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매너

아름다워 보이려고 하는 화장인데, 화장하는 장소와 태도 때문에 그 화장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화장 습관을 되돌아볼 때다.

목걸이는 블랙 뮤즈(Black Muse).

목걸이는 블랙 뮤즈
(Black Muse).

<교양 있는 화장>

메이크업 아티스트 린다 칸텔로는 수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 있다. 그녀는 지난번 서울 여행에서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한국 여성들은 기초 제품을 충분히 발라 자연스런 피부 톤을 유지하면서도 투명한 피부 표현을 즐기는 것 같아요. 섬세함이 요구되는 아이라인도 멋지게 완성하는 그녀들의 메이크업 실력은 거의 프로에 가까워 보였어요. 그러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운전을 하면서 메이크업을 한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면서도 풀 메이크업을 완성하는 ‘달인’급의 메이크업 실력은 메이크업 프로조차 감탄하게 할 정도다. 실제로 ‘지하철 메이크업녀’ 스토리부터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마스카라를 바르거나, 신호 대기 순간에도 속눈썹을 붙이거나, 아무 곳에서나 립스틱을 쓱쓱 바르는 것은 흔히 마주하는 광경이다.

“우리가 그만큼 치열하게 산다는 거겠죠? 쫓기는 하루를 살다 보면 사실, 메이크업이든 옷차림이든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요. 옷이야 전날 준비해놓을 수 있지만 메이크업은 미리 해놓고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한 지인은 이야기한다. 그녀는 “근사한 드레스룸에 그야말로 화장(化粧)을 할 수 있는 화장실(化粧室)을 바라는 것은 아니에요.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보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라며 대한민국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불평등한 공간에서 찾기도 한다. 정말 그녀들은 시간이 부족해서, 화장실이 좁아서 밖에서 메이크업을 하는 걸까?

프랑스 여자들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의외로 공을 들여 화장을 했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또 그녀들은 반드시 눈이나 입술 중 한 군데는 메이크업으로 포인트를 준다. 그러나 파리의 카페나 지하철에서 메이크업을 하는 여자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개인의 교양의 문제겠죠? 사실 아름다움을 위해 메이크업을 하는 것인데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화장을 한다는 것이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잖아요?” 프랑스에서 만난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말이다.

프랑수아 나스는 메이크업을 통해 아름다워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이크업을 하는 과정에서의 아름다운 마인드를 강조했다. “메이크업을 통해 아름다워질 수 있지만, 그 과정 역시 아름다워야 진정한 아름다움의 완성이겠지요?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아름다워지려는 태도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화장하는 여자는 결국 여자 화장실의 문을 살짝 열고 다른 사람 앞에서 볼일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 심우찬 (뷰티 & 패션 칼럼니스트, <프랑스 여자처럼>의 저자)

