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현역 대신 4주간의 훈련을 늠름히 마치고 24개월간 구청 자동차 민원실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해제한 에디터의 눈에 비친 <D.P.>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D.P.>가 끌어올린 트라우마
<D.P.>는 장점이 분명한 드라마다. 누구나 공감할 군 내부폭력에 대한 신랄한 고발을 통해 공감과 호응을 일으킨다는 것. 버디 물과 형사물을 섞어놓은 D.P. 요원 안준호과 한호열 콤비의 활약상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어느 술자리에서인가 들어본 것 같은 군인 캐릭터, 군대 내에 참으로 다채롭게 존재하는 악당 캐릭터를 통해 끊임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즐거움의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군대 내에서 행해지는 폭력을 전시하듯 반복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은 우려할 일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D.P.>에는 폭력적인 상황 그 자체를 전시하고 과시하는 것 같은 태도가 깔려 있다. 시리즈가 공개됐을 때 군대를 다녀온 전역자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PTSD,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긴다는 ‘PTSD 유발자’ 콘텐츠로 회자되며 한동안 ‘PTSD’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인기 검색어로 떠오를 정도였으니. 실제 군대에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전역 후까지 이어져, 수십 년씩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흔으로 남은 사례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처참한 인권침해를 당한 이들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일상적인 군 생활을 했던 이들이라도, 생활처럼 이어진 인권침해나 스트레스 탓에 전역 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이다. <D.P.>는 재미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이야기를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즐겨도 괜찮은 일인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 불편한 소재와 이야기가 재미있게 보이는 이유를 경계해야 한다. <D.P.>의 시대 배경은 2014년이고 그때에 비하면 지금 군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그래도 되는 줄 알고’,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등의 이유로 벌어지는 수많은 가혹행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PTSD의 영향 아래
그렇다면 <D.P.>로 인하여 대한민국 뭇 남성들이 열광하듯 떠올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뭘까? 신경정신의학과 전문의 이택중은 말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건, 사고에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후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장애,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혹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도 하죠. 혹자는 울분 장애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그 드라마를 봤어요. 저를 포함한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잊고 있던, 혹은 잊으려고 노력한 시간이 떠올라 힘든 지점이 있어 보이더군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주로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겪었던 충격과 공포로 인해 전쟁이 끝났음에도 전쟁의 공포 때문에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경우 내려지는 진단이었어요.” 평범한 일상에도 외상후 스트레스를 촉발할 만한 사건과 사고는 어김없이 존재한다. 이택중 전문의는 “뉴스만 봐도 각종 자연재해, 교통사고, 테러나 강도 등 전쟁보다 전쟁 같은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훤히 일어나고 있잖아요. 언제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이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연령, 인종,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보편적인 질환이 되었다. 사고 당사자뿐 아니라 그 친구나 가족 등도 영향 아래에 있다.
꽤 오래 함께 일한 동료는 비행기 타야 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한다. 출장이 잦은 직업 특성상 그때마다 무슨 약을 집어먹거나, 눈을 질끈 감거나, 귀를 틀어막거나,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든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이유 없이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항공기 사고보다 멀쩡히 거리를 걷다가 벼락 맞을 확률이 더 높다는 말도 소용이 없었다. 이택중 전문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회피 반응이라고 했다. “크든 작든 교통사고를 당한 일이 있는 사람을 본 적 있으세요? 사고 이후 차를 타고 운전하는 일을 피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게 회피 반응이에요. 사고와 유사한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는 것을 극단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반응인 거죠. 자기가 겪은 사고와 관련한 생각이나 말, 뉴스를 비롯해 환경적인 단서로부터 필사적으로 회피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결과 마음의 문을 닫고 외면하고 살게 되는 거죠. 정서적 위축상태에 빠지게 되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요. 심한 경우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험까지 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과도한 각성 상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매사에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거예요.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길 가다가 누군가 내게 말을 걸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진정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해요. 신경이 놀란 상태라 그래요. 외부 자극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있겠어요? 공부든 업무든 일상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이유 없이 신경질적인 사람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죠.”
전문가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안전한 건 가까운 신경정신의학과에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주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한다. 약물과 함께 진행하는 인지치료는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과 환경에 대해 갖고 있는 비현실적 믿음과 비논리적 추론을 스스로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게 돕는 치료법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식이다.
붕괴를 막기 위해
똑같은 사고를 당한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정서적 후유증만 경험하고 넘어간다. 사람의 마음은 다르니까 그걸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방식과 정도가 다른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저마다의 경험과 기질에 따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양상과 대처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평소 작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D.P.>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그러니까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 모든 걸 방관하는 불특정 다수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건 아닐까. 한준희 감독은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D.P.>가 군대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회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 감정들이 들어가 있어요.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의지 바깥에서 일어난 불행으로 고통받을 때 인간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이 스스로의 잘못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그 불행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구조적인 폭력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 연쇄를 끊을 수 있는 힘 역시 우리 안에 있음을 잊지 않길 바란다. 붕괴는 결코 예고 없이 일어나지 않기에. <오징어 게임>이 세상을 점령한 오늘, 한 달 전 세상을 달군 <D.P.>를 다시 열어본 이유다. 내재화된 폭력과 싸우는 안준호 상병의 선한 얼굴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