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한류! 코리안 웨이브 & 프리뷰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 포스터와 아이돌 에스파의 사진이 나란히 걸릴 예정이다. 그것도 런던 한복판에. 오는 9월부터 V&A 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한류! 코리안 웨이브>는 패션과 뷰티, 컬처와 케이팝 등 장르를 통해 문화 강국이 된 한국의 대중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장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쭉 살아온 한국인으로 여전히 글로벌 속 한류의 실체에 더러 의심을 품는다. 제아무리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조회수 44억 뷰를 달성했다 한들, 배우 윤여정과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봉준호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어도 뭐랄까, 이것이 정말 개인에 대한 관심을 넘어 한국을 알리는 데까지 이어졌을까? 또는 현실감이 떨어져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의미로 런던의 빅토리아앤앨버트 뮤지엄(이하 V&A)에서 ‘한류’를 주제로 전시를 연다고 했을 때 눈이 번뜩 뜨였다. 지금이야말로 세계 속에서 바라보는 진짜 한국을 들여다볼 기회일지도 모른다. 전시를 기획한 총괄 큐레이터 로잘리 킴(Rosalie Kim)에게 연락했고, 큰 전시 오픈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그를 졸라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V&A에서 열리는 전시 <한류!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는 한류를 통해 최근 세계 속에서 각광받는 한국 대중문화를 조망하는 첫 번째 전시다. 케이팝 의상부터 한국 드라마 소품, 포스터, 사진, 영상, 뷰티와 패션까지 다각도에서 한류의 매력을 탐구한다. “V&A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닿아 있는 다양한 문화를 전시로 만들어 관객과 조우하는 박물관입니다.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등 패션 브랜드와 핑크 플로이드, 데이비드 보위 등 대중음악의 아이콘과 관련된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죠. 이런 박물관의 성격상 대중문화라는 주제를 전시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로잘리 킴이 말한다. 그는 한국관의 큐레이터로 9년간 재직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관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한국전쟁으로 한국을 기억하지만, 젊은 관객은 케이팝이나 드라마 등 최신 문화로 한국을 이해한다. 어떤 게 진짜 한국인지 궁금해하는 관객에게 우리 대중문화, 즉 한류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 마침 한류 콘텐츠가 부상하며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라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한류를 ‘한류(Hallyu)’라고 적는다니, 세계인도 실제로 한류라는 말을 쓰기는 하는 건가? “우리는 전시 제목에 한국어를 넣고 싶었는데, 한류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한류라는 현상은 나름 역사를 가지고 있죠. 전시도 단순히 현재 인기 있는 한국 콘텐츠를 나열하는 것이 아닌, 한류 역사의 출발점부터 관객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한류라는 단어가 한국 사람에게는 조금 낡거나 지루한 단어일지 모르지만, 서구에서는 여전히 신조어에 해당하거든요.” 실제로 한류는 2021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다. 옥스퍼드 사전은 매해 그 시대에 자주 쓰는 단어를 바탕으로 신조어를 업데이트하는데, 한류가 등재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한류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의 수가 급증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전시는 네 섹션으로 나뉜다. 첫 번째 섹션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From Rubble to Smartphones)’에서는 한국전쟁 후 황폐했던 1950년대부터 2000년대 문화 강국이 되기까지 역사적 배경을 소개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포스터와 기념비적 비디오아트를 선보인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등장하는 것이 이 섹션이다. 두 번째 섹션 ‘장면 연출(Setting the Scene)’에서는 일찍이 아시아 지역을 바탕으로 붐을 일으킨 드라마와 영화를 다룬다.
이 섹션의 하이라이트는 아카데미 수상작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반지하 화장실을 세트로 재현한 것.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나온 핑크색 옷을 입은 진행 요원의 의상과 게임 참가자의 녹색 운동복도 전시에 포함된다.
세 번째 섹션인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에서는 세계적으로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케이팝 음악과 문화가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소셜미디어와 팬덤의 역할을 살펴본다. 외국에는 덜 알려졌지만,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시작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블랙핑크와 빅뱅 등 아이돌 가수 스타일링을 전담한 비주얼 디렉터 지은과 방탄소년단, 엔시티 등과 작업한 스타일 디렉터 발코와 협업해 새로운 ‘아이돌’ 스타일을 제안하기도.
마지막 네 번째 섹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에서는 한국의 뷰티와 패션을 다룬다. 영화 및 드라마, 케이팝이 긴밀히 움직이며 형성한 한류라는 흐름이 어떻게 패션이나 뷰티 등 다른 산업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관객이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이다. 여기서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발전을 거듭해온 화장품 패키징 디자인 변화를 둘러보고, 한국 패션 디자이너의 하이패션 의상 및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 디자이너의 디아스포라 패션 의상 20여 점이 소개된다. “카이, 디앤티도트, 블라인드니스는 모두 각자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젊은 브랜드입니다. 카이의 계한희 디자이너는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했고, 여러 아이돌 의상을 제작했습니다. 디앤티도트의 박환성 디자이너 역시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했고, 서울/런던 슬로건을 통해 서울과 런던이라는 두 도시를 잇는 스트리트 패션을 보여줬죠. 블라인드니스는, 젠더리스라는 트렌드가 지금처럼 유행하지 않을 때부터 젠더리스라는 개념을 패션에 선보여왔습니다. 로맨틱한 무드와 전복적인 개념을 묘하게 조화시켜 패션으로 선보이는 재능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전통 스타일을 세계적으로 표현하는 데 능한 스타일리스트 서영희는 V&A를 위해 특별히 서양 속옷과 한복 속옷 스타일링 작업을 선보였고, 전통 한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차이킴의 철릭 원피스, 시지엔이가 제작한 케이팝 한복, 궁중 보자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단하의 핑크색 저고리, 최지원, 다시곰 등 신진 디자이너들이 한복에서 영감 받아 디자인한 일상복도 만날 수 있다.
“전시 준비 기간이 팬데믹 기간과 겹쳐 한국을 더 많이 방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브렉시트와 최근 유가 상승 탓에 운송의 어려움도 겪었죠. 그러나 전시 참여자들이 응원해주셔서 힘을 얻었어요. 특히 영화, 드라마, 케이팝의 산업 뒤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안무가 및 스타일리스트와 소통하면서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라고 말하는 로잘리 킴.
한국 대중문화를 사랑하고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있는 이라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전시. 막 한국 문화에 눈뜬 이에게도 더없이 좋은 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전시를 보고 나서 드라마나 영화, 케이팝을 접하면 또 다른 새로운 눈으로 한국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그것이 바로 이 전시의 목적이자 소명이다.
*〈한류!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는 오는 9월 24일부터 2023년 6월 25일까지,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 뮤지엄에서 개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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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지은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V&A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