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안보현
갑자기 들이닥친 겨울 아침에 안보현을 만났다. 머리를 짧게 자르기 직전, 그는 남아 있는 불안과 부담을 털어내듯 다짐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거 어때요?
그럭저럭 괜찮아요. 잠이 많지 않은 편이거든요. 아무리 피곤해도 6시간 이상은 잘 못 자는 것 같아요. 자고 싶은 만큼 깊게, 오래 자는 사람 있잖아요. 어디 머리만 기대도 바로 잠드는 사람 보면 그렇게 부러워요.
그래서인지 밤새 비가 내려 갑자기 춥고 어두운 월요일 아침임에도 아주 멀쩡해 보이네요.
아, 오늘 월요일이죠, 참. 주식이 어떻게 됐는지 한번 봐야 하는데 늘 이렇게 잊어요.(웃음)
지금 슬쩍 체크해봐도 괜찮아요.
아니에요. 안 봐도 돼요. 봐도 잘 몰라서.
주식으로 재미 좀 봤어요?
그냥, 그냥 보기만 해요. 요즘 다들 주식을 한다니까 궁금해서 보는 거예요. 이거로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럼 뭘 보는 거예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 같은 것도 보고 이것저것이요. 제가 출연한 작품을 만든 제작사도 찾아보고요. 주식이나 돈에 포커스를 맞춘 건 아니에요. 저는 돈에 연연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유미의 세포들>과 <마이 네임>을 잘 마무리했죠. 요즘은 어때요?
거의 동시에 공개되긴 했지만, 촬영이 겹치진 않았어요. 최근까지 <유미의 세포들>을 찍었어요. 모든 작품에 공을 들이고 최선을 다하지만 <유미의 세포들>은 특히 더 신경 쓴 것 같아요. 웹툰의 인물을 구현하면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외적인 부분에 꽤 큰 변화를 주기도 했고요. 걱정도 됐고, 시청자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끝난 후에도 유난히 애정이 남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구웅’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괜히 마음이 가는 인물이었나요?
저랑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고, 비슷하지 않은 면이 많기도 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웅이는 제가 기존에 만났던 캐릭터랑은 좀 달라요. 그동안 장르물이나 센 캐릭터를 주로 하다가 굉장히 선한 인물을 만나서 그런지 여기 제 안에 좀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생각이 많으면 여운도 오래 남는 법이잖아요.
그 인물을 끌어당기는 것도 같고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아픈 손가락 같아요. 만약 그 인물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요. 그 사람을 바라본다고 상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힘을 쭉 뺀, 어딘가 어수룩한 그 모습이 달라 보이긴 하더군요.
확실히 다르죠? 그 머리나 수염도 그렇고 반바지에 슬리퍼도 그렇고 분명 멋있는 모습은 아니니까요. 멋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그 마음이 더 커요. 작품을 하는 동안 많이들 안보현 대신 구웅이라는 캐릭터를 먼저 봐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되게 뿌듯해요. 부쩍 성장했다는 느낌도 크고요.
아주 센 눈빛을 상상했는데 막상 마주 앉아서 보니까 되게 착한 눈이네요?
오늘 여기 오는데 회사 대표님이 기사 링크를 보내주셨거든요. <유미의 세포들>의 감독님, 작가님의 인터뷰가 있더라고요. 많은 후보 중에 왜 하필 저를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근데 직접 물어보진 못했어요. 인터뷰를 보니까 전작의 이미지가 너무 세서 걱정했는데 미팅을 하면 할수록 눈을 보니까 처음의 날 선 이미지는 사라지고 선한 모습이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웅이와 닮은 점이 많이 보여서 캐스팅하게 됐다고요.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이태원 클라쓰> 이후 <카이로스>와 <마이 네임>, <유미의 세포들>까지 쉼 없이 달려왔죠?
<이태원 클라쓰>에 최종 캐스팅되기 전까지 다섯 번의 오디션을 봤어요. 매 순간 목숨을 걸고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도 없겠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 많이들 쓰잖아요. 저도 그 말 많이 들었고요. 근데 전 좀 다른 것 같아요. 제 마음속에는 나름대로 계획한 인생의 그래프가 있거든요. 그 속도보다 오히려 지금 좀 빨라요. 그래서 조급함은 없어요. 물 들어와서 노 젓는다는 표현보다는요. 제가 좀 더 미완성인 상태일 때, 몸과 마인드가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쉬지 않고 일을 해온 것 같아요. 저는 이 일이 아직도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왜 쉬지 않고 일을 했을까요? 음, 살면서 엄청 힘들었던 시절이 있어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지금 이 순간을 바라면서 기다려왔기도 하고요. 체력적으로 지칠 때가 있긴 하죠. 그럴 땐 스스로 엄한 채찍질을 하게 돼요.
더 잘하려면 잘 쉬는 법도 알아야 한다잖아요.
맞아요. 제가 맡은 캐릭터에 더 빨리, 잘 이입하고 표현하고 싶은데 체력이 부족하면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돼요. 이제야 사람들이 강조하는 휴식의 중요성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해요. 근데 누구를 탓하겠어요. 뭐가 부족하거나 못하는 건 다 제가 잘 못해서 그런 거예요. 다른 이유를 대거나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아요. 좋든 싫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속상해할 건 속상해하고 말아야죠.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1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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