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추천하는 여행

가장 똑똑한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은 최고의 여행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챗GPT를 이용하는 이유는 대부분 귀찮음에서 기인한다. 검색과 검색 사이에 부재한 정보를 다시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가뿐히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한번 사용해보니 그야말로 신세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예상한 건지 하나의 질문에 풍부한 답을 쏟아낸다. 자연스럽게 포털 사이트 대신 챗GPT를 찾는 빈도가 잦아졌다. 지난해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구글은 끝났다(Google is done)’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던데, 확실히 챗GPT는 검색 시장에 새로운 검색 메커니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궁금한 게 생기면 일단 챗GPT에게 묻는다. 개인적 호기심부터 업무에 필요한 내용까지 그야말로 정보를 손쉽게 물어다 준다. 출장과 휴가를 앞두고 시간을 아끼려고 그에게 가이드를 요청했다. 결과는 여러 의미에서 놀라웠다. 

챗GPT에게 “3박 4일 멜버른 여행 일정 추천해줘”라고 하자 꽤 촘촘한 일정을 제안했다. 오전과 오후, 저녁으로 시간대를 나눠 관광지를 추천하고, 그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유명 메뉴까지 내놓는다. 동선까지 고려했는지 페더레이션 스퀘어와 빅토리아 마켓을 하루에 몰고, 호시어 레인과 피츠로이, 콜링우드를 하루에 담아뒀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검색창을 몇 번이나 두드려야 했을 시차와 날씨, 문화와 대표 관광지에 대한 정보도 질문 하나로 해결된다. 커피와 아트 거리, 테니스 경기와 음식으로 유명한 도시라는 사실도 알려줬다. 멜버른의 정보를 질문 3개로 정복했다. 챗GPT는 축적된 정보를 조합하고 해체해 편집하지만 취사 선택해야 하는 질문에는 머뭇거렸다. 최고, 행복 같은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질문 역시 피했다.
그래서 질문을 할 때는 객관적 키워드를 먼저 정해야 했다. 질문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최고의 커피 맛집을 알려줘’라고 묻기보다는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라테 맛집을 알려줘’라고 물었을 때 더 확실한 답을 제안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의외의 수확도 있다. 선택한 국가와 도시를 생각하며 여행에서 얻으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분명해진다는 것. 질문을 만들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고 즐기고 싶은지 여행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할 때 치명적 무기이자 단점을 가진 무계획자로서 이처럼 진지하게 여행을 생각해볼 기회가 드물었던 내게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멜버른에 도착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후 챗GPT의 활약은 더 두드러졌다. 계획과 일정을 세우는 가이드보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쪽에 더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탐험에 나섰지만 멜버른 구석구석에 대한 궁금증을 전부 AI(인공지능)가 해결해주니 든든했다. 관광지와 음식의 역사와 유래, 문화에 대한 궁금증까지 싹 다 챗GPT에게 물었다. 낯선 풍경을 보고 그저 다름을 인정했던 것과 달리 이유를 알고 이해하며 도시를 머리로 흡수했다. 

챗GPT는 쏠쏠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분명 한계는 있다. 치명적 단점은 시의성이다. 챗GPT는 2021년까지의 데이터만으로 교육되었다.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아 많은 곳이 달라진 여행 시장에서 AI가 제안하는 정보는 2023년의 현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환율이나 교통처럼 실시간 데이터에 접근해야 하는 영역 역시 답변하지 못한다. 여행 가이드로서는 치명적 단점이다. 챗GPT가 소개하는 관광지와 레스토랑 등 여러 정보는 폐업 여부와 예약 가능 여부, 운영 시간 같은 구체적 정보는 별도 검색을 거쳐야 안전하다. 실제로 챗GPT는 현재 가장 잘나가는 레스토랑을 추천하는 질문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는 공손함을 보인다. 최신 정보와 트렌드를 알고 싶으면 그 리스트를 제공해줄 커뮤니티나 사이트, 매체를 묻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물론 각 사이트에 들어가 여행 정보를 수집하는 건 내 몫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오픈AI 사이트에 접속해 챗GPT에게 물었다. ‘여행이란 뭘까?’ 챗GPT는 “교육과 학습, 개인의 계발, 휴식과 회복, 사람 간의 연결, 모험과 탐험”을 핵심 가치라 답했다. 환경적·문화적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역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책임감 있고 지속가능한 여행법을 권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개인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행은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하며 기쁨, 영감, 성장의 원천이라고 말이다. 시즌6 공개를 앞두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 미러> 제작진은 챗GPT를 이용해 대본을 써본 경험을 말했다. 미디어와 정보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윤리관을 앞서 나갔을 때 벌어지는 처참한 상황을 다룬 작품 제작진의 챗GPT 사용 결과는 대실패였다. 제작자 찰리 브루커는 “챗GPT를 파고들수록 독창적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AI에는 개인적 의견이나 느낌이 없다. 돌아보니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챗GPT와 움직였던 이번 여행에서는 이전보다 촬영한 사진이 현저히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와 다른 여행법이 전과 다른 감상을 남겼다는 사실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에디터
    허윤선
    일러스트레이터
    신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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