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미래
배달음식을 시킬 때마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그릇과 일회용 수저에 죄책감을 느끼기 일쑤인 요즘. 철저한 분리수거로 나름의 속죄를 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이 수많은 쓰레기들이 전부 재활용되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NO’. 이렇게 수고로운 작업을 거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전 세계적으로 9%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해 만든 제품은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구성 요소의 분해 과정이 필요한데, 이 분리 작업에는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수반된다. 효용 높은 재활용을 위해 ‘단일 소재(Mono Material)’에 주목해야 할 때다. 이름 그대로 단 한 가지의 물질로 구성한 소재로, 분리 과정에서의 에너지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재사용 및 재활용에 용이하다. 새로운 소재로 재활용할 때 혼합 섬유보다 더욱 높은 품질을 유지한다. 이에 H&M, 프라이탁 등 패션 브랜드는 단일 소재 개발과 보급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단일 소재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는 지난해 EU(유럽연합)가 발표한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 전략’의 영향이 크다. 친환경적인 유럽 섬유 산업의 미래를 위해 2030년까지 다양한 법적 규제를 마련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디지털 제품 여권 도입, 섬유 폐기물 수출 제한, 순환 비즈니스 모델 장려 등 주요 사항 중에서도 집중할 점은 바로 ‘패션 순환 디자인’이다. 의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80%는 디자인 단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부터 재활용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손쉬운 재활용을 위해 단일 섬유를 사용하고, 단추나 지퍼 등 부재료처럼 서로 다른 소재를 이용할 때는 분리가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순환 디자인의 핵심이다. 합성섬유를 사용할 때 방출되는 미세플라스틱 오염도 줄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순환 경제의 촉진을 위해 나이키는 순환 디자인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가이드는 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소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단일 소재의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 각각의 요소가 업사이클 및 리사이클이 가능한지, 손쉽게 분해되는지 등 다방면을 고려한 친환경 패션의 미래를 공유했다. 순환의 물결을 타고 트럭 방수포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은 최근 무한히 재활용할 수 있는 신소재 섬유 개발 성공 소식을 알렸다. 폴리아미드6 소재로 개발한 단일 섬유로, 제품의 수명이 다하면 모든 부품은 ‘퇴비화’된다. 이 소재를 삼중 레이어드하여 제작한 백팩 ‘모노[PA6]’를 내년 봄부터 생산할 계획이다. 접착제나 내부 라벨용 잉크 등 미세한 구성 요소를 제외한 대부분이 재활용될 수 있는 셈이다. 가방이 퇴비가 되다니? 그만큼 튼튼하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우려는 하지 말 것. 독일 알브슈타트-지그마링엔 대학의 응용과학공학 교수진과 수차례 테스트를 거쳐 내구성도 증명했다.
이렇게 단일 소재 관련 기술 개발에 도전하는 패션 브랜드가 하나둘씩 늘고 있다. 이 여정의 시작을 맨 처음 알린 곳은 H&M이다. 2021년 ‘H&M 이노베이션 스토리즈: 서큘러 디자인’에서 스타일은 물론 순환성을 고려한 컬렉션을 선보인 것. 제작에 필요한 모든 텍스타일은 단일 소재를 쓰고, 시퀸이나 라인스톤 등 부자재도 지속가능한 장식에 초점을 맞췄다. 리사이클 비즈는 리소텍스(ResortecsⓇ) 용해성 실로 엮어 한 알 한 알 전부 분해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해양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테르 소재 리프리브 아워 오션(RepreveⓇ Our OceanⓇ), 오래된 섬유 폐기물을 활용한 사이코라(CycoraⓇ) 등 다양한 단일 소재를 소개하기까지 했다.
노스페이스는 작년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소재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순환 컬렉션을 발표했다. 총 20가지 스타일로 구성한 컬렉션은 단일 섬유를 사용해 쉽게 분해된다. 오래된 옷을 분해한 후 그 재료로 실을 재가공하고, 이를 원단으로 만들어 옷을 제작한 덕분. 단추나 지퍼 등 트림까지 100%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했다. 그 결과 분해 테스트에서 단 9초 만에 재킷 분리에 성공했을 정도로 재활용률이 뛰어나다. 이런 연구 개발에 힘입어 2025년까지 컬렉션에 사용되는 원단을 모두 재생 가능한 소재로 전환하고, 순환 디자인 제품 라인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 외에 단일 소재 절연체를 개발해 100%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재킷을 선보인 노르웨이 아웃도어 브랜드 헬리 한센, 플루오로카본을 함유하지 않은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 티에라의 플론 재킷 등 스포츠 및 기능성 의류에도 단일 소재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하나의 제품과 라인을 넘어 단일 소재가 재활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날까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