<화장의 예의 범절>

한번은 동생이 “누나, 지하철에서 화장해도 되는 거야?” 하고 묻기에 “원래는 안 되지만 파우더 정도는 두드릴 수도 있지” 했더니 “스킨부터 다 바르던데?” 해서 세상에 그런 여자가 있나 하며 흉을 봤다. 하지만 나 역시 택시 안에서 수없이 마스카라를 발랐음을 고백한다. 그러다 급출발에 마스카라를 떨어뜨려 시트에 마스카라를 묻힌 적도 있다. 예뻐지겠다는 일념 아래 여자들이 벌이는 ‘와일드한’ 행동은 참 다양한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 여자들은 다른 나라 여자들에 비해 ‘화장발’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비행기를 탔을 때 목격한 광경이다.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 여자들이 일제히 ‘콤팩트’를 꺼내 얼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외국인 여자가 마치 걸 그룹 에프엑스의 ‘누 에삐오’ 댄스 동작처럼 과장되게 얼굴을 좌우로 두드리며 우리나라 여자들을 비웃었고, 우연히 그걸 발견한 나는 그저 빤히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외국인들 눈에 이상해 보이는 게 식사가 끝나자마자 식탁에서 정성껏 립스틱을 바르는 행동이다. 때론 본격적으로 립브러시를 놀리기도 한다.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그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외국에서 화장은 ‘레이디스 룸’에서 고치는 게 상식이다. 셀프리지스 백화점의 창업기를 담은 영국 드라마 <미스터 셀프리지스>를 보면 창업자가 화장품 매장을 일층에 배치해 일대 소란이 일어난다. ‘숙녀의 비밀을 어떻게 만천하에 공개할 수가 있냐?’는 문제였다. 비록 100년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화장을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으로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비위생적이라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꺼낸 콤팩트가 퍼프에 기름때에 절어 검게 보이는 끔찍한 광경이다. 얼굴의 피지를 제거하지 않고 그냥 팡팡 두드리고, 퍼프를 자주 교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 휴대폰 마우스 등 세균이 그득한 것을 만진 후 립밤을 찍어 바르는 걸 보면 비위가 상하는 걸 떠나 ‘저 사람 저러다 병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반대로 화장을 안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여자의 화장은 ‘기본적 예의’로 여긴다. ‘여자에게만 화장을 강요하는 것은 성 차별적이며 인권 침해다’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홍콩에는 화장을 아예 안 하는 여자가 참 많은데 깔끔하고 화사할 거라고 기대하는 ‘엘리베이터 걸’의 맨 얼굴을 봤을 땐 실망을 넘어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화장을 안 하는 여자가 급격히 많아졌다. 10여 년 전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화장이 유행인 탓도 있고, 경기가 안 좋다 보니 화장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인의 결혼식이며 회사의 공식 행사에까지 맨 얼굴을 고수하는 건 결례가 아닐까? 자기가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그 자리를 존중해서 외모를 꾸미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난을 피하고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이기에 딱 적합한 아이템이 비비 크림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지나치게 밝은 컬러의 비비 크림을 발라 목과 경계가 생기거나, 목은 노란데 얼굴은 분홍색이나 복숭아색이거나 피지와 뒤섞여 탁한 회색빛으로 변한 얼굴을 목격한다. 또, 자연스러운 대신 커버력이 떨어지는 비비크림을 수시로 덧바르지 않아 다시 맨얼굴이 되는 경우도 많다. 자기 피부색에 맞는 비비든, 파운데이션을 골라야 되는데 ‘에이, 이거나 하나 바르면 되겠지’ 하는 심사로 딱 얼굴까지만 바른 것 같다. 더욱 당혹스러운 건 햇빛에 반사된 얼굴에 솜털을 넘어서 콧수염이 무성할 때.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가 의외로 흔하다. 가까운 사이라도 “너 이빨에 고춧가루 꼈어”란 말을 선뜻 못하듯, “콧수염 났어”란 말은 더더욱 하기 어렵다. 콧수염을 기른 여자가 눈썹이라고 잘 다듬었을 리 없다. 피부 화장을 간단히 하는 건 좋은데 바탕이 잘 다듬어져 있지 않으면 인상이 지저분해 보인다.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영육일치사상’을 간직해왔다고 한다. ‘아름다운 외모에 아름다운 영혼이 깃든다’는 생각인데 역사서만 봐도 남녀를 막론하고 화장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여성들이 모두 연지를 찍고 화장을 한 모습이 남아 있고, 신라 시대에는 남성인 화랑(花郞)이 여자보다 화려하게 화장을 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유신의 누이동생이 연하게 화장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귀족 여성층에겐 화려하지 않되 깔끔하게 화장하는 것이 유행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여염집 여자들은 한 듯 안 한 듯, 즉 요즘의 ‘생얼 화장’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기생과 궁녀만이 진한 화장을 했는데, 여염집 여자가 자기 얼굴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화장(소위 ‘화장발’)을 할 경우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벼운 화장을 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서 깨끗이 세수를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빗은 후 얼굴에 분을 바르고 한숨 자서 피지에 의해 밀착되게 했다고 한다. 혹은 얼굴에 분을 바른 후 물로 한 번 헹궈내는 ‘분세수’가 남녀를 막론하고 널리 유행했다니 정말 비비 크림은 저리 가랄 정도로 용의주도한 ‘생얼 화장’이 아닐 수 없다. 입술과 볼에는 연지로 자연스럽게 붉은 물을 들였는데 자기 고유의 홍조처럼 보이게 한 것은 오늘날 틴트와 별다르지 않다. 눈썹과 잔머리는 항상 족집게로 다듬어 둥글고 예쁜 헤어라인과 초승달 같은 눈썹을 유지하도록 했고, 빈 곳은 숯으로 살짝 메웠다. 그 모든 것을 다 한 다음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단아한 차림으로 문 밖을 나섰을 조상들에게, 오늘날 화장 매너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다. – 이선배(작가 & 콘텐츠 기획자)

