먹고 마시기만 했나 싶다면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을 추천한다. 주소지는 고성이지만, 속초와 한 몸처럼 어우러져 있다. 조각가 김명숙 관장이 남편과 함께 세운 미술관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고, 건물 저편으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미술관 입장료에 미술관이 운영하는 카페 바우에서 마실 수 있는 음료 한 잔이 포함되어 있어, 한국 근현대조소를 대표하는 이들의 작품을 보고 좀 더 머물며 쉴 수도 있다.
2박 3일 동안 바다로 산으로 바쁘게 다니는 사이 어느덧 주말은 사라지고 만다. 떠날 무렵엔 모두가 같은 마음을 고백할 것이다. 서울에 가기 싫다고.
10 PLACE TO GO
속초에서 헤매는 외지 사람들에게
동아서점
공동운영자인 김영건의 <속초>에서 동아서점에 대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의 속초 주재 기자였던 김종록 씨가 책을 함께 파는 문구사에서 시작해, 강원지역 대표 서점이 됐다. 현재는 김일수 씨 부부가 셋째 아들 김영건 씨와 함께 140년 가까이 운영 중이다. 작은 서점의 큐레이션과 큰 서점의 쾌적함이 조화로운 서점으로 귀여운 굿즈도 있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수복로 108
R.9펍
언덕 위에 위치한 롯데리조트 속초 꼭대기에 있다 보니 뷰는 그야말로 장관. 속초 해수욕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아트몬스터, 강릉 버드나무브루어리, 속초의 크래프트루트 등 다양한 브루어리 맥주를 맛볼 수 있다. 개인마다 팔찌를 착용하고 맥주 탭을 태그해 원하는 만큼 따라 마시는 방식으로 조금씩 맛보는 재미가 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대포항길 186 롯데리조트 속초 콘도 9층
예스닭강정
중앙시장 대신 이마트 근처에서 만난 닭강정 가게. 오징어먹물과 춘장이 들어간 블랙 닭강정이 별미다. 국내산 닭다리살과 통밀가루를 사용한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동해대로 4018-1
속초751 샌드위치
SBS <맛남의 광장>에서도 소개되었듯이 홍게의 주요 산지가 바로 속초다. 그 홍게살을 아낌없이 발라 넣은 샌드위치를 판매한다. 햄에그 샌드위치 등 여느 샌드위치도 판매하지만 역시 속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홍게샌드위치가 좋다. 일찍 문을 열고 일찍 닫는 편. 일찌감치 샌드위치를 포장해 해변에 자리 잡으면 부러울 게 없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교동로 75-1
호인스시
그날의 좋은 생선을 쥐어 내놓는 이른바 ‘오마카세 스시’를 선보이는 곳이다. 카운터 좌석이 8개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요즘은 1부, 2부로 나눠 예약제로 운영한다. 단정한 분위기 속에서 셰프들이 쥐어주는 스시를 맛볼 수 있다. 바닷가 도시인 만큼 재료의 맛은 보장되고 창작 메뉴도 매력적이다. 고성에서 바로 채취한 성게 등 신선한 바다내음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영랑로 19
남경막국수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는 막국수 전문점으로 막국수는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들깨막국수, 쟁반막국수 네 가지다. 100% 국산 메밀로만 만들어 순하고 고소한 맛이다. 요즘 유행하는 ‘들막’은 들깨가루와 들기름으로 고소함이 가득하고, 물막국수는 평양냉면처럼 시원하면서 고상한 맛이다. 있는 그대로의 맛을 즐기기 위해 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말고 먹어볼 것.
주소 강원도 속초시 동해대로 3888
보사노바 커피로스터스
롯데리조트 근처 속초 해수욕장 앞에 위치해 오며 가며 카페인 공급소 역할을 해준 곳. 소나무숲 너머 찰랑찰랑한 바다의 어우러짐이 예쁜 곳이다. 층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반려견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전 매장 중 유일하게 상하목장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메뉴를 선보인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해오름로 161
동명항 오징어난전
오징어철에만 맛볼 수 있는 오징어난전은 시장의 활기찬 느낌이 물씬 살아 있다. 올해 오징어가 풍년이라고 하니 좀 더 좋은 가격도 기대해볼 만하다. 매콤하게 무친 오징어회에 밥을 비벼 먹는 것도 별미. 밥 대신 ‘햇반’을 판매한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설악금강대교로 228
몽트비어 속초해변점
많은 사람이 찾는 몽트비어가 속초 해수욕장 앞에 작은 매장을 냈다.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췄고, 병맥주도 판매한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학사평길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