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에 세비니의 얼굴
데뷔작인 영화 <키즈>로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은 지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개성 강한 배우, 클로에 세비니는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색빛 아침, 48세의 클로에 세비니는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 어젯밤 참석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음식은 별로고 마티니는 근사했던 탓이다. 주변의 권유에 따라 세비니는 최근 자주 외출하려고 노력 중인데, 성과는 영 별로라고 한다. “내게 ‘화려한 밤 외출’은 프렌치 레스토랑 루시앙(Lucien)에서의 저녁 식사 정도죠.” 최대한 쿨하지 않게 말하려고 하는 그의 노력 역시 처참한 실패다.
모든 게 느린 아침이다. 한겨울 뉴욕의 하늘은 지극히 창백하고, 부질없이 내리는 비와 더불어 날씨는 지독하게 춥다. 이른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한다. 뱃속의 마티니는 아직도 소화가 덜 되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로 세비니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는 아들에게 옷을 입힌다. 체크무늬 멜빵바지, 피셔맨 스웨터, 그리고 검정 퀼팅 부츠 차림은 날씨에 아주 걸맞다. 그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는 집으로 걸어와 침대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잠시 누웠다가 이내 일어나 샤워를 한다.
파이브 위츠(Five Wits)의 샴푸와 컨디셔너로 머리를 감는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헤어 살롱 블랙스톤(Blackstones)에서 만든 제품이다. 살롱의 대표 조이 실베스테라(Joey Silvestera)는 세비니의 친구로, 이는 곧 ‘도로시의 친구’, 즉 동성애자인 동시에 뉴욕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예술 집단에 속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근 30년 동안 뉴욕에서 영화, TV, 패션 업계를 아우르며 다양한 작업을 해온 세비니의 특별함(놀랍도록 따뜻한 마음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됨의 조합)이 그를 닮은 쿨한 뉴요커를 주변으로 불러들인 거다. 하지만 때때로 프랑스 제품이며, 헤어 제품 치고는 꽤 값비싼 크리스토프 로빈(Christophe Robin)의 제품으로 바꿔 사용할 때도 있다. 또 다른 친구이자 웨스트 브로드웨이 근처에서 그의 머리를 염색해주는 제나 페리(Jenna Perry)가 추천했기 때문이다.
“벨라 하디드의 머리도 제나의 작품이에요.” 세비니가 인정하듯 말한다. 그의 머리는 스스로 표현하기를 ‘페이크 내추럴’ 블론드지만,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주진 않는다. 단, 페리는 세비니를 위한 블론드 염색 과정을 “베이스 펌프”라고 칭하는데, 뿌리에 힘을 주는 방식이라고 즐거워하며 설명한다. “그는 아주 섹시해요. 꽤 유명하죠. 스태프도 전부 귀여워요.” 세비니가 또다시 인정하듯 말한다. “잡지에 아주 많이 나와요.”
세비니의 다리는 새해맞이 겨울 휴가에서의 선번으로 각질이 벗겨지는 상태라 타일 크기의 커다란 워시클로스를 집어 케이맨제도의 호텔에서 빌리거나 ‘어쩌면 그냥 가져온’ 여러 개의 작은 비누 중 하나로 거품을 내기 시작한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나는 빵을 그만 먹고 최대한 술도 마시지 않을 거야. (이 시점에서 목소리 톤을 바꾸며) 비키니를 입어야 하니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행지에 도착했더니 또 다른 셀럽 두 명이 해변가에 있었는데, 바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와 벨라 하디드더군요. 다 소용없는 짓 아니었겠어요?”
세비니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샤워를 마무리한다. “차갑게 풍덩 하는 거죠. 피부의 모공을 닫아주거든요”라는 그의 목소리가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처럼 자신감에 넘친다. <얼루어>의 애독자라면 이 논리를 의심할 풍부한 미용 지식을 갖고 있겠지만, 나는 세비니에 도전하고 싶지는 않다. 다음 차례는 보디 로션(꼬달리의 ‘비노테라피스트 바디 버터’), 얼굴 보습제(아우구스티누스 바더의 ‘더 크림’), 그리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최소한의 메이크업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할 시간인데도 세비니의 머리는 아직 축축했고,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카페에서 가족이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며 우리는 인터뷰를 이어간다.
