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역할 수 없는,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은 그럼에도 인간으로부터 인간을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는 건 인간이라고 믿는다. 온 마음을 다하여.

플라워 골드 이어링은 지예신(Jiye Shin), 블랙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제는 화보 촬영, 오늘은 인터뷰를 위해 이틀 연속으로 만났어요. 토요일 밤 9시인데 일을 하세요?
저에게는 아직 대낮인걸요?(웃음) 맞아요. 저도 힘들죠. 몸이 피곤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상담을 하든 진료를 하든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저를 찾아오는 사람 대부분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잖아요. 마음을 먹고요. 저도 최선을 다해야죠. 정성스러운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 생기는 힘이 대단해요. 보세요. 또 쌩쌩하잖아요.(웃음)

이곳에 오니 기분이 좀 달라지네요. 병원에 상담하러 가는 것처럼 긴장도 됐어요. 
의외로 제가 의사인 걸 모르는 분이 많으세요.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고 세부 전공으로 소아 청소년 전문의를 더 땄어요. 진료하는 병원은 따로 있고요. 저를 포함해서 유능한 전문의 네 명이 있어요. 여기는 제가 연구도 하고 책도 쓰고 부모 교육도 하는 곳이에요.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아청소년의학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에요.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능을 잘 발휘해야 하거든요. 충돌을 조절해야 하고 욕구를 조절해야 하는데 그 기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저 같은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해요. 정신건강의학과는 성인을, 소아청소년정신과는 0세부터 18세까지를 대상으로 하죠. 아이들은 아직 기능 발달이 완전히 확립된 상태가 아니에요. 소아과와 내과가 다른 것처럼 정신과 안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성인을 완전히 다르게 봐요. 다루는 질병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럼 선생님은 0세부터 100세까지 전 연령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거군요?
그렇죠. 100세 이상까지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커버 가능합니다.(웃음)

어제 화보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의 반응을 통해 느끼셨겠지만 모든 연령대 사람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더군요. 좀 과감한 촬영이었는데 어떠셨나요?
저도 놀랐어요. 어제 보니 숨어 있는 보석 같은 팬들이 아주 많더라고요.(웃음) <얼루어>의 명성은 저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요. 에디터님이 추구하는 방향이 있으니 저를 초대하신 거잖아요.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면 믿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을 대하는 기본 예의라고 생각해요. 못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거절하는 게 맞죠. <얼루어>가 육아 교육 서적이나 의학 서적도 아니고요. 스튜디오에 딱 들어갔는데 아주 기분이 좋더라고요.

왜 기분이 좋아졌을까요?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청년들이 잔뜩 모여 있더란 말이죠. 입구에서부터 에너지가 대단하더라고요. 젊음의 열기요. 화보 촬영에 관해서라면 그분들이 전문가죠. 잘 알지도 못하는 제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거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그냥 믿고 맡기면 될 일이에요. 서로 막 의논해가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보다요.

평소 여왕처럼 세팅한 헤어스타일을 보고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낯선 도전을 망설이지 않으세요?
뭘 경험해보지도 않고 ‘이건 절대 안 해, 이건 절대 해’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누가 봐도 나쁜 짓이거나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 아니라면 그게 뭐든 한 번쯤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있거든요.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또 그런 대로 얻는 게 있어요. 어제 정말 행복했어요. 제 삶이 다하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2021년 7월, 그 더위에 내가 참 멋진 걸 했지’ 나중에 생각날 거예요. 진짜.

어떤 의미로는 배우처럼 보였어요. 하루가 지나도록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내가 아닌 남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입하고 공감해야 하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더군요. 
정확히 보신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을 대하는 게 직업이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아주 즐거운 감정을 나누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픔을 겪고 있는 어려운 사람을 만나야 할 때가 많죠. 의사로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도와서 치료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조건은 깊은 이해로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가야 한다는 거예요. 선한 에너지로 온 마음을 다해야만 해요. 저는 평소에도 사람을 대할 때 온 마음을 다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요. 어느 자리에 있든 각자의 영역에서 에너지를 집중하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원래 또 에너지가 많아요. 열도 많고, 하하.(웃음)

화이트 재킷과 블랙 스커트는 모두 하나차 스튜디오 (Hanacha Studio), 이어링은 피터 도(Peter Do).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게 마음처럼 안 될 때가 있어요. 
우리가 또 사람이니까.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저기 멀리서 별빛 하나라도 반짝이면 그거라도 보고 가면 좀 낫잖아요. 살다 보면 좌절도 있고, 좀 힘들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서운하고 억울할 때도 있지만 그냥 저 방향으로 가야 되겠다 하는 마음은 있잖아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노력하는 거죠. 저라고 안 그렇겠습니까? 저도 후회되는 일도 있고요. 마음에 걸리는 환자도 있고 그렇습니다.

