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사섬에서 경험한 웰니스 페스티벌 알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짜릿한 경험이 이비사섬에서 펼쳐졌다. 파티와 EDM의 성지에서 열린 광란의 웰니스 페스티벌 생존기.

이비사섬에서 열린 웰니스 축제에 참여하는 건 내 취향과는 영 멀다. 하지만 친구들의 계속된 설득과 비타민 D 결핍, 매년 이맘때쯤 엄습하는 계절성 우울증을 고려하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 이기는 척 식스센스 이비사(Six Senses Ibiza) 호텔에서 개최한 제1회 알마(Alma) 페스티벌 티켓을 예매했다. 딱히 미신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호기심 넘치는 성격이기에 한 번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웰니스 프로그램을 이비사에서?’ ‘이비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 이 글을 마주한 뒤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이비사는 1960년대부터 세계 각지의 부유한 제트족이 모이는 핫 플레이스이자 고막이 터질 듯한 일렉트로닉 음악, 광란의 파티를 즐기는 환상의 섬으로 알려졌으니까. 지금까지와 달리 이 지역의 이미지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2021년 7월 바닷가 주변으로 들어선 식스센스 이비사의 초호화 호텔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리조트는 섬의 외딴 지역에 있다.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북쪽의 파티 마니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에 위치하는 셈이다. 

호텔 문을 열자 HBO의 드라마 <화이트 로터스(White Lotus)>의 제니퍼 쿨리지(Jennifer Coolidge)가 된 것 같았다. 호화스러운 장소를 즐기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심란했다. 이 장소와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기분이 마음의 짐처럼 짓눌렀다. 리조트는 가파른 산비탈에 압도적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다. 호텔보다 하나의 작은 마을을 연상시키는 리조트였기에 사람 구경에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부티크 피트니스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타린 투미(Taryn Toomey)를 체크인 카운터에서 마주쳤고, 런던의 미용 침술 대가 세라 브래든(Sarah Bradden)도 스쳤다. 감사 일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하루 5분 아침 일기(Five-Minute Journal)’의 공동 창시자 알렉스 이콘(Alex Ikonn)이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조각 같은 외모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공한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장시간 비행으로 피로에 찌든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는 자괴감, 덜 건강하다는 생각도 떨쳐내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실천한 웰니스 루틴이라고는 고작 홀푸드 마켓에서 가끔 사 먹는 그린 주스, 시간 날 때 겨우 듣는 파워 요가 수업, 정신 건강을 위해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가는 외출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알마 축제는 스케줄을 조율할 수 있어 패널 토론 세션, 운동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덩달아 내 의지와 자신감도 오락가락했다. 조금은 벅찬 일정이었지만 무조건 모든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강제성이나 압박은 전혀 없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웰니스 축제라면 한번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번 주말까지 잘 견딜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도 잠시, 오후에 열린 개막식에서 샤먼이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습니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우리에게 춤을 추게 하고 서로를 사랑의 눈으로 응시하며 끌어안으라고 주문하는 광경은 황당 그 자체였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입으로는 “왓 더X”을 연발하며, 벽 옆에 딱 붙어 뻘쭘하게 서 있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축제 첫날, 본격적인 일정을 마치고 나니 비로소 이곳에 대한 선입견이 서서히 바뀌었다. 세라 브래든이 코칭하는 페이셜 워크숍에 갔다 온 직후부터 부기가 빠지고 피부에서는 광이 나기 시작했고, 런던의 섹스 칼럼니스트인 엠마 루이스 보인턴(Emma Louise Boynton)의 수업에서는 성 긍정에 관한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 저물녘 암스테르담에서 온 귀여운 게이 커플이 진행하는 생텀 피트니스(Sanctum Fitness) 수업은 취향을 저격했다. 

생텀 피트니스 수업을 할 때는 수강생 전원이 블루투스 헤드폰을 착용한다. 헤드폰에서는 신나는 댄스 음악, 영감을 주는 명언 등이 흘러나왔다. 강사가 마이크를 통해 동작을 알려주는데, 에어로빅과 댄스가 섞인 새로운 운동 장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수업이 절반 정도 진행되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강생들의 거친 숨소리와 몇몇 의욕적인 학생들의 탄성을 제외하고는 적막이 흘렀다. ‘우리는 왜 이곳에 모였을까?’ 하는 의문이 솟았다. 이 많은 사람이 지금 이 공간에 모인 건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이었다. 모두가 한곳에 모여 각자 헤드폰을 착용했지만, 동시에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깊은 유대감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 모였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하자는 의지로 단결한 것 같았다. 다시 헤드폰을 끼고 창문 너머로 노을 진 하늘을 감상했다. 안무를 따라 하려고 몸을 움직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틀 차에는 더 대단한 수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순간을 만끽했다. 