세비니는 자신의 얼굴이 “너무 크거나 남자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객관적 진리는 그는 무심하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의 이목구비는 바버숍 사중창단의 완벽한 화음만큼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룬다. 다크서클에서 시선을 분산하려고 위아래 속눈썹에 약간의 마스카라(메이블린의 ‘그레이트 래시’)를 바르고, 그저 재미를 위해 두 볼에 약간의 블러셔(샤넬의 ‘레 베쥬 스틱 블러셔’)를 두드렸을 뿐이다. 세비니의 남편이자 아트 갤러리 디렉터인 시니샤 마치코비치(Sinisa Mackovic)는 올 블랙 차림에 멋진 눈썹의 소유자다. 세비니는 자신의 가장 열렬한 팬인 만 2세 된 아들 반야(Vanja)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시에 인터뷰를 진행하는 부모를 기다리며 카페의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는 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참이다. 자신을 등산하듯 타고 오르는 반야에게 세비니는 “엄마는 정글짐이 아니야!”라고 부드럽게 타이른다. 그가 주문한 달걀 요리가 나오는 순간, 부부는 반야의 1시 낮잠 시간에 맞춰 아이를 진정시킬 계략을 짠다. 어쩌면 도서관에 가야 할까?
얼마 후면 라이언 존슨(Rian Johnson) 제작, 나타샤 리온(Natasha Lyonne) 주연의 탐정물 시리즈 <포커 페이스>가 방영된다. 물론, 세비니도 출연한다. “실제로 나타샤는 내 베스트 프렌드예요. 게스트로 출연하는 배우의 프로필이 꽤나…”라고 말을 줄이는 세비니지만, 나는 “아주 대단하다”라고 덧붙이고 싶다. 세비니와 더불어 애드리언 브로디, 체리 존스, 홍 차우 등이 이름을 올렸다.
출연 에피소드에서 세비니는 한물간 메탈 밴드의 멤버를 맡았다. 밴드의 드러머가 살해되지만, 닥터마틴과 관련된 과학 수사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대본을 읽었는데 이런 역할은 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이 이유만으로도 배역을 맡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그는 여러 뮤지션 친구의 투어를 따라다니며 관객이 2명만 있는 촌구석에서의 공연까지 다채로운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역을 소화하는 것은 유기적 과정이었다. “음악계에 친구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한물간 쪽은 아니라서요.”
최근 작품 라인업은 이렇다. 드래그퀸 립싱카(Lypsinka)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세비니가 직접 디렉팅에 나섰다. 또 라이언 머피(Ryan Murphy)가 제작한 <퓨드(Feud)>의 두 번째 시즌에서 20세기 사교계 여왕인 C. Z. 게스트(C. Z. Guest)로 분한다. 이와 별개로 “친한 친구를 위해 프로듀싱 중”인 여러 작품이 있다. 프로듀싱이란 뭘 뜻할까? “대부분 부탁을 들어주는 거예요.” 그는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협업보다는 내가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을 맡는 게 더 좋아요.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고, 내가 유명한 덕에 프로듀서 타이틀에 이름 한 줄을 올려서 프로젝트가 관심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해야죠.”
별로 재미도 없고 같은 시간이라면 다른 일을 선택하는 게 낮다고 생각함에도, 세비니는 진심을 다해 주변의 부탁에 응한다. 2003년에는 그의 집에서 잠을 잘 정도로 편한 친구이자 게스트 섭외가 힘들 정도로 신인이었던 TV쇼 호스트 지미 팰런(Jimmy Fallon)이 갑자기 데이비드 레터맨(David Letterman)의 대타로 토크쇼를 진행하게 되자, 그의 맞은편에 앉아 긴장 가득한 유머를 받아주기도 했다.
한편, 세비니의 또 다른 친구이자 아티스트인 알리아 라자(Alia Raza)의 부티크 향수 ‘레짐 데 플뢰르(Regime des Fleurs)’는 세비니라는 셀러브리티 모델이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혔을지도 모른다. “향수 제작에 참여할 기회였지만 목적이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알리아의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싶었거든요. 그 어느 때보다 빽빽한 홍보 일정을 감행했어요.” 듣기만 해도 세로토닌에 물들 듯한 쾌활한 웃음과 함께 세비니가 말을 잇는다. “미친 스케줄이었어요. 하지만 인터뷰에 응할 때마다 내 친구가 1달러 더, 아니 수천수만을 벌 수 있다면, 또는 성공을 향한 카펫 깔린 계단으로 오르도록 도울 수 있다면 20개의 추가 인터뷰가 대수겠어요? 친구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세비니는 파운데이션이나 컨실러를 좋아하지 않는다. 타고난 피부색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선호한다. 그의 피부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채, 반짝이는 볼에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인터뷰를 이어가며 매니큐어를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순간, 아름답던 홍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관객은 세비니의 표정에서 탐탁지 않음을 읽어냈을 거다. 몇몇 관객은 지금 그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야말로 바로 매니큐어가 아닐까 유추했을 거다.