인간을 믿으세요? 완전히?
성선설, 성악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인간은 결국 교육을 받아야지만 인간다워져요. 그 교육이라는 게 문제 풀고 성적을 내는 그런 교육만 의미하는 게 아니고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르침이에요. 그건 저절로 알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사랑으로 그런 것들을 잘 가르친다면 인간은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믿어요. 인간이 인간에게 해를 끼칠 때도 있지만, 인간을 통해 구원을 받기도 해요. 인간의 용서는 구원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긍정적인 면과 가능성을 굳게 믿는 사람이죠. 현장에서 부모를 가르쳐보면요, 모든 부모는 참 열심히 배워요. 배운 걸 가장 잘 실천하는 분들이에요. 제가 맨날 부모가 바뀌면 아이들에겐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거든요. 그건 사랑으로부터 비롯해요. 그 또한 굉장히 인간다운 면모죠. 아마 그런 신념 때문에 제가 정신의학을 전공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어때요? 모든 인간에게 참 어려운 숙제잖아요.
나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요. 인간과 인간의 갈등 상황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내가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알아차리는 게 필요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그 자각이 정말 중요해요. 타인과의 관계가 나빠지거나 불편해질 때 ‘내가 지금 왜 힘들지, 나에게 어떤 특성이 있어서 자꾸 마음에서 곱씹어지는 걸까, 왜 화가 날까?’ 생각하면서 나를 이해해보고 성찰해보고 탐구해보는 태도가 필요해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거울을 보면 내가 보이잖아요. 나로부터 좀 거리를 둔 채 나를 보는 거예요. 남과 잘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와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내면의 나와 잘 지내면 남과도 잘 지낼 수 있어요. 그 다음으로 나와의 관계를 떠나서 상대방을 그냥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돼요. 그 사람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그 사람이 나를 아프고 힘들게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어쩌면 나를 타깃으로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그냥 그 사람의 특성일 수도 있는 거죠.

진솔한 태도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도 결국 오해가 생기고 쌓이는 것 같아요. 오해가 불씨가 돼서 꼭 사달이 나죠.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내가 내 마음을 다했다면 그거로 끝인 것 같아요. 내 마음과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건 상대방의 몫이에요.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그 사람의 몫이고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고 얼마큼을 남길 건지는 내가 결정하면 되는 거예요. 진솔한 태도로 진심을 다해서 관계에 임했다면 내가 할 몫은 다 한 거라고 봐요. 오해해도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긴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론적으로 12개월부터 36개월까지의 양육자, 중요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 패턴은 고정화되어서 그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많이 주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나를 알고 이해하려면 내 부모와의 관계를 짚어보면 도움이 되죠. 누군가의 자서전을 써주듯이 한발 뒤로 물러나서 기억나는 어린 시절을 메모해보는 것도 좋아요.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이나 유난히 행복했거나 아팠던 기억들이요. 우리 모두가 부모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부모가 있잖아요. 자식에게 부모는 굉장히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영향을 받아요. 가슴 아프고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요. 부모는 중요한 대상이지만 소중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중요한데 싫어요. 좋지만 싫기도 하고 밉기도 해요. 그게 정상이에요. 너무 중요한 대상이라 그래요.

블랙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네크리스와 반지는 모두 작가 한은석(Eunseok Han), 플라워 골드 이어링은 지예신, 후광처럼 동그란 빛을 내는 컬러 프로젝터는 헤일로원 바이 챕터원(Halo One by Chapter1).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라고 보면 될까요?
맞아요. 거리 두기 중요해요.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 자립이라고 이야기해요. 부모와 자식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해요. 자식이 부모를 한 번 이겨봐야 해요. 싸움박질하라는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기도 하면서 마음으로 이겨보는 거예요. 어릴 땐 부모가 절대적 존재잖아요. 철옹성 같고 생명의 동아줄 같은 존재죠. 성장하면서 동아줄을 탁 놓기도 하고 철옹성을 한번 딛고 올라보는 거예요. 그 경험이 중요해요. 부모는 꼭 정당성을 인정해줘야 하고요. 그게 독립이고 자립이에요.

청년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패배감, 우울과 분노를 잘 알고 계시죠?
굉장히 마음이 아파요. 여러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 지금껏 살아오면서 마음에 남아 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나누며 최근에 부쩍 청년들과 가까워진 것 같아요. 일대일로 만나서 그런 마음의 아픔과 어려움을 가까운 거리에서 직면하잖아요. 그때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단 말이에요. 그게 다 저에게도 전해오죠. 개인의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지금 사회가 쉽지 않잖아요. 저도 기득권이고 기성세대예요. 생각해보면 우리 때는 민주화라고 하는 아까 말한 별빛 같은 게 있었어요. 한곳을 바라보고 가면 좋은 세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라도 있었어요. 지금은 어둡기만 하죠. 청년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 커요. 우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한 기성 세대가 쥐고 있는 거, 누리고 있는 걸 좀 포기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길게 내다보는 정책적인 배려도 필요해요. 이런 말 공염불처럼 느껴진다는 거 아는데요. 청년들이 마음에 품은 꿈을, 그 횃불을 꺼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불씨를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그와 함께 부쩍 높아진 청년 자살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신과 의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요. 자살은 우울증의 중요한 증상 중 하나예요. 우울함이 심해지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됨됨이와 무관하게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우울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우울증을 짐작할 수 있는 증후가 있을까요?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기분이 2주 이상 간다든가 에너지가 쭉 떨어졌다든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평소와 기분이 다르다든가, 매사에 흥미가 떨어졌거나, 수면이나 식사에 변화가 생길 때는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병원에 갔더니 무조건 약 먹으래요. 돈 벌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라고 저를 찾아와서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 후배나 제자 의사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는데요. 좋은 의사는 좋은 약을 처방하기도 하지만 환자가 의사를 믿고 그 약을 잘 먹도록 하는 것도 실력이라고요. 정신과 의사들은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와 자세가 준비된 사람들이에요. 이들에게 내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일단 환기가 돼요. 환기효과.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돼요.

