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 리아킴

잃을 것 없는 사람처럼 또 한 번 무대에 오른 리아킴의 각오. 

슈즈는 페라가모(Ferragamo). 셔츠와 타이, 스타킹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 톱과 데님 스커트, 이어링은 모두 지방시(Givenchy).

롱 코트는 페라가모.

롱 코트와 톱, 쇼츠는 모두 페라가모. 슈즈는 지미추(Jimmy Choo).

<스트릿 우먼 파이터2>(이하 <스우파2>) 공식 트레일러 영상이 지난주에 공개됐어요. 시즌1 때부터 원밀리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드디어 보게 됐네요.
편집 재밌게 됐죠?(웃음) 저도 영상 보니까 빨리 1화 보고 싶어졌어요.

시즌1을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어요?
‘나도 나갈 걸 그랬나?’ 했죠.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스우파>가 댄스 신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해요. 댄서의 인지도가 높아진 건 물론, 대중이 댄스 신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됐으니까. 방송을 보면서 시즌2 제안을 다시 받는다면 꼭 나가야겠다 마음먹고 있었어요. 시즌1 때도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다른 방송과 일정이 겹쳐서 고사했거든요. 사실 참가자로 나선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요.

잘된 프로그램의 시즌2에 출연한다는 건 장단이 있는 일이니까요.
‘레전드’ ‘톱’ 같은 수식어만 붙다가 이제는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후배들과의 경연에서 질 수도 있고요. 그런 걸 의식했기 때문에 부담이 된 거겠죠. ‘그게 뭐라고 이러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나온 커리어를 지키겠다고 새 국면을 만날지도 모르는 기회를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지금까지 쌓아온 걸 움켜쥘수록 뭔가를 잃는 것 같았어요. 잃을 거 없는 사람인 것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어요. 행동으로 옮기는 데 용기가 필요할 뿐이죠. 이번엔 그 용기를 내본 거고요.

<스우파2>는 도전이었던 거네요?
그렇죠. 저는 아직 현역이고 플레이어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이런 상황을 계속 회피할수록 오히려 뒤에 물러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 거예요. ‘심사위원’ ‘디렉터’처럼 한발 물러나 있는. 언젠가는 저도 그런 자리가 자연스러운 사람이 될 때가 있겠지만, 아직은 더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스우파> 하면 배틀이죠. 그렇게 하는 배틀은 오랜만이었죠?
저는 ‘졌지만 괜찮아’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지면 안 괜찮아요. 분해서 잠 못 자고 다음엔 꼭 이겨야 하고. 그런 내가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배틀을 안 했어요. 그러다 원밀리언을 시작했고, 안무 짜고 학생들 가르치는 삶을 살다 보니 경쟁을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죠. 나이 먹고 유순해졌다 생각했는데, 똑같던데요.(웃음) 결국 옛날의 리아킴이 튀어나오더라고요. 다시 해보니 느꼈어요.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촬영은 중반쯤 왔다면서요.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어떤 게 가장 달라졌어요?
일단 변함없는 거 먼저 말해도 될까요? 처음도 지금도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전보다 재미를 조금 더 느끼고 있어요. 스트레스 받고, 잠도 못 자서 피곤하지만 뭔가에 이렇게 에너지를 쏟아붓듯이 하는 나 자신이 멋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극한의 상황에서는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게 있었어요?
완벽한 T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났다, 슬펐다, 감동적이었다가. 오만 감정이 뒤엉켜서 극도로 감정이 복받친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정말 많이 울었고요. 수도꼭지 같은 제 면모를 새롭게 봤어요.

그러고 보니 3분짜리 예고편에도 눈물 흘리는 모습이 나왔네요.
매 회 울지도 몰라요. 우는 거 징글징글하다는 얘기 좀 들을 것 같아요.(웃음)

저렇게 단단한 사람은 어떻게 크루를 이끌까 궁금했는데. 눈물이 많은 리더였군요?
막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줄 알았죠? 근데 애들이 느끼기에 저는 리더보다 사장님에 가까웠을 거예요. 내가 편하게 다가가려 할수록 그 친구들은 부담스럽게 느껴서 더 멀어지기만 하는 관계였달까요. <스우파2>에서는 어느 한 명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서는 잘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모두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죠. 그래서 출연 전 연습 때는 제가 낸 의견이 별로라면 누구든 자신 있게 얘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목표였어요. 촬영하면서 그 벽이 정말 많이 허물어졌고요.