그 정도로 그의 태도는 직접적이고 명확했다. 그래서 아마도 그가 “그래요”라고 대답했을 때 전 세계 관객은 충격에 빠졌을 게 분명하다. 마치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톱을 마주하는 사람처럼 길게 자신의 손을 들여다본 그는 <퓨드> 촬영을 위해 현재 칠한 컬러가 애시에서 출시하는 페일 핑크 컬러 40개 중 어느 걸지 골똘히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마음을 바꾸는지, 황홀감에 찬 내 영혼이 하늘로 날아오르길, 그래서 자신의 오후가 자유로워지기를 기다리는 걸까. 그러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내 손의 상태를 보고는 “당신이야말로 매니큐어가 필요한 거 같네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결정됐다. 우리는 우산을 들고는 끔찍한 오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패션 잡지에 오르내린 지 몇 십 년째인 세비니는 옷에 대한 질문에는 브랜드와 출처를 충실하게 확인해주는 습관이 들었나 보다. “오늘은 뭘 입었나요?”라는 질문에 완벽한 대답을 들려준다. 친구이기도 한 스타일리스트 헤일리 월렌스(Haley Wollens)가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부티크 빅 애시(Big Ash)와 협업한 리컨스트럭티드 럭비 셔츠, 겐조(Kenzo)의 페이턴트 로퍼, 남편에게 빌린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단추 달린 가죽 재킷, 그리고 글렌 마틴(Glenn Martens)이 디자인한, 고속도로만큼 통이 넓고 하늘에 닿을 만큼 기장이 긴 디젤(Diesel) 데님은 오늘 아침 뉴욕의 빗물을 발목까지 빨아들인 모습이다. 바지의 젖은 부분이 어찌 보면 의도한 디자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비니는 요즘 패션계가 멋지다고 생각할까? “아니죠.” 잠시 멈칫하더니 얘기를 이어간다. 새로운 마르지엘라, JW앤더슨의 로에베는 마음에 든다. 근처에 사는 고등학생이 학교에 갈 때 뭘 입는지 유심히 지켜본다는 그는 요즘은 큰 바지, 자그마한 톱, 그리고 갈색 신발이 유행이라고 전한다. 가장 사랑하고 그리운 것은 팬데믹이 일어났던 첫 여름, 관광객의 거품이 빠진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패션이다. 몇 십 년 전, 세비니 역시 공원을 주름잡았던 멋쟁이 10대 중 하나였다. 그는 영화 <키즈(Kids)>의 감독 래리 클라크(Larry Clark)와 작가 하모니 코린(Harmony Korine)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HIV 보균자인 10대 소녀의 역할로 성공적인 배우 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채 개봉도 하지 않은 시점에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 가 세비니를 먼저 찾았다. 소설가 제이 매키너니(Jay McInerney)가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는 이스트 빌리지의 세인트 마크 플레이스로, 그가 일하던 라파예트 거리의 부티크로, 그리고 <키즈>를 촬영 중이던 나이트클럽 터널(Tunnel)로, 그리고 또다시 터널로(이번에는 그냥 놀러 갔다) 쫓아다녔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뉴요커>를 위해 매키너니가 작성한 기사 ‘클로에의 신(Chloe’s Scene)’으로 결실을 맺었고, 그를 판테온에 올려 잇 걸로서의 정식 승인을 내리는 결과를 낳았다. 매키너니가 언급한 트위기, 에디 세즈윅과의 비교,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쿨한 걸(Girl)로서의 공표는 모두에게 빠르게 각인되었다.
요지는 어떻게 코네티컷주 작은 마을의 한 소녀가 세상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오게 됐느냐다. 매키너니는 “클로에는 뉴욕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 누구와도 자신감을 갖고 얘기할 수 있다”라고 표현했다. “어떤 사람은 클로에 자체가 지금 뉴욕 스트리트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든(Richard Avedon)이 위 기사를 위해 세비니를 촬영했다. 기사에는 사진이 포함되지 않은 대신, 아베든은 한마디 조언과 함께 인화된 사진을 그에게 전달했다. 왼쪽 얼굴만 촬영하라는 것이었다. “19세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상상이 가나요?” 아직도 그 말이 믿기 힘들다는 듯 세비니가 말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영국 <보그> 촬영을 함께한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ey)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세비니는 둘 모두에게 ‘닥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말은 예측 불가능한 날카로움으로 해마 속 깊이 박히기도 한다.
