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가 50년된 백화점에 문을 연 이유는?
일본 삿포로 도큐백화점에 문을 연 유니클로의 목적은 하나다. 로컬 문화에 스며들어 지역 주민과 여행객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 어디든 두발로 거닐며 여행하기 좋은 계절, 삿포로를 들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어엿한 가을의 행색을 한 9월의 삿포로는 어디든 걷기 좋다. 적어도 9월에 접어들어서도 여름을 놓지 못한 듯 푹푹 찌는 도쿄와는 공기부터 다르다. 낮 최고 기온은 24~26도를 웃돌고 해가 지면 찬 바람에 팔짱을 낀 채 몸을 웅크리며 걸어야 할 정도. 사실 삿포로는 겨울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다. 영화 <윤희에게>의 배경이기도 한, 온통 흰 눈으로 덮인 삿포로의 겨울은 유독 아름다우니까. 하지만 눈이 사정없이 내리는 탓에 지하도로 이동할 일이 많은 데다, 2월 눈 축제 시즌이 가까워져 오면 물밀듯 몰려오는 관광객 때문에 도시를 진득하게 즐기긴 어렵다. 기꺼이 뚜벅이 여행자가 되어 도시 곳곳을 여행하기엔, 이만한 계절이 없다는 얘기다.
눈, 맥주, 그 밖의 삿포로
19세기 후반, 도시 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삿포로의 바둑판 모양 도로는 나 같은 길치에게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도착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숙소 주변 지리를 익힌 나는 웬만한 곳은 구글맵 없이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매일 발도장을 찍은 곳은 오도리 공원. 매년 2월 눈 축제가 열리는 바로 그곳이다. 동서로 1.5km가량 쭉 뻗은 공원을 천천히 거니는 데는 30분 정도 걸리니 아침 산책 코스로 딱이다. 공원의 동쪽 끝자락에는 랜드마크인 TV 타워도 있다. 약 90미터 높이의 전망대에서 삿포로의 풍경을 360도로 눈에 담을 수 있다. 정시마다 거리에 울리는 종소리는 TV 타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삿포로 시계탑에서 나는 소리다. 건물이 지어졌던 1878년, 당시 유행했던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유행한 목조 건축양식을 훌륭히 보존하고 있어 들러볼 만하다. 미소라멘 맛집이 한데 모여 있다는 라멘 골목으로 향하는 길은 한층 사람 냄새가 난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니조(Nijo) 수산시장에 가까워질수록 그렇다. 홋카이도의 특산품인 게와 가리비 등을 신선하고 저렴하게 만나볼 수 있는 시장 골목은 호객하는 장사꾼들과 붐비는 관광객 덕에 복작복작한 생기가 느껴진다.
맥주는 설경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삿포로의 명물. 삿포로 맥주 박물관은 그래서 꼭 들러야 하는 관광 스폿으로 꼽힌다. 시내 중심부에서는 차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1800년대 제조법으로 양조 된 ‘복고 삿포로 맥주’를 시식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도 유명하지만, 삿포로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손꼽히는 징기스칸을 생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맥주 가든을 빠트려선 안 될 것. 3초 안에 따라 신선도를 유지한다는 홋카이도 한정판 클래식 비어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특별 생맥주를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시내 곳곳의 관광지를 섭렵하고자 부지런히 걸었던 날의 저녁을 이곳에서 마무리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지역 사회와 손잡은 유니클로 도큐백화점 삿포로점
도시 경관을 눈으로 살뜰히 담았다면 이제 남은 할 일은 하나다. 양손 가득 쇼핑을 즐기는 것!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우선 JR 삿포로역으로 향하면 된다. 오도리 공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역 근처에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유명한 다이마루 백화점부터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스텔라 플레이스, 아피아 지하상가, 현재는 폐점 후 리모델링 진행 중인 에스타 쇼핑몰 등 폭넓은 선택지를 갖췄다. 로컬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이곳에서만 5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큐백화점도 빼놓을 수 없는 쇼핑 스폿. 지하 3층, 지상 10층 규모인 이곳은 삿포로 전철역과 JR역에서 지하 통로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라 접근성 면에서도 훌륭하다. 빅 카메라, 반다이 남코, 핸즈 등 관광객이라면 관심을 보일 만한 일본 대표 브랜드가 다수 입점해 있다. 로코노미(local+economy) 트렌드에 발맞춰 홋카이도와 삿포로 기반의 희소성을 지닌 상품과 서비스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9월 8일, 7층에 새롭게 문을 연 유니클로는 도큐백화점 삿포로점의 행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홋카이도에서는 유일하게 GU와 나란히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다양한 오리지널 제품 라인으로 지역색을 띤 브랜딩을 펼치는 중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모델을 기용하는 대신 지역 상인과 로컬 브랜드와 협업한 콘텐츠로 제품의 우수성을 어필한 광고들도 눈에 띈다. 유니클로와 파트너십을 맺었던 기존 9곳의 브랜드에다 홋카이도 대학, 삿포로 야키토리 레스토랑 쿠시도리 등 새롭게 손잡은 8곳의 브랜드와 함께 총 17종의 한정 디자인 티셔츠를 선보인다. 일명 ‘UTme!’ 서비스. 고객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캐릭터나 로고를 재치 있게 활용해 자기 취향을 반영한 티셔츠나 토트백을 만들 수 있다. 맡긴 제품을 당일에 바로 받아볼 수 있다는 건 여행객에게 최고의 메리트다.
지속 가능한 선순환에 대한 고민도 빼먹지 않았다. 한 철 입고 버려지는 옷 대신 오래도록 깔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리페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 단순히 기장을 수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큐백화점 삿포로점은 홋카이도에서는 유일하게 리 유니클로 스튜디오(RE. UNIQLO STUDIO)를 갖춘 매장으로, 다양한 버전의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도 제공한다. 셔츠의 단추를 교체하거나 구멍을 꿰메는 등의 기본적인 수선은 물론 패치워크 디자인을 입힌 리메이크도 가능하다. 일러스트레이터 다카하타 마사오(Masao Takahata)가 그린 홋카이도 모티브의 자수는 오직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오픈 당일, 유니클로 도큐백화점 삿포로점은 홋카이도 소재의 식재료 브랜드 벨푸드와 협업한 특제 바비큐 소스를 선착순 증정하는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도큐백화점과 함께 나이 들어 왔을 지역 토박이에게도, 이 도시를 처음 찾은 나와 같은 여행객에게도 삿포로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만남. 지역과의 공생을 위한 유니클로의 노력이다.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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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고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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