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3’로 돌아온 배우 이준혁
“사람들이 더 많이, 더 크게 웃으면 좋겠어요.” 영화 <범죄도시3>로 돌아올 배우 이준혁의 영웅 본색.
오랜만에 공식 스케줄이라고 들었어요.
맨날 집에만 있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니 적응이 잘 안 돼요. 화보 촬영은 드라마 <다크홀> 이후 오랜만이네요.
긴장되나요, 아니면 설레나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범죄도시3>를 촬영하며 20kg 가까이 살을 찌웠는데, 오늘을 위해 급하게 뺐어요. 쉽지 않았어요.
얼마나 감량한 거예요?
4~5일간 4kg 정도. 하루에 한 끼 먹고, 운동을 많이 하고 그다음 날 또 한 끼만 먹었어요. 모든 게 다 빠져나간 것 같아요. 건강, 근육, 지방, 영양소….
혹독한 감량 과정이 <범죄도시3>의 주성철이 남긴 진한 흔적 같아요. 첫 만남을 기억하나요?
1년 전쯤 차를 타고 가는데 마동석 선배에게 전화 한 통이 왔어요. 선배와는 영화 <신과 함께> 때 잠깐 뵌 게 전부였는데 놀랐죠. <범죄도시2>가 개봉하기 전이었는데, <범죄도시3>를 만들 계획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함께하자고 하셔서 캐릭터를 여쭤보니 ‘악당이야.’ 딱 한마디만 하셨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어떤 믿음 때문이었어요?
음, 나름의 감동이 있었어요. 수많은 배우 중 저를 콕 찍어 명확하게 제안하신 거잖아요. 할리우드 배우들이 종종 인터뷰에서 전화 한 통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얘기를 하던데, 이제 나도 그런 말을 한 번 하게 되는구나 하는 뿌듯함도 있었고요.(웃음) 시즌2가 개봉 전이라 부담도 적었던 것 같아요.
손석구 배우의 강해상을 보고 난 뒤에는 어깨가 무거워지던가요?
당연히 부담이 됐죠. 어떤 작품이든 그렇지만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니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범죄도시3>의 빌런 주성철은 장첸, 강해상과는 다른 결의 인물인가요?
개봉일이 좀 남아서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장첸과 강해상이 짐승 같은 악역이었다면, 주성철은 좀 인간적이에요. 본능을 앞세우기보다는 생각을 하죠. 설계 후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면이 있어요. 마석도 형사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기도 하고요.
20kg 가까이 증량했다는 면에서 비주얼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증량’이라고 하면 예쁜 몸을 생각하실 텐데 벌크업이 아니라 ‘살크업’을 했어요. 풍기는 분위기에서는 ‘우람하다’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네요. 준비 시간이 길지 않아 3~4개월 안에 몸을 만들어야 했어요. 하루에 여섯 끼씩 먹으면서 살을 찌웠는데 간 수치가 점점 높아지더라고요.(웃음)
몸이 커지고 악역에 몰입하면서 평소 태도나 에너지가 바뀌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체형이 바뀌고 운동을 하는 과정도 캐릭터를 제 안에 내재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를 위해 감량을 심하게 했을 때는 우울한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아싸’보다는 ‘인싸’에 가까운 감성이 채워지기도 했어요. 일단 덩치가 커지니 저를 본 주변 사람의 리액션이 달라지기도 했고요. 음악도 조금 다른 종류를 듣게 되더라고요.
주성철과 함께하는 동안 플레이리스트를 채운 음악은 뭐였어요?
포스트 말론의 곡요. ‘난 잘났어, 대단해’ 같은 뉘앙스의 성철이 텐션과 비슷하더라고요. 쉽게 굽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동물로 치면 들소 같아요.
작품 속에서는 지독한 악인을 연기한 반면 현실에서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게임의 개발자, 작가가 되기도 했어요. 앱스토어에 론칭한 모바일 게임 <안녕 Popcorn> 댓글을 보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데도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정말 개인적인 인디 프로젝트로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어요. 제가 한 작품 중 리뷰와 별점이 가장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누구를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는 저 자신을 위해 시작한 거예요. 반려견 팝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당시 너무 바빠 제대로 된 추모를 못했어요. 아무래도 응어리가 남았던 것 같아요. 자신을 위한 치유 활동이었는데, 다른 분들에게도 위로가 됐다니 감사하죠.
배우는 개인의 감정보다 작품 속 캐릭터로 감정을 표현하잖아요. 개인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나요?
확실히 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부러울 때도 있었어요. 이런 활동이 필요하기는 한 거 같아요.
