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리트리트 #9 남의 손길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마사지 맛도 그렇다. 어깨를 짓누르는 통증이 찾아올 때면 그 손길이 더욱 그리워진다.

최근 몇 년간 나의 도피처는 술이었다. 아니, 술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망가져가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정녕 몰랐으니. 여유라도 생기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일주일에 3번 이상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는데? 이건 뭐 의심해볼 필요도 없었다. 남은 알코올이 배출되기도 전에 새로운 술이 들어가는 수준. 몽롱해진 기분, 해체된 의식, 경직된 일상에서 비로소 해방된 느낌이 그저 좋았던 거다. 숙취와 멍으로 얼룩진 다음 날을 마주하고는 살짝 후회하지만, 이내 다시 쳇바퀴를 빙빙 돌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나는 이 쳇바퀴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금주를 선언하게 된 것!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여러 활동에 제약이 생겼고, 이로 인해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많아졌단 통계자료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가 나에게는 오히려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급격한 체중 변화, 수면 부족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금주를 시도하던 찰나였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그렇게 좋아하던 술자리도 삭제됐고, 여기에 부지불식간에 타오른 신앙심도 촉매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 술은 더 이상 힐링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시간과 돈을 할애해도 백 번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이제 바뀌었다. 꽤 오랫동안 2순위를 지키고 있던 항목이 치고 올라왔다. 바로 마사지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마사지를 받고 싶었다. 단지 시간과 돈이 부족했을 뿐이고, 술이라는 항목에 밀렸을 뿐. 타인의 손길은 정말이지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살짝 아프면서도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은 쾌락으로 연결된다. 혼자서는 경험하거나 해소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더욱 그렇다.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면, 마사지를 받는 내내 기를 쓰고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는 거다. 특별히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그 분위기를 온전히 누리고 싶다는 게 이유다. 혹자는 편히 마사지를 받으며 한숨 자는 것을 선호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아니다. 그 시간, 그 공간을 완전하게 만끽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은가?

마사지는 내게 휴식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지난날의 유쾌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의 첫 경험은 엄마 손을 잡고 방문했던 찜질방의 스포츠 마사지다. 뚜득투득- 난생처음 몸에서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짜릿한 시원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에도 찜질방에 갈 때마다 마사지를 받고 싶다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베이징 어느 숍에서는 남자 마사지사로부터 발 마사지를 받았는데 그와 내내 장나라에 관한 수다를 떨기도 했다(중학교 시절, 장나라는 중국에서 엄청난 한류스타였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그녀의 모습을 마주했던 기억이 난다). 3일 안에 출발하는 땡처리 패키지를 예약해 떠난 베트남 다낭에서는 미숙련자로부터 받은 타이 마사지로 인해 오히려 없던 통증까지 생겼다는 웃픈 사연도 있다. 물론 장미꽃을 베드 위에 깔아두고 극진하게도 공주 대접을 받았던 5성급 호텔 & 리조트의 스파라든지, 뷰티 브랜드에서 직접 운영하는 최고급 스파에서의 경험도 있지만 모든 기억은 무엇이 더 좋았다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즉, 내겐 모든 마사지가 소중하다. 서비스의 질과 기술적인 숙련도를 평가하길 떠나 이유불문 마사지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마사지를 선택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다양한 마사지를 경험해보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취향은 다음과 같다. 오일보다는 건식이 좋다, 전신 마사지를 선호하지만 하체보다는 상체 위주의 마사지가 좋다, 압이 약한 것보다는 센 것이 좋다, 짧은 시간보다는 긴 시간 동안 받는 것이 좋다. 건식 마사지 받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적당한 압을 이용해 시원하게 눌러가며 근육을 풀어주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마사지를 받기 위해 방문한 태와선의 배은정 원장은 “얕은 층의 림프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가벼운 오일 마사지가 좋아요. 반면 건식 마사지는 뼈와 근육 깊은 곳까지 정확한 위치를 잡아서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에요”라고 말하며 내 몸에 손을 얹었다. 이전엔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항상 압의 세기를 높여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하지만 ‘세면 셀수록 좋다’라는 나의 생각을 바꿔준 것도 배은정 원장이었다. 뭉친 근육을 풀고, 뒤틀린 뼈를 교정하려면 정확하지만, 부드럽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 오히려 카이로프랙틱과 같이 강한 압으로 풀어낸 부분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쉽다고 말했다. 마사지를 잘 받았다 싶다가도 금세 뭉쳐버려 도루묵이 된 경험을 떠올리니 곧바로 이해가 갔다. 생각해보니 무턱대고 압의 세기를 높여달라고 요청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몸살이 오거나 근육통을 겪은 경우다. 반면 세심한 손길은 부드럽고 편안했다. 정확한 지점과 그와 연결된 부분을 섬세하게 풀어주어 통증 없이도 개운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거지. 이 맛에 마사지 받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취하지 않고도 공중을 걷는 듯 붕 뜬 기분이랄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휴식인가? 한땀한땀 나를 위한 수고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강제적으로 디지털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반가운 포인트인데, 휴대폰을 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방대한 양의 콘텐츠들과 잠시 동안 멀어질 수 있기 때문. 그저 누워 편안히 눈을 감고 테라피스트의 성스러운 손길을 느껴본다.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집중하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인 동시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순간이다. 이보다 더 괜찮고 즐거운 리트리트를 떠올리는 날이 올까? 꿈 같은 이야기지만 여행을 떠나 이국적인 공간에서 받는 1일 1마사지라면 좀 더 좋을 것 같긴 하다. 일단은 마감을 핑계로 재빨리 다음 약속을 잡아본다. 평소엔 그렇게 느리면서.

MY RETREAT LIST 

태와선의 ‘리디자인 바디라인 전신케어’
전신 마사지와 셀프케어 교육을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그램. 두개골과 뼈를 부드럽게 케어하면서 체형을 잡아주어 근육과 뼈가 바른 위치로 돌아갈 수 있게 돕고, 몸의 긴장도를 풀어준다. 집에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스트레칭과 요법을 배울 수 있다.
가격 60분 8회 3백50만원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68길 11 4층 문의 02-517-0881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타이 에센스 전신 마사지’
태국 전통 마사지 기법과 스트레칭을 더한 전신 마사지. 적당한 지압을 통해 뭉친 근육을 섬세하게 풀어주고, 에너지 순환을 도와 신체 균형을 회복시킨다.
가격 60분 21만원, 90분 28만원 주소 서울 중구 장충단로 60 문의 02-2250-8115

러쉬의 ‘탱글드 헤어 스파 트리트먼트’
퉁소, 바이올린의 신비로운 선율과 함께하는 두피 트리트먼트. 견고한 압을 통해 두피는 물론이고, 얼굴부터 데콜테 라인까지 커버한다. 긴장해 있던 몸과 마음을 평화로운 상태로 만들어주어, 2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깊은 휴식을 맛볼 수 있다.
가격 25분 7만원 주소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42길 10 2층 문의 02-790-7561

골드핸즈의 ‘체어테라피’
머리, 목, 어깨, 등, 팔, 손을 차례로 풀어주는 상체 관리 마사지. 탈의가 필요 없고, 짧은 시간 내에 관리를 받을 수 있어 간편하다. 특히 목부터 어깨까지 통증을 종종 느끼는 직장인이라면 꼭 한번 방문해볼 것! 전신 마사지와 다를 것 없는 개운함을 경험할 수 있다.
가격 60분 6만5천원 주소 서울 서초구 주흥길2 2 1층 102호 문의 02-549-1255

    에디터
    김민지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모델
    서유진
    비주얼 에디터
    이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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