가까운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까요?
그럼요. 가까운 사람과는 마음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족이든 부모든 애인이든 친한 친구든 가까운 사람과는 마음을 나누면서 살기를 권합니다. 살다보면 사람이 뿌리째 흔들릴 때가 있거든요. 그 순간을 버틸 수 있는 진짜 마지막 힘은 가장 가까운 사람,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되게 좋았던 기억으로부터 힘이 생겨요. 엄마한테 제대로 혼날 줄 알고 잔뜩 웅크려 있었는데 엄마가 날 꽉 끌어안아준 기억 같은 거요. 아주 사소한 기억이요. 마지막 순간, 최소한의 나를 지켜주는 힘이 그 기억으로부터 와요. 생각은 모르는 사람과도 나눌 수 있지만 마음은 가까운 사람과 나눠야 해요. 가까운 누군가가 힘든 일을 말할 땐 굳이 해결책을 생각하지도 제안하지 말고 듣기만 하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블랙 재킷은 하나차 스튜디오, 목걸이와 반지는 모두 지예신, 종 모양의 테이블 조명 벨라는 라문(Ramun).

아동학대에 관해서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선진국이라고 하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도 아동학대는 사회 문제죠. 발생률을 보면 매년 비슷해요. 근데 우리나라는 최근 10여 년 전부터 급속하게 늘고 있어요. 그간 발견되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면서 수치가 늘기도 했지만, 실제로도 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아동을 학대하는 사람들은 그걸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식조차 없는 거예요.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잔혹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법과 제도와 인식이 절실해요.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란다면 법과 제도를 지금보다 훨씬 더 탄탄하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대와 폭력에 관한 기준과 인식의 개선도 필요하겠죠?
맞아요. 국가와 사회가, 어른이 아이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해요. 대부분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보호자인 경우가 많아요. 그 바탕에는 부모의 사랑이 있죠. 사랑한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경우도 허다해요. 우리 주변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식 변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온기와 단호함이 동시에 느껴지네요. 모두가 선생님에게 솔루션을 기대하잖아요. 진짜 괜찮으세요?
너무 소중한 일이고 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영역이라 보람 있고 뿌듯하긴 한데요. 아주 가끔은 내가 아닌 나로 살고 싶을 때가 있죠. 사실은 제 마음도 그래요.(웃음)

그럴 땐 어떻게 또 회복하세요?
침묵이요. 침묵 속에 있어요. 완전히 조용한 상황에 잠시 있어요. 눈을 감고 숨을 멈춰봐요. 참았던 숨을 다시 쉴 때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게 느껴져요. 생존이요. 생존에 대해 자각을 하면 굉장히 많이 회복돼요. 또 제가 그림을 좋아해서요. 그림을 봐요.

어떤 그림을 보세요?
반 고흐요. 그의 그림을 워낙 좋아해요. 그의 삶을 또 찾아보게 되죠. 인간적으로, 또 정신과 의사로서 보면 참 가여워요. 그렇게 가여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팠을까. 그게 그림에서 다 보이거든요. 기쁨과 좌절과 불행이 전부 느껴져요. 반 고흐는 고통스럽게 살다가 갔지만 그가 남기고 간 작품을 통해 우리는 또 영감을 얻는 게 참 감사하고 짠하고 아프죠.

드레스는 하나차 스튜디오, 반지는 작가 한은석, 슈즈는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밤이 늦었는데 밖에 또 손님이 오신 것 같은데요. 뭘 또 하세요?
<금쪽같은 내 새끼> 제작진이에요. 이제부터 또 어떻게 도움을 줄까 고민하고 의논해봐야죠. 다 끝나면 새벽 3시 정도 되려나요?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저는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어요.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요. 부모님에게도 사회로부터도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해요. 그냥 제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힘 닿는 데까진 해보려고요. 기왕 할 거면 최선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요.

큰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막 진짜 커요. 
저야말로 아주 행복했어요. 진짜 리트리트였어요. 우리 참 좋은 인연인 것 같네요.

    포토그래퍼
    Chae Da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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