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철학으로 진짜 삶을 만들어가는 ‘오느른’ PD 최별

라이프스타일의 시대라지만,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나의 철학으로 진짜 삶을 만들어가는 최별PD의 이야기.

최별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해온 최별PD는 김제의 115년 된 폐가를 덜컥 사버렸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퇴사 대신 새로운 콘텐츠 기획안을 선택했고, 현재 자신의 시골살이 브이로그를 올리는 MBC 소속 유튜브 채널 <오느른>을 제작, 운영하고 있다.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더 한적한 시골이라 놀랐어요. 어떻게 이 집을 찾게 되었나요? 
집을 처음 본 건 유튜브에서였어요. 예전부터 구옥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의 오래된 빌라를 보곤 했는데 알고리즘이 점점 시골집을 보여주더라고요. 원래는 강화도의 집을 사고 싶었는데 땅값이 만만치 않아 포기하려던 찰나 이곳이 떴어요. 299평에 4천5백만원이라니 솔직히 너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잖아요. 영상을 보니 주변이 뻥 뚫린 평야인 게 신기해서 위성사진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이 집은 사지 않더라도 가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았죠.

집과의 첫만남은 어땠나요? 
실제로 집을 보러 온 날, 날씨가 참 좋았는데 해가 잘 들어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탁 트인 느낌도 좋았고 무엇보다 제가 한 번도 와본 적 없고, 앞으로도 와볼 일 없을 곳이라는  게 좋았어요. 해외여행 갈 때 낯섦에서 느끼는 미묘한 설렘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걸 느꼈죠.

폐가와의 첫 만남이 그렇게 설렜다니, 너무 뜻밖이에요. 
가끔 집을 고칠 때의 초반 영상을 다시 보곤 하는데요, 제가 봐도 뭔가에 홀린 사람 같더라고요.(웃음) 폐가 속에서 벽을 뜯으면서도 웃고 있어요. 마냥 좋았던 거예요.

마당의 텃밭에서 갓 수확한 채소. 키우는 것만큼 먹는 일도 부지런해야 한다고.

부러진 꽃가지를 꽂아놓았다.

아무 연고가 없는 곳의 폐가를 산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잖아요. 
그때 한창 서울에서의 삶에 권태기가 왔었어요. 직장생활도, 열심히 사는 것도, 도시생활에도 지쳤던 거죠. 여기라면 그렇게 조이면서 빠듯하게 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어요. 한 번쯤 심각하지 않게 내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4억5천도 아니고 4천5백이면 한 번쯤 그래도 되지 않을까? 충동적인 쇼핑보다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망하더라도 땅은 남잖아요.(웃음)

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 걸로 알아요. 
사실 집값보다 훨씬 더 들었어요. 마을분들은 이 집이 오래되었다 보니 아예 새로 지어야 한다고 말하셨는데 그러면 제가 옛날집을 찾아온 이유가 없잖아요. 현지 시공팀을 불러 나름대로 인건비를 아꼈어요. 특히 집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좋아해요. 서까래도 그렇고 옛 방식대로 애자에 전선을 둘둘 말아놓은 천장도요. 모든 걸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깊이, 신중하게 선택하기보다는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대로요.

별채에서 바라본 마당. 촬영 전날 내린 비로 풀의 키가 한 뼘씩은 더 컸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했다는 게 굉장히 즐겁게 들려요.
맞아요. 도시에서는 모든 결정을 철저한 계획하에 했었거든요. 저는 연출자이다 보니 일을 할 때도 계획대로, 오차나 변수를 최대한 줄이는 걸 중요시했어요. 그런데 삶이 계획대로만 되진 않잖아요. 서울에서의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걸 못 견디겠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분명 처음에는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 계속 까탈스러워지고 깐깐해지고 제 모습을 잃어버린 느낌이었어요. 여기서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소꿉장난하듯이 지내고 있는데요. 그래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거, 그래서 더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서울에서의 삶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서울에서 살 때는 제 소유인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어요. 학자금 대출을 갚고, 집도 내 것이 아니고 그러다 보니 소비를 해도 그 물건이 내 것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어요. 여기 오고 이제야 좀 착지한 느낌이 들어요. 내 땅, 내 집이 생겼다는 물리적인 사실도 있지만 저 스스로도 많이 변했어요.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서울에서는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할 때 만나는 사람들은 저를 털털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 내면에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면이 있을 수 있잖아요. 두 자아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그걸 표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하는 나는 멋져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 나는 어쩐지 엉성하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직업인으로서의 저만 성장하고 생활인으로서의 저는 점점 온데간데없어졌더라고요. 삶도 점점 단조로워졌고요.