“오늘 쿤달리니(Kundalini) 수업에 가나요? 완전 대박이라던데요!” 다음 날 아침을 먹기 위해 모인 식당에서 많은 이들이 쿤달리니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추며 떠들었다. 쿤달리니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이 수업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와 친구들 역시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는 과감함을 장착하고 오후에 열리는 쿤달리니 수업을 신청했다. 최선을 다해 설명해도 쿤달리니를 직접 하기 전까지는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단 나부터도 그날 오후 수업에서 내 몸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배우 올리비아 먼(Olivia Munn)을 닮은 아름다운 요가 강사는 우리에게 송장 자세로 알려진 사바사나(Savasana)를 취하게 했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큰 소리로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요가 선생님은 “긴장을 완전히 풀고 몸에 순응하세요. 눈을 꼭 감고 내면의 에너지에 정신을 집중합니다”라고 안내했다. 몸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를 느껴보라는 의미였다. 

그때부터 서서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요가 선생님이 매트 위에 누워 있는 수강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자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선생님이 손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방 안에 감도는 에너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내 옆에 누워 있던 남자는 몸을 꿈틀거리고 깊게 호흡했다. 이어 곳곳에서 깊은 심호흡과 낮은 신음이 연이어 터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설명하기 힘든 묘한 자극이 느껴졌다. 복부 코어가 살짝 조이며 잠들기 전과 같은 가벼운 얼얼함과 비슷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 자극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높아지며 몸의 내부 에너지가 밖으로 쏟아져 나오려는 듯했다. 그 순간, 선생님이 다가와 복부를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내가 할 얘기는 맹세코 지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둔다. 선생님이 내 복부에 손을 갖다 대자 몸통 전체가 얼얼하더니 이내 아무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매트 위에 가만히 누운 채 긴장을 풀고 순응하자 경련이 심해졌다. 생각한 것보다 당황스럽거나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보다 내 몸에서 에너지가 방출되는 듯한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그 주에만 벌써 두 번째로 눈물을 흘렸다. 닭똥 같은 눈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며 콧물 범벅이 될 때까지 목 놓아 울었다. 

이때부터 내 의식이 내부로 향했다. 머릿속에서는 잊고 있던 기억의 파편이 되살아났다. 이 축제에 오기 딱 1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새하얀 수의를 입고 나를 향해 팔을 곧게 뻗은 모습이었다. 그다음 장면은 제대로 사귄 첫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합의한 후 함께 살던 뉴욕 아파트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순간이었다. 그 뒤로 업무와 일상에서 겪었던 수많은 거절의 순간이 떠올랐다. 매번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바라보며 ‘겨우 이렇게 생겼느냐’며 외모에 대해 야박하게 굴던 장면이 영화처럼 스쳤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좋아요! 바로 그거예요!”라고 속삭였다. 성공적인 쿤달리니였다. 이후 얼얼한 감각은 점차 약해졌고 음악도 템포를 늦췄다. 완전히 조용해졌을 때 내 몸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기이한 동시에 경이로웠던 쿤달리니 수업 후 어느새 웰니스 신도가 되어 있었다. 한 주가 지나고는 귀네스 팰트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웰니스 전문가가 다 됐다. 자양 강장 효과가 뛰어난 아답토젠 허브, 장수에 도움을 주는 버섯, 생식기에 햇볕을 쬐는 게 호르몬에 얼마나 긍정적인지를 주변에 설파하고 다녔다. 친구들과 별생각 없이 떠난 이비사 여행은 기대한 것보다 내게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웰니스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도, 만능 치료법도 아니다. 성공적인 웰니스를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을 거쳐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 여정에서 무엇이 내게 맞고 안 맞는지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마에서의 일주일이 내게 준 깨달음은 이렇다. 웰니스 축제는 개인을 치유하거나 고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를 갖는 게 이 축제의 의의라는 것. 이비사 같은 아름다운 섬에 도착하더라도 집에서부터 끌고 온 마음의 짐과 삶의 근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온 신경을 쿤달리니에 집중할 때 비로소 쿤달리니도 내 부름에 응답한다. 이 단계에 도달한다면 샤먼이 외쳤듯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다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에디터
    김정현
    포토그래퍼
    COURTESY OF SIX SENSES
    TODD PL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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