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BY ME

길을 걷다 같은 향수를 뿌린 사람을 마주치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까?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특별한 향수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RANDOM DIVERSITY FRAGRANCE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순간의 향 
향기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특정 향기를 맡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 일컫는다. <랜덤 다이버시티-프래그런스>는 이에 영감을 받아 완성된 전시로, AI와 뇌파를 이용해 작업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천영환과 프랑스의 조향사 잔느 파세라의 협업으로 성사되었다. 전시에서는 단순히 ‘기쁘다, 슬프다’ 등으로 표현되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우리가 느끼는 무한한 감정을 향기로 만나볼 수 있다. 참가자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선정하고, 이를 보여주는 VR기기를 착용한 후 다양한 향기를 맡게 된다. 이때 VR기기에 장착된 센서가 각 향기에 반응하는 뇌의 활성화도를 측정한다. 활성화도가 가장 높게 기록된 톱, 미들, 라스트 노트를 조합해 맞춤 감정 향수를 완성한다. 

REVIEW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모든 방문객에게는 민트티를 제공한다. 이는 후각의 리프레시를 도와 이후의 시향 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이후 감정을 불러일으킬 이미지 1장과 라벨링할 향수 이름을 정해, QR 코드를 통해 전송한다. 이미지 선정에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대부분 사랑하는 연인, 가족, 반려동물, 여행, 예술 작품 등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가져온다고.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설렘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던 첫 화보 이미지를 선택했다. 그때의 강렬했던 감정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것을 향기로 해석하면 어떤 느낌일까? 치과에서 본 듯한 의자에 앉아 VR고글을 착용하면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배경에 내가 고른 사진이 덩그러니 떠 있는 광경이 보인다. 그 상태로 11 가지의 톱, 미들, 베이스 노트를 시향하는데, 향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느껴지는 나의 감정에 오롯이 몰입해야 한다. 실제로 어떤 향은 아주 편안했고, 어떤 향은 아주 강렬해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때 VR고글 위쪽에 달린 센서가 향기에 따른 뇌 활성화도를 측정하는데, 시향을 마치면 가장 높은 활성화도를 기록한 향이 표시된 시험지를 받게 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향기를 어울리는 비율에 따라 앙증맞은 10ml 사이즈 병에 담는다. 이 조향 과정의 특징은 개인의 취향은 잠시 뒤로 미뤄놓고, 오로지 측정된 감정 데이터 값을 토대로 진행한다는 것. 나의 경우에는 평소 선호하는 그린 계열의 향조는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여겼던 블랙 커런트, 무화과, 앰버와 같은 프루티하고 따스한 향들이 등장했다. 나의 취향과는 일치하지 않지만, 선정했던 이미지를 떠올려보니 꽤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 신기했다. 의식의 향기에서 벗어나, 무의식이 반응하는 의외의 향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시의 백미 아닐까? 이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연상케 했다. 아픈 사랑을 잊기 위해 헬멧처럼 생긴 기계를 쓰고 뇌 속의 기억을 추적하는 남주인공 조엘처럼, VR 고글을 쓰고 나의 감정을 추적해보았으니까.
INFO 2022년 6월 26일까지, 3만5천원(20분) ADD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5길 11, 2층(4/26 이후 장소 이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길 11, 3층) TEL 02-2677-7487

MAISON 21G 

퍼스널 센트 진단으로 만나는 영혼의 향기 
메종 21G는 세계적인 조향사, 조안나 모나지가 론칭한 프렌치 향수 브랜드다. 메종 21G의 모든 향수는 고객이 직접 향을 조합하는 비스포크 형식으로 완성된다. AI 시스템을 기반으로 퍼스널 센트 테스트를 직접 운영하며, 이 테스트 결과를 통해 개인의 캐릭터를 해석하고 어울리는 향기를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이 추천 결과를 토대로 고객은 나만의 비스포크 향수를 완성해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재료에는 방부제,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 물질을 배제했으며,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비건 제품이기도 하다. 또한, 90% 이상을 생분해성 물질로 구성하는 등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착한 향수 브랜드의 공방이다.

