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AGAIN / 유라

유라는 자주, 음악에서 눈을 돌린다. 어딘가에 흠뻑 마음을 쏟은 뒤엔 미련 없이 새 노래를 부른다. 

레더 원피스는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구두는 주세페 자노티(Giuseppe Zanotti).귀고리는 센티멍(Sentiments). 팔찌는 우영미(Wooyoungmi). 이너로 입은 망사 원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이보리 드레스는 손정완(Son Jung Wan).

7월 7일 정규 1집을 발매하죠. 싱글도 EP도 아닌 정규 앨범 형태를 택할 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어요?
저 자신에게 떳떳할 때 정규 앨범을 작업하고 싶었어요. 조급해질 때 습작처럼 만들던 노래는 최근에 다 버렸어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항상 되뇌었던 것 같아요. 주변의 다른 아티스트가 좋은 앨범을 내고, 화려하게 활동하는 모습도 많이 봐왔지만 그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아요.

2년 전 했던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그때도 정규 앨범 얘기를 했더라고요. 슬슬 준비할 거라고.
맞아요. 근데 그때 만든 것들도 다 버렸어요. 이제 제겐 헌 노래가 됐거든요. 그다지 건강하지 않던 시기에 만든 노래기도 하고요. 작년에도 정규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지는 않았네요. 지금 감정에 충실한 앨범을 내려면 근거리에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 하니까.

지금 유라 씨 가까이엔 어떤 감정이 있나요?
일단 꽤 안정적이에요. 고양이 4마리랑 함께 사는데 얘네 걱정을 빼면 다른 건 크게 마음 쓸 일이 없어요. 가만보면 제 삶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아요. 오히려 음악 생각을 덜해야 더 새로운 음악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인터뷰 전 보내준 수록곡 일부를 먼저 들어봤어요. ‘재밍는 거’ 같이 자유롭게 쓴 제목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앨범 이름은 정해졌나요?
보통 가사를 쓰고 그 안에서 제목을 고르는 편이라 지금은 모든 게 미정이에요. 그때그때 눈앞에 있는 것을 가져다 제목으로 붙여버려요. 작업 중에 옆에 있던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 이름을 갖다 쓴 적도 있어요. ‘재밍는 거’는 함께 작업하는 프로듀서가 임의로 붙인 제목인데, 주로 노래를 만들 땐 그렇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 직관적으로 재미있다고 느끼면 우선 실행하고 보는 거죠. 물론 처음에만 재미있지 중반으로 갈수록 너무 힘들지만요.

어떤 게 가장 힘들어요?
노래를 만들 때는 제가 너무 곤두서 있거든요. 지금처럼 한창 가사를 쓸 때는 주변의 모든 걸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 책도 잘 안 읽어요. 음악도 덜 듣고요.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고 확 흡수해버릴까 봐. 다 만들고 나서 발매됐을 때. 그 순간은 즐겨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노래가 나온 거잖아요. 앨범 단위라면 그런 곡이 여러 개 나오는 거겠죠. 어떤 것과도 똑같지 않은, 유일한 것을 창작해낸다는 게 새삼스레 재미있어요.

‘경주’라는 제목의 곡에는 목소리가 없었지만, MR만으로도 지금껏 해온 음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게 느껴졌어요. 유라의 새로운 스타일을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맞아요. 악기 구성부터 재즈적 요소를 가장 많이 가미한 곡이거든요. 비올라나 콘트라베이스 소리도 들어 있는데, 일관되지 않은 소리가 멋있어요.

요즘엔 재즈에 부쩍 재미를 느끼나 보네요?
작년 겨울에 같이 앨범을 만든 밴드 ‘만동’의 영향이 컸죠. 재즈 밴드인데 개개인의 역량이 엄청난 팀이에요. 만동 멤버들에게 받은 자극이 자연스럽게 스민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앨범을 재즈라기에는 많이 부족할 거예요. 몇몇 곡만 재즈적 요소가 있는 거지. 다른 곡은 기존에 했던 밴드 사운드에 가깝거든요. 공부를 더 해야 해요.

밴드 만동과의 컬래버 앨범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가 작년 11월에 나왔으니, 7개월 만에 새 작업물을 내놓는 거네요. 그동안에도 꾸준히 뭔가를 만들었나요?
앨범을 내고 단독 공연을 했는데 그렇게 연달아 하니까 진이 빠지더라고요. 6개월간은 푹 쉬었어요.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퍼포밍에 대해 120% 만족했던 앨범이에요.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놓고 보니 저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내가 이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 거죠. 사실 그 앨범을 내고 나서 대중성을 잃지 말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는데 딱히 개의치는 않아요. 저는 지금까지의 결과물 중 가장 만족한 앨범이니까.