별채 공간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그때가 아까 말한 권태기였군요.
이제는 그게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요. 삶의 태도가 달랐던 거죠. 서울에서도 지금의 마음으로 살았다면 재미있게 살았을 거예요.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인가요?
여기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너무 당연해요. 서울에서는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다 망한 것만 같았는데, 여기 와보니 망해도 큰일나는 건 없더라고요. 텃밭 작물이 망하면 뽑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죠. 이제 뭐든 편하게 할 수 있게 됐어요.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요.

너른 평야가 펼쳐진 집앞. 반려견 리본과 함께다.

도시를 벗어난 삶이 불편하지는 않나요?
적응력이 좋은 편이에요. 처음엔 벌레 많은 게 힘들었는데 이젠 거미를 봐도 그러려니 해요. 서울에서는 지저분한 곳에서 벌레가 나온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의 벌레들은 흙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냥 자기 살 곳에 사는 거라 생각하니 혐오감이 덜 들어요.

슈퍼조차 꽤 멀리 있잖아요.
그래서 더 좋은 점이 있어요. 도시의 퇴근길에서는 줄줄이 이어지는 간판을 보게 되잖아요. 여긴 주변에 간판이 하나도 없어요. 어떤 공간을 보면 무엇을 살지보다 저곳에서는 누가 살까를 생각하게 돼요. 소비가 아니라 생활을 상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그럼에도 서울이 그리울 때는요?
돈 쓰고 싶을 때요.(웃음) 예쁜 카페도 가고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고 싶을 때는 있으니까요. 아직 직장을 그만둔 게 아니니, 1~2주에 한 번씩은 가고 있어요. 어쩐지 갈 때마다 여행가는 기분이 들어서 서울에서 살 때보다 서울이 더 좋아졌어요.

매일의 끼니를 책임지는 텃밭 채소.

방송국을 퇴사한 줄 아는 사람도 많아요. 집을 살 때부터 이런 형태로 일하는 걸 생각했나요?
순간적으로 머리가 정말 빨리 돌아갔어요. 그때는 이 집이 너무 사고 싶었고, 마침 콘텐츠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가계약을 한 날, 내가 이 정도면 대한민국 직장인의 99퍼센트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 나름 열심히 살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삶에 지치고, 질리고, 의미를 못 찾는 게 이상하잖아요. 분명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어요. 솔직히 회사에서 기획을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제가 힘든 걸 아셨던 걸까요? 사실 티를 내긴 했어요.(웃음)

PD라는 직업이 신의 한 수였네요. PD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관심 있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잘하고 싶었어요. 변덕이 심해서 그 주제도 워낙 자주 바뀌는 편이었다 보니 방송PD가 저에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막상 일해보니 지상파 피디는 화두를 던지고 문제 제기를 끌어내는 것 외에도, 적당한 금액 내에서 적당한 퀄리티의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끌어내야 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더라고요. 어느 직업이나 그렇겠지만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있어요.

<오느른>의 초기 기획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무계획이 계획이다.’(웃음) 정말 회차 구성도 없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채로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받아준 게 이상했죠.

집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오피스 공간. 팀원들과 일하며 영상을 편집한다.

