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ora Radiance, 오연서
오연서는 용기를 내고 싶다고 했다. 듀베티카를 입고 새로운 빛을 찾기 위하여.
딱 일년 만이네요. 그대로인 건 그대로죠. 혹시 달라진 것도 있어요?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X>를 촬영했고 방송까지 잘 마쳤어요. 이사도 했네요. 한적한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실행을 했어요. 진짜 한적한 곳이라 주변에 자연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웃음) 불편한 점이 있지만 도심보다 인구밀도가 낮아 안전하게 야외 활동도 하고요. 자연과 함께하면 건강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거 진짜인 것 같아요. 훨씬 건강해졌어요.
신나서 자랑하는 걸 보니 진짜 좋은가봐요. 원래 자연을 좋아했어요?
20대에는 화려한 도시를 좋아했죠. 가로수길이나 압구정동, 청담동 돌아다니고 친구들 만나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어요. 저도 이렇게 30대가 되고 나니까 좀 달라지더라고요. 여러 면에서.
어떻게요?
조용한 곳에서 혼자 여유롭게 있는 시간이 그렇게 좋아졌어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고요. 어느 순간부터 꽃 사진을 그렇게 찍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냥 딱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어요.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이사한 후로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의 꽃이며 나무, 산, 하늘을 보고 있는데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서울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꽃이 좋아지는 시기가 오죠.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도.
그거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웃음) 그냥 받아들여야 해요. 얼마 전에 가족과 포천에 다녀왔는데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 좀 보실래요? 꽃이랑 산이랑 구름이랑 이런 풍경 사진이 잔뜩이에요. 진짜 예쁘지 않아요?
진심이 느껴집니다. 계절도 자연의 일부죠. 이렇게 더운 날 듀베티카의 패딩을 잔뜩 입고 촬영하는 건 어때요? 결국 여름은 가고 겨울은 오죠.
원래 여름을 더 좋아하긴 해요.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올여름은 좀 심하긴 한 것 같죠? 무서울 정도로.(웃음) 패딩도 입고 얼음 조각도 있으니까 겨울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추운 걸 힘들어해서 겨울이 반갑지는 않지만, 겨울이 좋은 단 하나의 이유가 있죠. 예쁜 옷이 많다는 거.
화보 촬영 때 보니까 요즘엔 두께도 길이도 다양한 패딩이 많더라고요.
저도 놀랐어요. 특히 퀼팅 패턴의 다운 재킷이 마음에 들었어요. 패딩은 겉옷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그건 코트 안에 이너로 입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얇고 가벼운데 따뜻하기까지 한 패딩이라면 멋스럽게 자주 입을 수 있죠.
몇 달 전 공개한 웹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도 신선했어요. 웹드라마는 처음이죠. 그건 어떤 도전이었나요?
작품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언제나 이야기와 소재, 캐릭터예요. 마음에 들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회당 30분 정도면 미드 폼, 그보다 짧으면 쇼트 폼이라고 한대요. <이 구역의 미친 X>는 회당 30~40분 정도의 미드 폼 드라마예요. 대본이 얇긴 얇더라고요. 막 재미를 느끼려고 하면 끝이 나니까 처음엔 적응이 안 됐어요. 분량이 짧다 보니 전체 촬영 기간도 짧은 편이었는데 그것도 되게 아쉽고요. 이제 막 탄력받았고 에너지도 쌩쌩한데 다 찍었다는 거예요. 확실히 기존 드라마와 호흡이 달랐어요.
시청자 반응도 비슷해요. 재미를 느끼려던 찰나 끝나서 아쉽다는 반응과 빠른 호흡의 전개가 기존 드라마와 달라서 좋다는 반응이 공존하더라고요.
저도 완성된 걸 봤는데 좀 짧게 느껴지긴 했어요. 회당 30분은 너무 아쉽고 40분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고 감독님에게 말씀드렸어요. 이건 제 생각이고요. 요즘 친구들은 콘텐츠를 빠르게 즐기는 게 익숙한 세대잖아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죠. 뭐.(웃음)
작년 인터뷰에서 <모던 패밀리>를 좋아한다고 했죠. 그 시리즈도 회당 30분이 안 되는 빠른 전개가 특징이네요. 어떤 캐릭터를 제일 좋아해요?