촬영 초반에는 합숙에 가까웠다면서요?
이런 식으로 연습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덕분에 이제는 뭐, 생리 현상까지 공유하고 있죠. 대화도 자주 나누고. 가족이나 남자친구 외 사람들과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깊이 교감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원밀리언 친구들과 하게 돼서 좋아요.

원밀리언의 대표, 그리고 리더라는 직책이 붙는 건 어때요?
이제 미룰 수가 없는 사람이 됐다는 얘기로 들려요. 내가 모든 걸 결정해야 하니까. 결국 그만큼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내 결정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정말 노력하게 돼요. 그래도 다행인 건 즐길 때도 많다는 거. ‘나 그래도 의미 없이 막 살고 있지는 않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뻑도 좀 있어서 그런 것 같고?(웃음)

적당한 자뻑이 책임감의 무게를 덜어준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도 멋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즐기려는 거죠. 그럼에도 무게가 덜어지지 않는, 아주 부담스러운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해요. 잘한 선택이라는 건 없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만 있을 뿐이라고.

댄서에게 몸은 중요한 표현의 수단이에요. 내 몸을 위해서 꼭 지키는 루틴도 있어요?
일단 하루에 한 끼만 먹어요. 1일 1식이죠. 술을 포함해서 먹고 싶은 건 가리지 않고 다 먹는 편이에요. 이제는 그렇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게 바로 느껴져요. 이렇게 한 지는 10년쯤 됐어요. 운동은 플랭크 같은 코어 운동 위주로 하죠. 가급적 매일. 시간 나면 요가도 하고요.

처음 춤을 출 때, 나만이 가진 무기는 뭐라고 생각했어요?
댄서는 돈을 못 번다는 말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그 말에 반하는 도전 정신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반항심이죠. 춤으로 돈 번 사람이 없다면 내가 처음이 되지 뭐! 하는 패기.(웃음) 아무리 돈이 없어도 아르바이트는 안 했어요. 춤으로 돈 벌 방법을 찾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요.

직업은 일하지 않는 일상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죠. 수년간 춰온 춤이 리아킴에겐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최근 칼부림 사건도 그렇고, ‘묻지 마 범죄’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잖아요. 혜림이(하리무)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세상에 춤추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공감하는 말이에요. 춤은 분명히 해소하는 역할을 해주거든요.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사람들의 분노와 폭력성이 극에 달했다는 메시지 같아요. 저는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춤으로 해소해요. 이만큼 건강한 방법이 어디 있겠어요. 전 늘 목표가 있고, 그걸 해내야 하는 사람이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춤을 춰서 다행인 사람이에요.

목표에서 벗어나 비로소 즐기면서 춤출 수 있게 된 건 언제였어요?
지금도 즐기기만 하지는 못하는 걸요. 진짜 춤을 좋아해서 추는 게 보이는 댄서도 있어요. 저는 춤을 즐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잘 추고 싶은 사람이죠. 여전히 의무감이나 목표에 이끌려 출 때가 많아요.

지금은 어떤 목표에 사로잡혀 춤을 추나요?
남은 <스우파2> 촬영을 잘 끝내는 것.(웃음) 늘 바라는 건 원밀리언 안무가와 댄서가 풍족한 삶을 누리는 거예요.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요. 아직까지 누가 춤춰서 번 돈으로 건물 샀다거나 전용기 타고 다닌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거든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댄서라면 화려한 부도 누릴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날이 꼭 오면 좋겠어요.

인간 김혜랑으로서는 어떻게 늙어가고 싶어요?
내가 쌓아온 것과 지금의 위치 같은 건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자기 타이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 보기 안 좋잖아요.

요즘 춤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에 관심이 많아요?
자연요. 평생 산과 물을 가까이하며 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춤 안 추면 무슨 일 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멋있는 비주얼을 만드는. 지금은 제 농장을 갖는 게 꿈이에요.

속세의 <스우파2>가 남긴 흔적일지도?(웃음)
지금은 <스우파2> 촬영을 잠시 쉬고 있지만, 한창 촬영하고 미션 준비할 때는 집이 얼마나 평화롭게 느껴지던지.(웃음) 최근에 양평으로 이사했거든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자연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어떤 날엔 마당에 한참을 앉아 있기도 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금 제일 리아킴다운 것. 뭐라고 생각해요?
모르겠네요. 저보단 봐주는 사람들이 알지 않을까요? 의도적으로 어떤 콘셉트를 잡고 보여주려 한 적은 없거든요. 그때그때 좋아하는 걸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래서 리아킴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자주 바뀌기도 했겠죠? 그 변덕까지도 모두 나다운 거겠네요. 앞으로도 전 이렇게 살 거예요.

    에디터
    고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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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MIN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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