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2>
자기 일에 열정적인 남자는 섹시하다. 20대의 모험가, 소방관, 목수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직업을 가진 7명의 남자를 만났다.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가치관과 취향, 목표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시인 하상욱
34세, SNS 시인
형식과 반전이 있는 짧은 글들이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서울시>라는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을 때 하상욱은 ‘SNS 시인’이라는 직함을 얻었다. 시도 쓰지만 노래도 부르고 강연도 하는 하상욱은 그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본인을 ‘시팔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가?
나름의 풍자다. 상업 예술인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다른 예술에 비해 유독 성역처럼 느껴지는 시를 편안하게 꺼내놓고 싶었다. ‘시인님’이나 ‘작가님’이라는 말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언어에 대한 재능은 언제 발견했나?
대학생 때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카피를 쓸 일이 많았다. 디자인에서는 언어적인 감각이 중요한데 내가 제법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이트 뉴스에서 베플이 된 적도 100번이 넘는다.
스스로 브랜드가 됐다고 생각하나?
SNS에 올린 글들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글을 썼던 것 같다.
유명해지고 난 뒤, 글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나?
예전이라고 부담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람이 많아지면서 부담감이 다양해졌다.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다 보면 진짜 해야 할 말을 할 때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불금, 연애, 야근 등 일상에서 공감의 포인트를 잘 포착한다.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내 편’인 사람들하고만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면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 건 공감보다는 승리감에 가까운 것 같아서 일상에서 소재를 찾으려고 한다.
타인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인지 생각해야 한다. 신동엽의 개그를 정말 좋아한다. 시시하면 재미없고 과하면 성희롱이 되는 게 야한 농담인데, 그는 전 국민을 상대로 수위를 조절한다.
사람들은 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강연을 자주 하지만, 해답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이니 준비하라고 하는 사람들을 믿지 말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20대들이 내 강연을 듣고 속 시원해하더라.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하지 않는 편인가?
상대의 미래를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도우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무책임하지 않나? 그러다가 결과가 별로면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며 빠져나가버린다. 충고하는 게 습관인 사람은 별로다.
당신에게 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일인가?
남자의 황금기가 30대라는데 겨우 이 정도인건가 싶긴 하다. 비관적인 편이라 그런지, 앞으로 더 잘 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상욱은 성공을 거뒀다.
주어진 상황에서 도망갈 수는 없으니까.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해왔지만 가끔은 우물에 빠진 기분이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딱 요즘 내 심정이다.
최근 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글쎄, 내 팔로워 숫자?
소아과 의사 연동건
29세, 분당차병원 소아청년과 전공의
소아과 전공의 2년 차인 연동건이 소아과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2주 동안 집에 못 들어갔을 정도로 바쁘지만 아이들이 나아지는 걸 볼 때면 힘이 난다는, 의사 선생님의 하루는 이렇다.
소아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보통 소아과라고 하면 감기에 걸려 온 어린이를 진찰하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산부인과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를 돌보는 비중이 가장 크다. 800g밖에 안 되는 몸무게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좋아해서 소아과를 택했다고 했다. 후회는 없나?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다. 보호자로 온 아이 부모도 내 또래인 경우가 많아서 보호자에게도 감정이입이 된다. 성인 환자는 자기가 아프다는 것을 자각하고 준비를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왜 아픈지,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니까.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내가 주치의로 오랫동안 봐온 환자가 있는데 환자나 가족에게 안 좋은 상황을 전해야 할 때다. 보호자들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격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환자가 아이다 보니 보호자인 부모도 예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심정적으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로 치료를 요구하거나 의사의 전문지식을 믿지 않을 때는 답답하다. 부모의 종교적 신념에 의해 수혈을 거부하기도 하고, 아동학대가 의심될 때도 있다. 침대에서 떨어져서 머리가 깨졌다고 데리고 왔는데 아무리 봐도 아이를 집어 던진 것 같았다.
그런 경우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학대심의위원회나 아동학대위원회가 있지만 아이를 양육할 사람이나 단체가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보호자에게 돌려 보낼 수밖에 없다.
병원이나 의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의사로서 억울한 점은 없나?
의료는 환자에게 전문 지식을 가진 의사가 설명을 하고, 그 설명을 믿고 환자가 따라오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100퍼센트 확실한 치료가 없고, 같은 증상에도 의사 성향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다 보니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의료사고를 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 그런 일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젊은 의사들도 여러 분야에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다 보면 내 아이에 대한 생각도 들 것 같다. 어떤 아빠가 될 것 같은가?
아이들의 언어를 아니까 내 아이가 생겨도 노심초사하지 않고,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있다.
소아과 의사로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아이를 좋아해야 한다. 소아과 병동은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를 싫어한다면 노이로제에 걸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가.
당직을 설 때면 아이 울음소리를 자장가로 생각하면서 잠들 수 있을 정도다.
목수 윤여범
30세, 710퍼니처 대표
기다란 몸, 느긋한 목소리를 가진 윤여범은 나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남자다.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건 그가 만든 가구도
똑같다. 자신의 공방을 가진 청년 목수를 만났다.
목수 일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은 언제인가?
의류 회사에 근무했는데 업무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인테리어 전문 잡지에 근무하는 여자친구가 적성에 맞을 것 같다며 가구 제작 일을 권유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일에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어린 시절 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긴 했다. 그리고 시작해본 뒤 확실히 알았다. 아, 이 일은 나랑 잘 맞는구나.
목공 작업 중 가장 재미있는 과정은 무엇인가?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소재를 더하면서 상상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 만든 걸 또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할 땐 아무래도 조금 지겹고.
가구를 만들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나?
밸런스가 중요하다. 나무에 금속 소재를 덧붙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때도 물성이 서로 어울릴 것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테이블, 의자, 서랍장, 침대까지 다양한 가구를 만들고 있다. 가장 욕심을 부리는 종류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의자를 잘 만들고 싶었다. 워낙 종류가 많고 단가도 낮은 편이라 쉽게 생각하지만 의자를 잘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이 앉으려면 튼튼하고 편안해야 하는데 디자인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목수가 되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가구는 모든 공정이 중요하다. 아무리 가구를 오래 만들었다고 해도 어떤 과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길이를 재고, 꼼꼼하게 계획하고 체크해야 하는 것. ‘꼼수’를 부릴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무의 매력은 무엇인가?
같은 월넛 나무라도 나무마다 모양이 다 다르다는 것. 나무를 잘 알지 못하면 그냥 죽어 있는 물체처럼 느껴지겠지만 만질수록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고객도 있나?
사람을 상대하는 것까지 직접 하다 보니 상식 밖의 주문을 듣는 경우도 있다.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데 너무 쉽게 이케아와 비교하는 거다. 본인이 생각했던 예산보다 과한 소비를 했을 경우에는 가구에 대한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에 대해 이것저것 의심하고 흠을 찾으려 한다. 물론 좋은 고객들이 대부분이다.
목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어떤 일을 하든 똑같겠지만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 해야 할 일, 하고 있는 일이 많다는 핑계로 정체된 상태에서 지금 할 일만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또 다른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는 건 좋지 않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수도 생긴다.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경험상 그런 일을 하면 돈은 생겨도 그로 인한 상실감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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