타이 버렐이 연기한 ‘필 던피’요.(웃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데 어수룩한 면이 있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이 좋아요. 마술에 진심인 그 태도도 너무 웃기고요. 순수하고 따뜻한 인물에게 정이 가는 것 같아요.
웃음을 잃었을 때 <모던 패밀리>를 틀어놓곤 합니다. 그럼 혼자 막 웃게 돼요. 열한 번째 시즌까지 거듭하면서 필의 아이들은 훌쩍 어른이 되잖아요.
그런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거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나이 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그 느낌이 참 뭉클하고 감동적이에요. 그래서 아직 <모던 패밀리>의 진짜 마지막 회를 보지 못했어요. 아껴놓고 있어요. 그 가족들과 이별할 준비가 안 됐거든요. 마지막 회는 아주 나중에 볼 생각이에요.
찾아보니까 첫 시즌부터 열한 번째 시즌까지 딱 10년의 세월이 담겨 있더라고요. 내년이 오연서 데뷔 20주년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와, 그렇게 들으니까 이상한 기분이네요. 20년이 맞긴 한데 그중 반은 일을 했고, 반은 평범한 개인으로 살았어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어때요?
어릴 땐 도망치고 싶은 적도 많았고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돌아보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래요.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고 아직 앞으로 달려가야 할 시간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 웃음이 나요. 그냥 다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나와요.
자기 자신이 너무 귀여워요?
귀엽잖아요.(웃음) 실수도 많이 했고, 창피한 기억도 있고, 후회되는 일도 있는데 어쩌겠어요. 그 경험들 덕분에 성장하고 배우고 변해왔다고 믿어요. 저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해가는 사람.
변화와 싫증은 좀 다를까요? 과거 아주 많은 인터뷰에서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는 말을 어김없이 했던데요.
하하. 변화랑 싫증은 좀 다른 문제죠. 운동 끊었는데 가기 싫은 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흥미를 잃는 거. 그런 쪽으로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에요. 여전히 그래요.
작년 인터뷰에서 도자기 만드는 취미가 생겼다고 했는데 그건 어때요?
안 해요! 도자기 안 만들어요. 좀 했더니 싫증이 나더라고요.(웃음)
인간적이고 좋네요. 일생 한결같은 사람은 좀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그렇다고 뭐 무서워할 것까지 있나요? 무섭다기보다 대단한 거죠. 저는 계속 변하는 사람일 뿐인 거예요. 그때 좋아하던 거랑 지금 좋아하는 거 다르고요. 그때 생각과 지금 생각이 또 달라요. 나이 드는 게 싫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또 싫지 않고요.
나이 드는 게 좋다는 말인가요?
저는 20대 때보다 30대인 지금의 제가 훨씬 더 좋아요. 진짜.
여전히 그대로인 건 뭐가 있어요?
취향은 그대로죠. 좋아하는 냄새, 좋아하는 촉감 같은 거요. 개인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은 쉽게 안 변하는 것 같아요. 늘 손이 가는 게 따로 있어요.
만나기 전에 생각한 이미지랑 좀 다르네요. 자꾸만 빗나가요. 수더분하다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차갑고 새침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죠? 그쪽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마음이 점점 커져요. 늘 좋은 사람일 순 없겠지만 노력하고 싶어요. 예쁘게 말하고 싶고, 좋은 기운을 전달하고 싶어요. 저 되게 털털하고 호탕하고 그래요.(웃음)
여행을 말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기지만 사무치게 그리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빵빵한 패딩을 입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나중에.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고 볼 수 있잖아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잠깐 머무는 것만으로 많은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많이들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상황이 좋아지면 따뜻하게 입고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직접 보고 싶어요.
왜요?
아이슬란드는 정말 낯선 곳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가 겁이 참 많아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것도 겁이 많아서인지도 몰라요. 바깥 세계가 막연히 불안한 거예요. 팬데믹 이전의 여행을 생각해보면 늘 가는 곳만 가던가, 출장으로 며칠 둘러보고 오는 게 전부였더라고요. 과감하게 떠난 적이 없어요. 상황이 다 나아지면 꼭 완전히 낯선 곳으로 용기 있게 떠나보고 싶어요.
어려운 나날을 겪으면서 무기력해지는 대신 전에 없던 용기를 내는 사람이네요. 또 한 번 예상이 빗나갑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용기 내보고 싶어요. 행복이 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되게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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