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 다음 단계

선우정아의 다음 노래를 예측하는 건 광야로 걸어가는 일만큼이나 아득해 보인다. 함께 도망가자고 손을 내밀다가 불현듯 돌진하며 밀어붙인다 한들.

블랙 톱은 릭오웬스(Rick Owens), 베스트 넥 티셔츠, 블랙 레더 팬츠는 송한나(Songhanna).

어떤 얼굴과 태도로 카메라 앞에 설지 두고 봤어요. 선우정아라는 존재에 막연한 확신이 있어서. 
평소 제 이미지가 없어 보이거나 이상하지 않았다는 좋은 의미로 들을게요. 저는 패션에 별 관심도 없고 자신감도 없어요. 다만, 오늘 같은 화보 촬영에서 제 눈빛이 평소랑은 좀 다른 식으로 표현되는 건 있죠. 저도 그건 재미있게 생각해요. 모르고 살던 얼굴이 한 번씩 나와요. 오늘도 그런 게 있었어요.

어색한 듯하면서 할 건 다 하는 모습이 담대해 보였달까, 계속 흘러가는 것 같았어요. 어때요? 
더 확 깨부수고 싶어요. 마음은 늘 그래요. 화보도 그렇고 제 음악도 그렇고. 근데 막상 다 깨부수고 마음대로 했다고 정말 멋있는 게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때그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적절히 깨부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3집 앨범 <Serenade>에 ‘인터뷰’라는 노래가 있죠. 직업적인 이유 때문이라도 궁금할 수밖에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로 활동한 이후 제 앨범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작곡에 참여한 곡이 없어요. 그 노래가 유일하게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참여한 노래예요. 그냥 갑자기 인터뷰에 관한 가사를 쓰게 됐어요.

갑자기요? 
네, 갑자기요. 그 당시에 인터뷰에 관한 좀 비뚤어진 감정을 품고 있었어요. 가사에도 나오지만 나는 지금 속이 많이 꼬여 있고,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은데 인터뷰를 해야만 했던 거죠. 약속한 거니까. 그럴 때가 있잖아요. 멘탈이 안 좋은 상태로 인터뷰를 했는데 그날 나 자신을 속이는 말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거짓부렁 같은 말이요. 끝나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그날의 대화가 세상에 나왔고, 저는 너무 싫었는데 사람들은 그 인터뷰를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진짜 힘들었어요. 잘 써주신 거에 대해서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갈 법도 한데 제 상태가 되게 안 좋았어요. 멘탈이요. 그럴 땐 제가 나빠져요. 되게 많이.

인터뷰의 모순일지도 모르죠. 늘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어때요? 잭슨 피자와 노티드 도넛이 곁에 있으니 그래도 좀 나았으면 좋겠는데. 
다 좋아요. 비뚤어진 상태도 아니고 꼬여 있지도 않아요. 최근 잠에 대한 문제를 겪고 있어서 좀 비몽사몽하긴 하네요. 오락가락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믿으세요?”라는 질문은 어때요? 
나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 미리 결정한 다음 어느 정도 연출하고 포장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하려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그날의 컨디션과 감정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말과 태도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완벽한 연출이 쉽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어릴 때부터 인터뷰 읽는 걸 좋아했어요. 위인전도 좋아하고요. 아직도 누군가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게 또 그 사람의 진짜같이 여겨져요. 저는 인터뷰를 믿어요. 대부분은.

자신의 지난 인터뷰를 다시 읽기도 하나요? 
몇 년 지난 걸 다시 보는 건 재미있더라고요. 주로 놀랄 때가 많아요. ‘이렇게 뜬구름 잡는 말을 했다니’.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변했다는 걸 확인하기도 하죠. 일기 같아요. 이 일을 하게 된 덕분에 어떤 시점마다 나눈 인터뷰에 당시 제 마음이나 생각이 일기처럼 남아 있더라고요. 이렇게 보면 보이거든요. 멘탈이 좋았던 시절의 나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내가. 확실히 결이 달라요.

‘인터뷰’ 다음으로 곧장 ‘도망가자’가 이어지네요. 짜릿한 역주행의 맛을 즐기고 있나요? 
앨범이 나온 지 좀 됐는데 다 늦어 생각지도 못한 사랑을 받고 있어요. 제 노래가 이렇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게 처음이기도 하고요. 코믹한 뉘앙스로 광고나 밈으로 소비되거나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위로가 되는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가 유쾌하게 소비되는 게 좋거든요. 근데 그걸 반대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처음엔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저보다 훨씬 더 ‘도망가자’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

그런 노래가 있죠. ‘도망가자’의 저작권자는 선우정아이지만 실질적 권한은 이제 대중에게 넘어간 것도 같네요. 
그러게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제 모두의 음악이 된 셈이죠. 아주 많은 사랑을 받게 된 덕에 어쩌다 보니.

‘도망가자’의 라이브 클립이나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을 보면 먹먹한 게 있어요. 저마다의 고된 삶이 당신의 노래를 통해 다시 힘을 내더군요. 
원래 댓글을 안 보고 살았어요. 저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반성도 많이 했고요. 얼마나 힘이 들면 한 자 한 자 자신의 이야기를 눌러 적었을까 싶어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어요. 댓글을 본 다음부터 저도 ‘도망가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좀 더 엄숙하고 경건하게.

셔츠와 바지는 자라(Zara), 저지 재킷은 나인티나인퍼센트이즈, 네크리스는 모멘텔주얼리(Momentel Jewelry).

실크 원피스는 잉크(Eenk), 액세서리는 허자보이.

니트 톱과 스커트는 잉크, 모자는 선우(Sunwoo).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토그래퍼
    Lee Jun Kyoung
    에디터
    최지웅
    스타일리스트
    구송이
    헤어
    구예영
    메이크업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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