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의 찬란한 시절 <1>

얼마 전, 소녀처럼 고왔던 배우 김자옥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의 리즈 시절을 추억하며 동시대에 활동한 여배우들을 손꼽아봤다. 1970~80년대 한국 영화의 주역이자 뷰티 아이콘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그 시절, 그 여배우들.

1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실린 화보. 2 영화계 데뷔작인 <보통여자>(1976).

1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실린 화보. 2 영화계 데뷔작인 <보통여자>(1976).

김자옥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김자옥을 사람들은 어떻게 추억할까? 최근 방영된 <꽃보다 누나> 속의 곱게 나이 든 중년 배우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고, 90년대 후반 ‘공주는 외로워’를 부르던 코믹한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1970년에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녀가 20대였던 70년대에는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매력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점령한 최고의 여배우였다. 1974년과 1975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수선화>와 <신부일기>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김자옥은 1976년 김수현 각본의 영화 <보통여자>로 영화계에 데뷔하자마자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한다. 1978년에는 한 해 동안 영화 <o양의>, <영아의 고백>, <지붕 위의 남자>, <상처>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그해 최다 관객을 동원한 여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김자옥은 당시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로 대표되는 ‘신트로이카’가 주름 잡던 영화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여배우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청경은 그녀가 자신의 우상이었다고 말한다. “김자옥 씨가 출연한 작품을 보며 대사를 다 따라 했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희고 고운 피부, 단아한 얼굴. 특히 웃는 모습과 목소리가 정말 예뻤죠. 울림이 있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고운 얼굴이 참 잘 어울렸어요.” 떠나는 길, 영정 사진 속에서도 김자옥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곱게 나이 든다는 건 바로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큰 욕심 없이 배우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열정적으로 살다간 그녀이기에 20대의 꽃다운 미소를 그토록 오래 간직할 수 있었을 거다.  

1 70년대 후반 쥬단학 화장품 모델로 활동한 장미희. 2 영화 <사의 찬미>(1991).

1 70년대 후반 쥬단학 화장품 모델로 활동한 장미희. 영화 <사의 찬미>(1991).

장미희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함이 흘러넘치는 배우 장미희. 20대 시절 그녀는 그야말로 절정의 여배우였다. ‘신트로이카’ 중의 한 명인 장미희는 정윤희나 유지인 같은 서구형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에게는 없는 지적이고 신비로운 매력이 있었다. 동양적인 외모와 대비되는 늘씬한 몸매 역시 인기에 한몫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상영 영화의 반은 주인공이 장미희일 만큼 그 인기가 뜨거웠다. 1977년 개봉한 영화 <겨울여자>는 관객수 58만 명을 기록했고, 이듬해 개봉한 영화 <별들의 고향2>도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느미>로 영화평론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세련된 이미지 덕분에 당시 태평양화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쥬단학 화장품(현 한국화장품)과 논노패션, 진도모피 등 뷰티와 패션 광고를 섭렵하며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눈두덩에 은은한 펄이 섞인 회갈색 아이섀도를 넓게 펴 바른 그녀의 메이크업도 화제였다. “도도한 말투며, 우아한 제스처까지 그 시절 그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한 장미희를 보면 진짜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고원혜의 말이다.

1 영화 <마지막 겨울>(1978). 2 70년대 중반 쥬단학 화장품 모델 시절.

1 영화 <마지막 겨울>(1978). 2 70년대 중반 쥬단학 화장품 모델 시절.

