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가 달라졌다
화장품을 공들여 사듯 샴푸도 까다롭게 쇼핑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문제성 모발 환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샴푸의 효능과 종류를 꼼꼼히 따져보고 고를 때다. 지난 30년 동안 샴푸의 종류는 무궁무진해졌으니까.
온 가족이 거대한 용량의 샴푸 하나를 나눠 쓰던 시대는 끝났다. 피부 타입을 고려해 화장품을 골라 바르듯 샴푸 역시 지성과 건성, 손상용으로 골라 쓰고 얼굴만큼이나 예민한 두피 상태를 정확하게 고려해서 헤어 제품을 선택하는 시대다. 사실 샴푸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고 세분화된 건 그 역사가 불과 20년도 채 안 됐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는 차밍 샴푸 혹은 린스 겸용의 랑데부나 하나로 같은 샴푸가 대부분의 욕실 풍경을 지배했었다. 샴푸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변화의 조짐이 생긴 건 90년대 중반부터다. 그 주도 세력은 단연 대학생과 직장 여성들이다. 당시 염색 모발과 스타일링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염모제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염색이나 펌 등으로 인해 손상된 머릿결을 회복하는 헤어 트리트먼트 제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었다. 샴푸 시장이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 게 바로 이때다. 제품의 기능성보다는 가격에 가장 민감한 미용 소비재인 데다가 가족용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샴푸가 단순 세정제로서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 화장품에 근접한 클리닉 개념으로 들어선 것이다.
LG생활건강의 엘라스틴과 아모레퍼시픽의 미쟝센을 비롯해 다국적 기업인 피앤지의 팬틴, 헤어 디자이너의 이름을 걸고 나온 비달사순에서 선보인 중고가 가격대의 샴푸가 호황을 맞으며 본격적인 샴푸 시장의 포문이 열렸다. 헤어 제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시장이 확대되다 보니 제품 카테고리도 다양하게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샴푸 시장의 성숙기에 접어든 것이다. 모발 손상을 회복해주는 기능은 기본이고 얇고 가는 모발의 끊어짐을 방지하거나 두피의 과도한 유분기를 조절하고 비듬, 가려움증을 제거하는 샴푸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 한방 샴푸를 처음 알린 댕기머리와 비듬 전문 샴푸인 헤드앤숄더도 90년대에 첫 출시되었다.
천연 성분, 한방을 뛰어넘다
홈쇼핑의 메가 히트 상품으로 등극한 댕기머리부터 2000년대 후반에 출시된 아모레퍼시픽의 려, LG생활건강의 리엔까지 대한민국은 탈모 방지 샴푸에 열광했다. 그야말로 불과 2~3년 전까지 한방 샴푸는 샴푸 시장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리서치 전문 기관인 AGB 닐슨 미디어 코리아에 의하면 2011년에는 한방 탈모 방지 샴푸가 샴푸 시장 점유율 20%를 장악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모 샴푸의 독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탈모 인구가 증가하면서 수요도 함께 늘었지만 한방 원료 특유의 냄새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것. 그러면서 대두된 게 ‘성분’에 대한 관심이다. “두피도 일종의 피부에 속해요. 특히 헤어 케어 제품은 향에 민감한 부분이 크죠. 그런 면에서 피부에 순한 천연 성분이 각광받을 수 있었어요. 아베다 역시 천연 유래 성분을 09% 이상 함유한 헤어 제품들을 선보이며 급성장했어요.” 아베다 교육부 구세원 차장의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고 웰빙을 추구하는 경향과 맞물려 샴푸 업계 역시 자연에서 원료를 찾기 시작했다.
오가닉 열풍과 함께 아베다를 시작으로 록시땅, 르네 휘테르, 존 마스터스 오가닉 등이 인기 상종가를 누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샴푸의 1차적 기능인 세정력을 넘어 이너뷰티의 관점으로 건강한 모발을 가꾸고 싶어 하는 경향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매스 마켓에서는 찾아볼 수없는 고품질 원료가 함유된 전문적인 헤어 제품을 찾는 흐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죠.” 르네 휘테르의 박미미 프로덕트 매니저의 설명이다.
달라도 너무 달라진 샴푸 스펙
풍성하게 찰랑이는 머릿결은 샴푸의 영향이 크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욕실 속 샴푸부터 점검해볼 일이다. 두피와 모발 상태와는 아무 상관없는 샴푸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실리콘이나 파라벤이 함유된 화학샴푸에 길들여진 건 아닌지 말이다. 샴푸 성분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프리미엄 샴푸 시장을 팽창시킨 만큼 샴푸의 선택 폭이 꽤 넓어졌다. 얼마 전 신사동 가로수길에 오픈한 뷰티 편집숍 벨포트나 아이뷰티크, 분더샵의 라 페르바 역시 요즘 세대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해 샴푸 하나도 취향과 개성에 맞게 구입하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한다.
두피가 예민해지고 자주 붉어진다면 두피 상열감을 낮춰주고 쿨링 효과를 주는 아로마 샴푸를, 급격히 머리숱이 적어졌다면 모근을 강화하는 전용 앰플을, 쉽게 끊어지는 머리카락이 고민일 땐 모발의 수분 증발을 막는 수분 강화 트리트먼트를 선택해보자. 케라스타즈나 모로칸오일, 아모스프로페셔널 같은 살롱 브랜드나 해외 직구로만 구입할 수 있었던 레오놀그렐, 이보 등 기능은 기본이고 성분에 초점을 둔 제품들이 서서히 시장을 확대 중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샴푸나 써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좀 더 시야를 확대해보는 건 어떨까. 줄어드는 머리숱, 힘을 잃어가는 모발, 자꾸만 넓어지는 헤어 라인은 더 이상 통제 불능의 대상이 아니게 될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달라진 샴푸를 적극 활용해볼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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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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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 이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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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 구세원(아베다 교육부), 박미미(르네휘테르 프로덕트 매니저), 메이(라뷰티코아 도산점 실장), 이정태(LC 코스메틱스 교육팀), 김승연(신세계 인터내셔날 코스메틱 사업부), 다현(정샘물 인스퍼레이션 웨스트 부원장), 박성호(존 마스터스 오가닉 마케팅팀), 재스민(코레스 교육팀 트레이닝 매니저), 최수진(록시땅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