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안보현

갑자기 들이닥친 겨울 아침에 안보현을 만났다. 머리를 짧게 자르기 직전, 그는 남아 있는 불안과 부담을 털어내듯 다짐하고 있었다.

후디와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크롭트 니트는 아미리(Amiri).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거 어때요?
그럭저럭 괜찮아요. 잠이 많지 않은 편이거든요. 아무리 피곤해도 6시간 이상은 잘 못 자는 것 같아요. 자고 싶은 만큼 깊게, 오래 자는 사람 있잖아요. 어디 머리만 기대도 바로 잠드는 사람 보면 그렇게 부러워요.

그래서인지 밤새 비가 내려 갑자기 춥고 어두운 월요일 아침임에도 아주 멀쩡해 보이네요.
아, 오늘 월요일이죠, 참. 주식이 어떻게 됐는지 한번 봐야 하는데 늘 이렇게 잊어요.(웃음)

지금 슬쩍 체크해봐도 괜찮아요. 
아니에요. 안 봐도 돼요. 봐도 잘 몰라서.

주식으로 재미 좀 봤어요?
그냥, 그냥 보기만 해요. 요즘 다들 주식을 한다니까 궁금해서 보는 거예요. 이거로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럼 뭘 보는 거예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 같은 것도 보고 이것저것이요. 제가 출연한 작품을 만든 제작사도 찾아보고요. 주식이나 돈에 포커스를 맞춘 건 아니에요. 저는 돈에 연연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유미의 세포들>과 <마이 네임>을 잘 마무리했죠. 요즘은 어때요?
거의 동시에 공개되긴 했지만, 촬영이 겹치진 않았어요. 최근까지 <유미의 세포들>을 찍었어요. 모든 작품에 공을 들이고 최선을 다하지만 <유미의 세포들>은 특히 더 신경 쓴 것 같아요. 웹툰의 인물을 구현하면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외적인 부분에 꽤 큰 변화를 주기도 했고요. 걱정도 됐고, 시청자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끝난 후에도 유난히 애정이 남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구웅’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티셔츠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에나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괜히 마음이 가는 인물이었나요?
저랑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고, 비슷하지 않은 면이 많기도 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웅이는 제가 기존에 만났던 캐릭터랑은 좀 달라요. 그동안 장르물이나 센 캐릭터를 주로 하다가 굉장히 선한 인물을 만나서 그런지 여기 제 안에 좀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생각이 많으면 여운도 오래 남는 법이잖아요.

그 인물을 끌어당기는 것도 같고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아픈 손가락 같아요. 만약 그 인물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요. 그 사람을 바라본다고 상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힘을 쭉 뺀, 어딘가 어수룩한 그 모습이 달라 보이긴 하더군요. 
확실히 다르죠? 그 머리나 수염도 그렇고 반바지에 슬리퍼도 그렇고 분명 멋있는 모습은 아니니까요. 멋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그 마음이 더 커요. 작품을 하는 동안 많이들 안보현 대신 구웅이라는 캐릭터를 먼저 봐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되게 뿌듯해요. 부쩍 성장했다는 느낌도 크고요.

아주 센 눈빛을 상상했는데 막상 마주 앉아서 보니까 되게 착한 눈이네요? 
오늘 여기 오는데 회사 대표님이 기사 링크를 보내주셨거든요. <유미의 세포들>의 감독님, 작가님의 인터뷰가 있더라고요. 많은 후보 중에 왜 하필 저를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근데 직접 물어보진 못했어요. 인터뷰를 보니까 전작의 이미지가 너무 세서 걱정했는데 미팅을 하면 할수록 눈을 보니까 처음의 날 선 이미지는 사라지고 선한 모습이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웅이와 닮은 점이 많이 보여서 캐스팅하게 됐다고요.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이태원 클라쓰> 이후 <카이로스>와 <마이 네임>, <유미의 세포들>까지 쉼 없이 달려왔죠?
<이태원 클라쓰>에 최종 캐스팅되기 전까지 다섯 번의 오디션을 봤어요. 매 순간 목숨을 걸고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도 없겠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 많이들 쓰잖아요. 저도 그 말 많이 들었고요. 근데 전 좀 다른 것 같아요. 제 마음속에는 나름대로 계획한 인생의 그래프가 있거든요. 그 속도보다 오히려 지금 좀 빨라요. 그래서 조급함은 없어요. 물 들어와서 노 젓는다는 표현보다는요. 제가 좀 더 미완성인 상태일 때, 몸과 마인드가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쉬지 않고 일을 해온 것 같아요. 저는 이 일이 아직도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왜 쉬지 않고 일을 했을까요? 음, 살면서 엄청 힘들었던 시절이 있어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지금 이 순간을 바라면서 기다려왔기도 하고요. 체력적으로 지칠 때가 있긴 하죠. 그럴 땐 스스로 엄한 채찍질을 하게 돼요.

오버사이즈 니트는 구찌(Gucci). 데님 쇼츠는 리바이스(Levis). 안경은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더 잘하려면 잘 쉬는 법도 알아야 한다잖아요. 
맞아요. 제가 맡은 캐릭터에 더 빨리, 잘 이입하고 표현하고 싶은데 체력이 부족하면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돼요. 이제야 사람들이 강조하는 휴식의 중요성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해요. 근데 누구를 탓하겠어요. 뭐가 부족하거나 못하는 건 다 제가 잘 못해서 그런 거예요. 다른 이유를 대거나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아요. 좋든 싫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속상해할 건 속상해하고 말아야죠.

니트 베스트는 에트로(Etro).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1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토그래퍼
    Moke Na Jung
    에디터
    최지웅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헤어
    박내주(빗앤붓)
    메이크업
    엄아영(빗앤붓)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정은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