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여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에트로 2024 S/S 컬렉션

삶을 여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에트로의 헌사. 

밀란 패션위크 둘째 날이었던 지난 9월 20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코 드 빈센조(Marco de Vincenzo)가 지휘한 세 번째 에트로 컬렉션이 공개됐다. 에너제틱하면서도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젖어 있는 2024 S/S 컬렉션 쇼를 관전한 경험은 그에 대한 시각을 다시 한번 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온전한 나를‘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에트로의 유랑 

여행지에서 낯선 곳을 정처없이 거닐다 갑자기 마음이 동하는 ‘어떤 곳’이 있어 오랜 시간 머무른 적 있지 않은가? 소문난 관광지를 탐색하는 일도 물론 뜻깊지만, 본능적으로 착륙한 이름 없는 멋진 장소는 기억 속에서 색다른 의미를 가진다. 올해만 해도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캄보디아에서 휴가를 보낸 마르코 드 빈센조는 소문난 ‘여행광’. 그 역시 이성적인 계획이나 논리 없이 이름 모를 ‘어떤 곳’에서 일종의 정지된 여행을 보낸 때가 있었고, 그때 얻은 강렬하고 본능적인 경험은 이번 컬렉션에 고스란히 녹아냈다. 그리하여 완성된 에트로 2024 S/S 컬렉션의 테마는 ‘아무 데도, 아무 곳도’란 뜻을 지닌 ‘노웨어(Nowhere)’다. 에트로 노웨어는 어디에도 없으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 다만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미지의 공간을 뜻한다. 예를 들면 신비한 문명의 잔해가 숲속이 아닌 도심 한가운데에 ‘짠’ 하고 나타나는 것과 같이 상상이 실현되는 장소를 말한다. 그리고 그곳은 패션에 대한 은유로서 모든 것이 허용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패션계 로맨티시스트로 가득했던 에트로 쇼장에 들어선 순간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드넓게 펼쳐진 빈 공간에는 신전의 유적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둥만 우뚝 서 있었으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페이즐리 패턴을 담은 견고한 기둥은 버려진 뉴스 페이퍼로 만들었다고. 폐신문지를 물에 용해하고 손으로 직접 빻은 뒤 물기를 짜내고, 또 페이즐리 문양을 따라 촘촘히 붙여 햇볕에 바싹 말리는 등 수고스러운 과정을 여러 번 거쳤다. 시간이 지나 보잘것없어진 흔한 뉴스 페이퍼도 이토록 웅장한 벽 기둥으로 변신시키는 에트로가 전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패턴, 패브릭을 소싱한다면? 그 결과물이 환상적이고 완벽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우스의 탁월한 예술성, 디렉터의 비전과 환상을 녹여낸 에트로 2024 S/S 컬렉션.

에트로 2024 S/S 시즌 뉴 백 컬렉션.

조화로운 믹스앤매치

하우스의 탁월한 예술성과 디렉터의 비전, 환상, 집착이 혼합된 쇼는 시작과 동시에 눈을 황홀케 하는 그래픽과 멋진 질감을 쏟아냈다. 실키한 웨스턴풍 브로케이드, 멋스럽게 워싱한 데님과 테리 패브릭 소재, 플로럴이나 타이 패턴뿐 아니라 고대 미케네의 부활의 상징이자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문어 일러스트까지. 또 폴리네시아 지역에서 마주친 땋은 머리도 패브릭 장식으로 활용한 아이디어는 텍사스 부츠의 앞코까지 늘어뜨려 표현했다. 에트로 런웨이 위에서는 어떤 것도 무한히 조합될 수 있고 모든 것이 허용되기에 마르코 드 빈센조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경험한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와 패턴이 혼합되었음에도 모든 룩은 강한 응집력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어우러져 생동감 있는 스타일로 연출돼 오히려 비현실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직선적인 실루엣과 은근히 보디 라인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어우러지며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 에트로 2024 S/S 컬렉션.

고대 문화를 마주한 디자이너의 상상력으로부터 탄생한 액세서리 컬렉션.

새로운 시즌 룩은 가까이서 바라볼 때 빛을 발한다. 와이드 셔츠에는 신비한 섬의 문신 같은 일러스트가 넘쳐나며 스커트의 스트라이프는 관능적으로 소용돌이친다. 액세서리 역시 기발함 그 자체. 특히 눈을 가린 여신 형상의 귀고리에는 많은 생각 대신 본능과 상상력만으로 자유롭게 옷을 입고 즐기는 일상의 행위를 담았다. 마치 도전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속삭이듯. 2024 S/S 시즌 컬렉션은 모든 것은 가벼우면서도 어떤 깨달음이 있는 듯 계산된 무심함이 있기에 더 돋보인다. ‘툭’ 길게 떨어지는 직선적인 실루엣, 몸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감싸며 은근히 보디 라인을 드러내는 스타일, 아래에서 위로 열리는 재킷이나 하의와는 대조되게 볼륨감이 풍성한 블레이저 또는 바시티 재킷 등. 추위가 가고 내년 봄이 오면 에트로의 다양한 영감 덕에 여행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매일을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겠다.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디터
    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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