유지인 
지금의 20대에게 유지인은 세련되고 씩씩한 아줌마지만 부모님 세대에게는 여신 그 자체였다. 어느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유지인이 화장품 모델이었던 시절에 찍은 광고 사진과 김태희의 광고 사진을 비교해 보여준 적이 있는데, 또렷한 이목구비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인형처럼 크고 동그란 눈에, 새치름한 입술, 큰 키와 서구적인 몸매까지 갖춘 그녀는 영화 데뷔작<그대의 찬손>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오르며 쥬단학 화장품 전속 모델이 되는 행운까지 안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은 유지인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유지인 씨 화장품 광고가 실린 면을 잘라서 거울 옆에 붙여놓고 화장을 똑같이 따라 하곤 했어요. 유지인 씨처럼 인조속눈썹을 붙이고,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고 마스카라까지 겹겹이 발라 인형 같은 눈매를 연출하는 게 유행이었죠. 그때만 해도 기성복이 많지 않아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옷을 의상실에서 그대로 맞춰 입었는데, 대학생이었던 언니가 맞춘 옷을 몰래 입고 유지인 씨 흉내를 냈던 기억이 나요.” 유지인은 1977년 출연한 드라마 <서울 야곡>과 이듬해 개봉한 영화 <마지막 겨울>을 통해 인기와 연기력을 겸비한 최고의 배우로 인정받게 된다. 다음 해에는 영화 <심봤다>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강인한 엄마 역할을 맡아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결혼과 함께 오랜 공백기를 가진 유지인은 이제 꽃다운 여배우들의 엄마 역할을 맡고 있지만 참 예쁘고, 연기 잘하는 배우였던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1 80년대 초반 아모레 부로아 화장품 모델 시절. 2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 전영록과 함께한 영화 <너무 너무 좋은 거야>(1976).

1 80년대 초반 아모레 부로아 화장품 모델 시절. 2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 전영록과 함께한 영화 <너무 너무 좋은 거야>(1976).

임예진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서 귀여운 ‘아줌마’로 활약 중인 임예진은 70년대 하이틴 영화 붐을 일으킨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다. ‘국민 여동생’, ‘국민 첫사랑’이라 불리던 그녀의 인기는 지금 수지의 인기에 비견될 만하다. 임예진과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이경민은 당시를 이렇게 추억한다. “백옥 같은 피부와 왕방울 같은 눈, 짱구 이마로 그 당시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의 로망이었어요.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전영록, 이덕화 씨가 출연하는 영화의 여주인공은 모두 임예진 씨가 맡을 정도였으니까요. 단발시대였던 그때는 임예진 씨처럼 옆 가르마를 타서 핀을 꽂고 잔머리를 빼서 내리는 게 유행이었어요. 잔머리가 없는 애들은 아빠가 쓰는 면도칼로 섀기커트를 하듯 앞머리를 자르기도 했어요.” 1975년 하이틴 영화 <여고졸업반>의 흥행 이후 다음 해 영화 <진짜 진짜 잊지 마>로 대박을 터트린 임예진은 그해 수입을 가장 많이 올린 연예인 1위에 이름을 올렸고, 아모레 화장품 모델은 물론 당시 가장 인기였던 브라보콘 광고에도 출연했다. 이후 영화 <진짜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사랑해>, <고교 얄개>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흥행시키며 한국 영화의 암흑기였던 70년대 충무로에 빛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성인 연기자로 변신을 꾀했지만 신트로이카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이후 영화 활동을 접고 TV 드라마를 통해 꾸준히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임예진의 풋풋한 모습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을 부모님의 학창시절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1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지 <향장>의 1974년 2월호 표지를 장식한 김창숙. 2 영화 <모정>(1972).

1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지 <향장>의 1974년 2월호 표지를 장식한 김창숙. 2 영화 <모정>(1972).

김창숙 
지난 20여 년 동안 쉴 새 없이 안방극장을 누빈 김창숙은 이웃집 아줌마처럼 친숙한 배우다. 그런 그녀에게도 ‘살아 있는 인형’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70년대 초반 김창숙 씨가 나오는 드라마를 즐겨 봤던 기억이 나요. 맑고 깨끗한 이미지였어요. 지금의 오연수 같다고 할까?”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의 말이다. 김청경은 그 시절 김태희만큼 예뻤다고 말할 정도니 당시 김창숙의 미모를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깊고 동그란 눈매와 대비되는 가늘고 날렵한 눈썹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로,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였다. 타고난 눈썹 모양을 살려 눈썹을 도톰하게 그리는 요즘과 달리 70년대에는 눈썹을 가늘게 다듬는 것이 유행이었다. 1968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창숙은 1971년 드라마 <마부>로 얼굴을 알린 후 1974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증언>으로 대종상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고, 1년 뒤에는 오우삼 감독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다. 청순하면서도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졌던 김창숙은 당시 여배우라면 누구나 탐냈던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모델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흑백 사진 속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니 리즈 시절의 오드리 헵번이 떠오른다. 

    에디터
    조은선
    Photography
    Seoul Times
    어시스턴트
    송명경,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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