이제 1년 정도가 지났는데, 기획 의도에도 변화가 있나요?
무계획으로 쉬려고, 소위 힐링과 비슷한 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요. 방앗간 어머님을 인터뷰한 적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전에는 이곳에서 잔치도 하고, 활기가 넘쳤는데 이제는 장례식밖에 없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어떤 물음이 자꾸 저를 건드리더라고요. 나 혼자 편하고 좋으면 그만인가? 저는 PD잖아요. 여기 와서 쉬는 콘텐츠를 찍더라도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는 거예요. 이제 이곳에 활기를 더하고 싶어요. 여기에서도 사람이 산다는 걸 보여주고, 이곳의 빈 공간에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것만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이곳에서도 결국 시사 교양 PD군요.(웃음)
편안한 영상을 찾으러 <오느른> 채널에 오시는 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잘 모르겠어요. 회사에서도 재미가 없어질 수도, 조회수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작년 이곳에 올 때만 해도 그렇게 좋아하는 PD라는 직업을 그만둘 뻔했는데 오느른 채널과 구독자분들 덕분에 그만두지 않게 됐으니 더 사명감을 갖게 됐어요. 예쁜 힐링 콘텐츠를 넘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게 제 개인의 성장기이기도 하겠지만 <오느른>만의 차별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 채널의 색깔을 어떻게 분류할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오느른> 채널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무엇인까요?
영상채널에 그치지 않고 커뮤니티의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는데도 도시에서의 삶이 늘 외로웠거든요. 가족들 친구들 다 있는데도요. 그게 외로움이었단 것도 여기 와서야 알았어요. 말하자면 <오느른>이 동시대를 같이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아늑한 침실. 바람에 흔들리는 자개 소리와 드러난 서까래가 평화롭다.

실제로 북적이며 모여 사는 게 아니라, 정서적인 연결이 중요하다는 거네요.
제가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왜 나는 이런 걸로 힘들어할까?’라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알고 보면 다 비슷한 문제로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지치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만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비슷한 가치와 생각을 이어주고 싶어요.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돼요. 역시 저는 시사교양 PD를 벗어날 수 없나봐요.(웃음)

이곳에 와서 더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쉬려고 왔는데 지치지는 않나요?
체력적으로는 힘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모든 걸 주체적으로 하는 거라 재미있어요. 우스갯소리로 저를 김제에서 가장 유명한 하루살이라고 부르거든요. 솔직히 여기에서 일하는 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언제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일해야 할지 모르고, 그게 내일이더라도 이상하지 않아요. 결국 전 오늘밖에 없으니까 열심히 사는 거고, 오늘밖에 없으니까 즐겁게 할 수 있어요. 내일 아닌 오늘 꼭 하고 싶은 일을요.

쉼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 것 같나요?
서울에서는 쉴 때 침대에 누워만 있었어요. 월요일이 되면 다시 무기력하게 한 주를 겨우 버티고요. 그런데 핸드폰을 전원을 꺼놓는다고 충전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배터리가 없으면 충전을 해야죠. 저와 달리 쉬는 날이면 친구도 만나고 교외로도 나가는 친구들이 마냥 신기했어요. 저 체력이 어디서 나올까? 그런데 그게 맞는 거였어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것 말고 움직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찾는 게 곧 충전인 거예요. 스스로를 충전시키는 방법을 찾으니 쉬는 날도 너무 바쁘지만 그 바쁨이 기분 좋은 원동력으로 이어져요.

볕이 잘 드는 거실. 마당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삶인가요?
일단 저는 퇴사를 권하지 않아요. 하루아침에 회사를 그만두는 게 멋지게 그려지곤 하는데, 너무 극단적이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적인 능력이 필요할 테고, 그렇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했으면 해요. 물론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이곳에 산다는 것도 쉽지 않아요. 가능하다면 일년에 한 달 정도 지내보는 건 어떨까요? 단순히 농사가 좋다, 시골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잠시라도 도시를 떠나 ‘도시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길 권하는 거예요. 다른 세상이 있고, 다른 삶의 태도가 있다는 걸 경험해보는 거죠. 그 경험이 나를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요. 그럼 이제 어디서 살든 상관없어요.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KIM S.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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