쉴 때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고양이 돌보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가족이랑 따로 살아서 저 혼자 돌보고 있거든요. 힘들긴 하지만 너무 예쁘고 착하고 밥도 잘 먹어서 그저 기특해요. 쉬면서 불안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 그렇게 기울어지려 할 때마다 고양이가 큰 위로가 되었어요. 틈틈이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요.

음악과 일은 완전히 놓아버리고요?
완벽히 그렇지는 못했지만, 웬만하면 곡에 대한 생각은 작업을 하려고 앉았을 때만 해요. 쉴 때는 쉬는 것만 잘하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든 진심을 다해 푹 빠지면 어딘가에는 흔적이 남더라고요. 구태여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는 거죠. 필요할 때는 나오게 되어 있어요. 마음을 전부 쏟기만 하면 돼요.

최근에 푹 빠진 건 뭐예요?
요즘은 앨범 작업에 한창이니 다른 것에 푹 빠지지는 못했어요. 늘 빠져 있는 건 고양이? 평소엔 영화를 많이 보는데 지금 떠오르는 건 <슬픔의 삼각형>이네요.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끌려서 봤는데, 일종의 허무주의가 깔린, 굉장히 사회적인 영화예요. 돈과 사람, 계급, 원초적 욕망 같은 걸 다뤄요. 저 <기생충>도 재밌게 봤거든요. 드라마나 유튜브는 잘 안 봐요.

밥 먹을 때도요?
뭘 틀어놓고 밥 먹는 거 안 좋아해요. 밥 말고 다른 걸 보다 보면 내가 뭘 얼마나 먹었는지도 모르게 되고, 그렇게 멀티로 하는 게 건강에도 안 좋대요. 밥에 온전히 집중해야 해요.

유라 씨에게 가사는 소설과 일기, 어느 쪽에 가깝나요?
일기죠. 완전히 자전적 이야기니까요. 가장 개인적인 걸 풀어놓는 게 가장 나다운 거고 결국 남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듣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드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들어주세요’라는 식의 말은 못하겠어요. 사람마다 느끼는 건 너무 다를 테니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요.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 아니에요?
글쎄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늘 평가의 연속이잖아요. 자연스러운 관습이려니 생각하려고요. 누군가 자기 멋대로 나를 단정 지으려 한다면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더 불행해지는 게 아닐까요? 그런 건 있어요. 내 이야기를 부르는 거니까 가사에 휩쓸릴 때가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프로답지 못한 거죠. 일단 노래를 내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아직까지 그 과정을 즐기진 못하는 것 같고요.

이번 앨범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어요?
요즘은 내 결함을 남에게 비추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보고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면 거기에 저를 투영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남을 보고 썼다기에는 결국 내 이야기인 노래가 나올 것 같아요.

가사를 더 난해하게 쓰려고 의도할 때도 있다면서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보다 써보지 않은 단어가 더 많잖아요. 그래서인지 책을 읽어도 낯선 단어만 흡수돼요. 접하지 못했던 단어에 대한 호기심이나 즐거움도 있고요. 지루한 건 싫거든요. 처음 곡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의식적으로 안 쓰던 말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실생활에서도 그런 언어가 자주 나와요.

취미였던 음악을 어느새 업으로 삼아 정규 1집을 내는 싱어송라이터가 됐어요. 불확실한 이 길에 뛰어들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냥 겁 없이 뛰어든 거였죠. 뭘 제대로 모르고. 근데 하면 할수록 이 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곡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소멸될 수 있지 않느냐고 걱정도 하는데, 그런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이라면 음악에 대한 자질이 없는 사람일 거라 생각해요. 저는 좀 수월해요. 음악 만드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이제는 곡을 만들고 노래 부르는 일을 하는 삶에 확신이 생겼나요?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이 굳어지고 있어요.

요즘 유라 씨의 일상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건 뭐예요?
이제 곧 이사를 가요! 고양이 때문에 더 넓은 데로 옮기려고요. 최근에는 여행 계획을 세우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연말엔 떠날 거거든요.

여름휴가도 아니고 벌써 연말 여행 계획을요?
여름엔 앨범이 나오니까. 일 열심히 해야 해요.(웃음)

12월엔 어디로 떠나요?
유럽요. 일단 지금의 계획은 여기까지입니다.(웃음) 연말이 오기까지 딱 반이 남았잖아요. 그때까지 정규 앨범이 나왔다는 기쁨을 만끽하며 살다 보면 금방 연말이 되겠죠. 대중은 앨범을 즐기는 데 3개월이면 충분하겠지만, 저는 앨범을 냈다는 안도감에 젖은 상태로 6개월은 가거든요. 최소한 그 시간 동안은 하루하루를 온전히 느끼면서 편한 일상을 살고 싶어요.

    에디터
    고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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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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