“지금도 그래요. 사실 나는 그쪽 자리에 앉고 싶었거든요. 그래야 당신에게 내 왼쪽 얼굴이 보일 테니까.” 인스타그램 피드만 봐도 세비니의 선호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인생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쳐요. 예를 들면 저녁 식사를 하러 가거나, 리허설을 하거나, 촬영을 하거나 늘 이쪽 얼굴이 편해요. 정말 강렬하게 그래요. 혹시나 내게 해당하는 얘긴가 싶어 신체 변형 장애(Body Dysmorphia)를 다룬 책 <브로큰 미러(The Broken Mirror)>를 읽기도 했죠….”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연기처럼 사라진다.
70여 편의 영화와 TV 쇼에 출연한 덕분에 방송 업계의 미학적 기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배우라면 라미네이트 시술이 낯설지 않고, 어찌 보면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서는 누구나 라미네이트 시술을 해야 한다는 불문율까지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세비니는 29세가 될 때까지 치아를 교정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술에 잔뜩 취한 채 스웨이(Sway) 앞에 서 있는 세비니의 팔을 잡고 있던 친구가 실수로 놓치는 바람에 응급실 신세를 진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사고 당시 그는 니콜라 게스키에르(Nicolas Ghesquiere)가 디자인한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옷을 입고 있었다.
사고 얼마 후 뉴욕에서 라미네이트 전문가인 의사 마이클 아파(Michael Apa)에게 시술받은 후에야 세비니는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아파 역시 그의 친구가 되었다. 과거에는 심지어 둘이 데이트에 나선 적도 있다. 치아에 아랑곳하지 않던 세비니는 먼 길을 왔다. 골든 글로브(Golden Globe) 시상식조차 그에게는 미완성의 도자기 퍼레이드처럼 느껴졌다. “고화질의 TV도 한몫하는 거 같아요. 나이가 어린 배우도 마찬가지거든요.” 그가 말을 이어간다. “누가 관리를 받았는지 아닌지 보이잖아요. 스크린 속에서 나이 드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건 쉽지 않아요. 재미없는 일이죠. 여기저기 소소하게 손보는 건 반대하지 않아요.” 보톡스, 필러 정도는 괜찮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단, 시술받는 부위 대부분은 얼굴 오른쪽이라고. 매니큐어를 마친 후 건조를 위해 자리를 옮기며, 우리는 말없이 위치를 맞바꾼다. 그제야 세비니는 매니큐어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시인한다. 도합 20개 손가락 위로는 이미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중이었다. “아이가 있다 보니 이런 일은 마음을 초조하게 해요.” 엄마가 되기 전에도 단골 살롱을 두는 타입은 아니었다. 단,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24시간 스파 주바넥스(Juvanex)에서 사우나를 하고 몸을 푹 담그는 걸 즐겼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 있을 때 가장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우리가 회색빛 오후의 거리로 나오자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골목에서 코너를 돌면 바로 세비니의 집이다. 주변 거리를 가리키며 유명한 이웃을 언급한다. 작가 힐턴 알스(Hilton Als), DJ 마크 론슨(Mark Ronson), 코미디언 루이 C. K.(Louis C. K.), 그리고 자신의 친구이자 레드 스케어(Red Scare) 팟캐스터인 다샤 네크라소바(Dasha Nekrasova). 아, 그리고 <석세션(Succession)>에 나오는 금발 머리. J. 스미스-캐머런(J. Smith-Cameron)을 뜻하는 듯하다. 길거리의 그 누구도 세비니에게 접근해 사진을 찍거나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을 떠올리려는 듯, 또는 자신의 본 서식지인 맨해튼 다운타운에 편안히 자리한 세비니의 모습이 반가운 듯 지나치게 오랜 시간 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니트 소재의 발라클라바에 감싸인, 긴 속눈썹이 앞으로 쭉 뻗어 있는 그 얼굴을.
집이 위치한 골목에 다다랐을 때 세비니가 갑작스레 소리치듯 말한다.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것들요!” 인터뷰의 마지막 60초, 내가 진작 해야 했지만 미뤄버린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 묻고 대답함으로써 나를 도우려는 것이다. “벨레다의 ‘슈퍼푸드 크림’, 탓차(Tatcha)의 ‘페이스 미스트’와 ‘세럼 스틱’, 그리고 ‘로즈버드 살브’. 로즈버드 살브 없이 집을 나서면 패닉에 빠져요.”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며 그가 말한다. 내가 궁금해하던 걸 그는 알았음에 틀림없다. 사실 우리 모두 이게 궁금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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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NNAN KILB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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