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상 위의 묘합
길어진 밤을 함께할 그윽한 전통주 한 잔. 전통주 전문가 네 명이 우리 술과 안주의 묘합을 찾았다.
천수현 | 옥수동 전통주&내추럴 와인 보틀숍 애주금호 대표
술아 순곡주 × 모둠 치즈와 숙성햄
‘술아 순곡주’는 발효주에 증류주를 섞는 과하주 기법으로 만들었다. 은은한 꽃향기에 매실, 복숭아, 살구의 농밀한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마일드한 카망베르부터 고소하고 짭조름한 캐시밸리 콜비 잭까지, 어떤 치즈와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짭짤한 초리조와 숙성 햄인 하몽도 마찬가지. 더 가벼운 안주가 필요하다면 피스타치오나 호두 등 견과류도 추천한다.
추사 40 × 절편 떡구이
붉은빛의 ‘추사 40’은 사과 와인을 오크 통에 숙성해 만든 술이다. 은은한 사과 향과 참나무의 스모키한 풍미가 매력적이다. 알코올의 작열감이 입안을 자극하지만 40도의 높은 도수에 비해 목 넘김은 부드러운 편이다. 오크로 숙성한 술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텁텁한 맛은 곁들이는 음식으로 중화할 수 있는 정도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운 절편 떡구이는 그 역할을 탁월히 해내는 안주다.
임경원 | 신사동 전통 주점 도슬박 대표
솔송주 × 전복구이 리소토
청량한 솔향기를 물씬 풍기는 ‘솔송주’는 향만큼이나 맛도 깔끔해서 조미료를 적게 사용한 메뉴와 페어링하기 좋다. 조개 육수에 쌀을 볶고 마늘과 전복 내장으로 향을 낸 전복구이 리소토는 부드러운 솔송주에 곁들일 메뉴로 제격이다. 리소토 위에는 버터에 구운 전복과 식감을 더할 차조튀김, 해산물의 비린내를 없앨 처빌과 딜을 올려 마무리했다. 허브 오일을 뿌린 자작한 조개 육수와 먹으면 감칠맛이 돈다.
문배술 40도 × 연저육찜
도수가 높아 진한 알코올 향이 나는 술은 연저육찜처럼 향이 강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쌉싸래한 맛을 안주로 중화할 수 있기 때문. 연저육찜은 삶은 돼지고기를 굽고 계피와 생강 향을 더한 간장 소스에 조린 요리다. 얇게 깐 깻잎 아이올리는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수북이 올린 깻잎 슬라이스가 향긋한 끝맛까지 책임지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술잔을 채우게 된다.
이호진 | 연남동 전통주 다이닝 바 수을관 대표
부자진 × 참외
한국 최초의 크래프트 진인 ‘부자진’은 향만 맡았을 때는 시트러스 계열 향수처럼 느낄 정도로 기분 좋은 청귤 향이 난다. 영국 헨드릭스 진에 오이 슬라이스를 넣어 청량함을 배가한다면, 부자진을 마실 때는 상큼한 참외 안주가 그 역할을 한다. 참외의 당도가 아쉽다면 꿀을 살짝 뿌릴 것. 여기에 소량의 딜까지 곁들이면 과즙과 꿀의 달콤함과 산뜻한 허브 향이 어우러져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지란지교 약주 × 떡볶이
와인이 포도 품종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한국의 전통주에서는 발효제인 누룩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란지교 약주’는 무화과 잎에 싸서 직접 디딘 누룩을 사용해 과실 향이 느껴진다. 잘 익은 참외와 포도의 달큼한 향이 강한 편. 매콤한 떡볶이는 지란지교 약주의 감칠맛을 배가해주는 환상의 벗이다. 칠링한 지란지교 약주 한 잔에 걸쭉한 양념이 밴 떡과 어묵 한 입을 곁들여보기를. 단짠 조합은 언제나 옳다.
박장호 | 포시즌스 호텔 서울 오울 바텐더
사시통음주 × 양고기 튀김과 김부각
‘사시통음주’를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사시사철 빚어 친구들과 마시는 술이라는 뜻이다. 과거 문헌에 기록된 레시피를 복원해 빚은 이 술의 가장 큰 특징은 강하게 느껴지는 신맛이다. 군침 돌게 하는 신맛이 식욕을 돋우니 식전주로도 알맞다. 양고기 튀김과 김부각은 중독성 강한 감칠맛이 매력이다. 사시통음주의 산미가 짠맛을 덜어주니 메인 메뉴를 즐기기 전 애피타이저로 선택해도 좋을 조합이다.
풍정사계 춘 × 불고기버거
햄버거와 전통주는 의외의 케미를 이루는 조합이다. 도수가 높지 않고 청량한 약주는 햄버거의 느끼함을 잡아줘 맛의 궁합이 훌륭하다. 약주로 분류되는 ‘풍정사계 춘’과 한우 패티, 쌈장 소스로 만든 오울의 불고기버거를 곁들일 때가 딱 그렇다. 풍정사계 춘은 숙성한 누룩과 상큼한 배, 메밀꽃 향이 강한 편이라 햄버거의 달콤 짭짜름한 양념과 고기 패티로 기름진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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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고영진
- 포토그래퍼
- KIM MYUNG JUN, JUNG SOO A, HYUN KYUNG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