<표정으로 말해요>

“메이크업을 할 때도 우아하게 하자.”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일하는 남자가 입에 담기에는 후환이 두려운 말이다. “평소에 메이크업을 안 해봐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도대체 매너 있는 메이크업이 뭐냐” 같은 반문이 쏟아질 수도 있다. 물론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예쁘게 하는 게 매너라고는 말 못하겠다. 수줍어서 발그레한 볼 만들기나 윤기가 흐르는 입술 만들기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메이크업이 뭉쳤다고 한들, 아이라이너가 요즘 유행하는 패턴이 아니라고 한들, 어차피 나를 위해 꾸민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권리로 그녀들의 메이크업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겠나.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나마 잘 알고 있으니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한마디 보태자면, 무엇을 하든 결국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이미지라는 거다. 브러시는 깨끗한지, 파우치가 지저분하지는 않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송혜교 립스틱으로 입술을 바를 때나 마스카라로 처진 속눈썹을 치켜올릴 때, 쿠션 팩트로 베이스 메이크업을 수정할 때 남자들의 눈에 보이는 건 여자가 손에 쥔 ‘신상’ 화장품이 아니라 얼굴, 표정 그 자체라는 말이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마스카라의 브러시로 눈썹을 비비듯 돌려가며 올려야 한다는 메이크업 팁은 어디까지나 방 안의 화장대 앞에서 메이크업을 할 때 유용한 팁이다. 상대를 앞에 두고 수정 메이크업을 할 때 이와 같은 동작을 취하면 반쯤 감긴 눈과 아래로 내리깔아서 확장된 동공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살짝 벌린 입술만 봐도 키스를 상상하는 게 남자라지만, ‘에’를 발음하는 모양으로 벌린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은 여태껏 생각지도 못한 립스틱의 식용 가능 여부와 끈적일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유발한다. 콤팩트를 바를 때에도 남자의 눈에는 얇게 채워지는 베이스 메이크업이 아니라 현란하게 움직이는 방정맞은 손놀림이 들어온다. 수시로 수정 메이크업에 매진하는 여자를 보고 혹자는 자기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는다며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 밑에 팩트를 빈틈없이 바르기 위해 고릴라 흉내를 낼 때처럼 인중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모습에서 여성스러움을 느끼는 남자는 없다.

겨우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모습을 치부라고 치부하지는 않겠다. 탓을 하자면, 메이크업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게 잘못이다. 화이트닝 에센스를 하루에 두 번씩 꼬박 한 달을 발라야 희미해질까 말까 하는 잡티를 가리는 데 에센스의 1/10 가격도 안 되는 컨실러 하나로 5초면 충분한 걸 경험하고 나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생기 있어 보이는 입술도, 사랑스럽게 발그레해진 볼도, 드라마틱하게 올라간 속눈썹도 반나절이면 지워진다. 하지만 겨우 반나절 더 예뻐 보이기 위해 방정맞게 움직인 손놀림으로 인해 생긴 여성스럽지 못한 이미지는 반나절보다 오래 간다. 이건 수정 메이크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술을 늘리거나,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수정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 해결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화장실에도 눈은 있고, 매너는 남자에게만 잘 보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유행하는 메이크업도 중요하다. 하지만 유행보다 오랫동안 각인될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는 유행하는 화장품을 고르는 것 이상으로 제품을 사용할 때의 매너, 표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 <얼루어> 뷰티 에디터 황민영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이민아
    포토그래퍼
    이승엽
    모델
    이승미
    스탭
    헤어/유다, 메이크업 / 류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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