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리트리트 #5 독이 약이 되는 시간
주사는 고통스럽지만, 보톡스는 달갑다. 주기적으로 찾는 나만의 리트리트는 바로 보톡스다. 따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만족감은 6개월간 지속된다.
1년 사계절 중에 산과 들로 쏘다니는 계절,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찬란한 여름을 보내기 위한 나의 바캉스 준비의 시작은 보톡스다. 6월쯤 되면 메신저 친구 추가를 해둔 피부과 채널들로부터 여름맞이 이벤트 메시지가 날아든다. 그중에서도 보톡스 이벤트를 유심히 살피며 ‘야호! 여름이 왔구나, 신나게 놀 때 됐지’를 외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나에게 보톡스 시술은 여름이 다가온다는 신호탄이자, 예뻐지는 시간이 도래했다는 기대감 그 자체다. 여름 휴가를 100% 상쾌한 기분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떠나기 앞서 몸과 얼굴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린다. 두고두고 꺼내 볼 추억 사진을 얻기 위한 만반의 준비인 셈이다.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것은 단연 보톡스다. 보톡스와의 첫 만남은 20살 무렵. 대학에 갓 입학해 외모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찌르고 거울 속 나의 모습은 한없이 부족해 보이던 시절, 피부과 시술을 둘러보다 사각턱 보톡스가 눈에 들어왔다. 간편하고, 싸고,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았다. ‘너 정도면 갸름하지, 할 필요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내 외모에 가장 엄격한 사람은 자신 아니던가. 시술을 강행했다.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받은 것이었는데 효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맞은 지 한 달 후 턱 라인이 갸름해지며 얼굴이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이어트했냐, 살이 빠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특히 사진을 찍으면 그 효과는 더욱 도드라졌다. 그때부터 보톡스는 나의 리트리트가 되었다.
누군가는 보톡스가 어떻게 리트리트가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고나길 예민한 내 성향엔 딱 맞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하고, 무엇보다 누군가 내 몸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리트리트의 대명사로 꼽히는 마사지나 스파는 내 취향이 아니다. 밀폐된 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내 몸을 조물거리고 있으면 마음이 영 편치 않달까. 사적인 공간을 침범당하는 것 같고, 정성스러운 손길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나에겐 주사기로 전해지는 원장님 손맛이 편안하다. 리트리트라고 하기엔 너무 고통스럽지 않느냐고? 물론 시술을 받을 때는 분명 아프고 무섭다. 그렇지만 3분에서 10분이면 끝! 그리고 이후에 따라올 효과를 떠올리면 ‘따끔’한 그 느낌이 힐링이 된다. 애초에 나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만족하는 사람이고, 느긋하고 점진적인 방식보다는 신속하고 확실한 결과로 기쁨을 느끼고 싶으니까. 특히 최근 가장 만족도가 높은 시술 부위는 승모근. 필 마스크 시대인 요즘 얼굴보다 보디라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요가와 홈트로 몸매를 가꿔보고자 했는데, 힘을 잘못 줘 오히려 승모근이 발달해버렸다. 황급히 목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승모근을 늘이고, 사라져라 염불을 외며 손끝으로 눌러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강력하게 느껴졌던 승모근에 보톡스를 맞자 한동안 씨름했던 근육 덩어리가 손쉽게 해결되면서 그야말로 나에겐 큰 만족감을 주었다. 한층 길어진 목과 날렵한 어깨 라인이 눈에 들어왔고,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며 이 변신에 만족감을 느꼈다. 이런 인스턴트 방식으로 힐링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겐 분명하고 확실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보톡스 시술이 단순하게 예뻐지는 효과가 있으니까 힐링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휴가를 기다리는 설렘, 예뻐진다는 기대감, 원하는 시술을 고르며 쇼핑하는 기분까지 느낀다. 우리는 모두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독특한 만족을 느끼며 나만의 리트리트를 향유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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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신지수
- 포토그래퍼
- HYUN KYUNG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