REVIEW 클래스는 향수의 역사와 브랜드 정체성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향수에 대한 기본 지식을 알게 되고, 브랜드에 대한 친밀감이 생겨 이후 과정을 더욱 즐길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면 QR코드를 통해 퍼스널 센트 문답 사이트로 이동해 테스트를 진행한다. 성별과 나이 같은 기본적인 정보부터 시작해, 피부톤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이는 피부의 온도나 멜라닌 농도에 따라 발향과 지속력이 달라지기에 존재하는 항목으로, 매우 전문적이라고 느꼈다. 더불어 모험과 안정 중 무엇을 선호하는지 등 개인적인 성향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좋아하는 향의 무게, 계열, 평소 사용하는 향수를 묻는 등 취향에 대한 항목이 위치해, 다양한 관점에서 ‘나’라는 캐릭터를 해석하려는 의도가 돋보이는 문답지였다. 테스트를 완료하면 곧바로 성격과 향기 스타일에 대한 분석을 보여주고 더불어 유혹, 휴식 등 특정 상황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향기 조합까지 추천해준다. 나는 진저, 프랑지파니 등 개성이 강한 향기를 추천받아 부담스러울 것 같았는데, 시향해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쏙 들어 놀랐다. 알고 보니 원료가 되는 모든 향기는 조안나 모나지가 직접 블렌딩해, 보다 매력적인 상태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추천 향기를 토대로 다양하게 맡아보며 마음에 드는 것이 좁혀지면 톱, 미들, 베이스를 각각 한 개씩 선택해야 한다. 보통 향수 클래스에서는 향수를 완성하기 전까지 최종 향기를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이 큰 아쉬움인데, 메종 21G는 각 원료의 시향지를 겹쳐서 맡는 과정을 통해 최종 향기를 예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일로 맡았을 때는 감미롭던 향이 다른 향과 섞이며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많기에, 이 과정에서 브랜드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최종 3개를 선정한 후, 센트 디자이너가 어울리는 비율을 제시하고 몇 회의 수정을 거치면 비스포크 향수가 완성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메종 21G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보틀 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레터링은 물론, 원하는 그림까지 새길 수 있어 향기부터 디자인까지 나의 영혼을 상징하는 향수를 만들 수 있다.
INFO 16만5천원(60분), 커플 클래스 38만 5천원(90분) ADD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20 청담스퀘어 A동 3층 TEL 070-4771-0636

SALON DE NEVAEH 

한국적 매력을 지닌 나만의 니치 퍼퓸
살롱 드 느바에는 한국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전통적 향기를 선보이는 국내 니치 퍼퓸 브랜드다. ‘향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철학 아래 최상의 원료를 사용해 난, 매화, 치자, 제비꽃과 같은 동양적 요소를 향수로 풀어낸다. 니치 퍼퓸의 가장 큰 특징은 값비싼 고급 원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살롱 드 느바에 공방에서는 이런 최상급 원료를 사용해 나만의 니치 퍼퓸을 만들 수 있다. 바로 자연물에서 뽑아낸 향 물질을 의미하는 고급 천연 원료만 사용하는 올내츄럴 클래스다. 이 밖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나만의 향수를 만들 수 있는 스탠다드, 일반 원료와 천연 원료를 적절히 구성한 프리미엄 클래스도 있으니 취향에 맞는 수업에서 자신만의 향을 만들어볼 것.

REVIEW 올내츄럴 클래스는 전문 조향사가 사용하는 니치 퍼퓸 원료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클래스는 오롯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진행된다. 30~40가지의 다양한 향 원료를 하나씩 시향해보며 마음에 드는 향기를 선택한다. 이때 최소 10개에서 최대 15가지의 원료를 고르도록 안내받는데, 내가 이렇게 많은 원료를 골라 제대로 된 향수가 나올까 우려스러웠지만, 다양한 향이 조화를 이루면서 촘촘하게 레이어링되기에 오히려 향이 풍부해진다는 설명에 이내 걱정은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원료가 다양할수록 동일한 향기 레시피가 탄생하기 어려워지니, 희소성도 올라간다고! 톱, 미들, 베이스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내 취향에 따라 향료를 고를 땐 사탕 가게에 간 아이처럼 한껏 신이 났다. 선택을 마치면 클래스 시작 때 받은 부향 노트에 향료를 쭉 적어 내려간다. 이때, 조향사가 향료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준다. 각 원료가 톱, 미들, 베이스 중 어디에 해당되는지(제조를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은 아니지만, 완성된 향기를 상상해보는 데 도움이 된다), 각각의 원료가 가진 계절성이나 특징을 일러주는 것. 다음은 각 원료의 비율을 정한다. 모든 원료를 합해 총량 5g을 맞추면 되는데, 선호하는 순서에 따라 높은 비율을 배정하도록 한다.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제약 없이 나의 취향을 100% 반영할 수 있다! 비율을 완성하면 조향사와 함께 살펴보며 피드백을 받는다. 나의 경우에는 오이 향의 비율을 높였는데, 존재감이 워낙 강한 원료라 다른 향기를 덮어버려 낮은 비율로 조정하기를 추천했다. 많이 들어가면 남자 향수 느낌이 날 수 있는 향, 은은해서 비율을 높여야 좋은 향 등의 조언이 이어졌다. 피드백을 거쳐 최종 비율을 완성했다면, 제작을 시작할 차례. 유리 보틀이 기본 제공되지만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 살롱 드 느바에의 시그니처 도자기 보틀로 변경할 수 있다. 이후 EDT, EDP, 퍼퓸 중 원하는 농도를 선택하면 베이스를 더해 향수가 완성된다. 클래스의 자유도가 높아 원하는 향기 콘셉트가 뚜렷할 때 방문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다음에는 여름휴가를 위한 청량한 향수를 만들어볼까?
INFO 올내츄럴 10만원, 프리미엄 7만원, 스탠다드 5만원(각각 90분) ADD 서울 종로구 팔판길39(타 지점에서 이따금 팝업 클래스를 진행한다) TEL 070-7722-2003 

    에디터
    신지수
    포토그래퍼
    OH EUN BI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