계획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도 있나요?
창작 욕구를 품고 있다 보면 탁 터지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계획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또 모르죠. 요즘은 챗GPT 같은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잘 모르는 분야도 유리하지 않을까요.
챗GPT에 질문해본 적 있어요?
네. 당시 읽고 있던 시나리오 장면을 한 줄 쓰고 실수로 엔터를 눌렀어요. 예를 들어 ‘빌런이 한국으로 도망쳤어’라는 문장이었으면,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갔다는 둥 뒷얘기를 줄줄 쓰더라고요. 어설프긴 한데 에어프라이어 이후 가장 쇼킹한 신문명이에요.
이런 기술의 발전을 보면 언젠가 인간이 업을 잃지 않을까 걱정돼요. 배우라는 직업은 어떨까요?
그들이 연기를 하게 될 수도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가장 원초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까 추측해요. 보고 즐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저 역시 배우라는 직업이 사라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배우로서 최선의 선택을 위해 계획을 세우기도 하나요?
단 한 번도 제 뜻대로 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면 할수록 주어진 것을 잘 수용하려는 자세가 강해져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는 늘 고민이죠.
18년을 꾸준히 활동했잖아요.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늘 처참한 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 걸요. 대중에게 2023년의 저는 오래 쉰 배우예요. 작품으로 모습을 비춘 건 2021년 <다크홀>이 마지막이었으니까요. 기다림과 현장에서의 시간은 늘 순탄치 않아요.
그럼에도 이토록 버티는 힘의 뿌리는 뭔가요?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요.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으니 견딜 수 있는 정도인 거죠. 일을 하면서 좋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운 좋게 하루 정도 즐기는 순간이고고, 대부분의 날이 수많은 문제와 고통을 감당하는 거예요. 고통받고 극복하고, 나아지려 애쓰는 날이 일상에 더 가깝죠.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라’는 문장이 떠올라요.
18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배운 건 성실하게 하루하루 인내해야 한다는 거예요.
배우라는 일이 왜 좋아요?
이 얘기는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영화에 홀딱 반해버렸거든요. 영화라는 콘텐츠에 반해서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번 만큼 썼을 거예요. 때로는 부모처럼, 친구처럼 곁에 존재했기 때문에 이제는 저에게서 떼어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사실 제가 배우로서 특별한 재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오히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어색해하고 좋아하지 않는데, 어릴 때 반해버린 그 마술쇼에 대해 너무 알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좋아요. 아직도 여전히 놀랄 것이 많고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요?
배우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적이더라고요. 어떤 이유로든 좋은 작품이 아닐지라도 배우가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구나 하는 건 이제 보여요. 동료애일 수 있지만 그 모습을 보면 뭉클하고요. 저 역시 누군가 봤을 때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는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 같아요.
아직 이준혁이라는 배우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필모그래피의 작품 중 어떤 걸 먼저 권하고 싶어요?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요. <범죄도시3>와는 다르게 좀 맑은 캐릭터기도 하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가 밝아요. 요즘 훈훈한 이야기의 희소성을 더 느끼는 터라 추천하고 싶기도 하고요.
영화광으로 유명한데, 내 인생과 닮은 영화를 꼽자면 어떤 작품이 떠올라요?
영화 <가타카>가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치열한 성장 드라마죠. 그 영화가 제작될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에는 ‘일단 꿈을 이루라’는 기조가 강했잖아요. 일단 갈 때까지 가긴 했는데, 다음에 대한 말을 안 해줘요. 되고 나면 그다음이 더 중요한데 말이에요. 빈센트 그 친구 잘 살았을까요? 어떻게 버텼을까요? 걔가 좀 걱정돼요.
차기작으로 <비밀의 숲>의 스핀오프 소식이 들려요. 서동재 검사가 주인공이죠.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어요?
아니 왜?(웃음) 얘는 참 생명력 질기다. 끈질기게 쫓아다니는구나 생각했어요. 욕심났던 캐릭터이기는 했지만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질길 줄은 몰랐어요.
징글징글한가요?
이쯤 되면 인연인가 싶기도 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작품을 꼭 성공시키고 싶어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다들 웃게 하고 싶어요. 귀한 기회가 찾아왔고 여러 사람의 에너지가 담길 작품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면 꼭 성공시키고 싶어요.
그날이 바로 운 좋게 즐기는 행복한 하루가 되는 건가요?
일단 <범죄도시3>가 잘돼야죠. 현장이 정말 뜨거웠어요. 열정에 함께 취하고 불태우며 작업한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든 작품이라서 잘되면 좋겠어요. 다들 좀 웃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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