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선
비틀고 꼬집어 감각하는 즐거움은 이달의 전시만으로 충분하다.
WAKING UP
독일 라이프치히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는 현대 미술계가 가장 주목하는 아티스트다. 제 방식대로 흡수한 여러 미술 사조의 특징을 위트 있게 그려낸다. 사용하는 색채와 재료도 과감하다. 11월 29일부터 시작되는 <그림 깨우기: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는 회화, 대형 조각, 드로잉, 판화 등 회화의 전통성에 신선한 물음을 던지며 탐구하고 실험한 그의 작품 16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신작 20여 점도 포함됐다. 늦은 저녁 시작되는 2부 프로그램은 크리스토프 AI가 생성하는 미디어월을 마련했다. 작가의 마스크 시리즈를 관상 앱과 접목해 관람객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2024년 3월 3일까지,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IMPLICATION
작가 5명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자연을 포착했다. 경이롭고 웅장한 자연의 일부는 조각과 사진, 영상, 설치미술에 녹아 새로운 함의를 갖는다. 차가운 전시장 바닥에는 알루미늄 판이 설치돼 있다. 멸종동물 20종을 새긴, 태국계 현대 예술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무제2020(정물) 연작’이다.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작품을 묘비에 비유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국내 작가로는 김수자, 문경원이 이름을 올렸다. 빙하에서 활화산까지, 흙, 물, 불, 바람으로 이뤄진 세계를 담은 김수자의 영상 작품 ‘대지-물-불-공기’는 자연과 인간의 견고한 유대를 새삼스레 되돌아보게 한다. 2024년 1월 21일까지, 호암미술관.
반추하다
별일 없어 보이는 일상을 가만히 관찰하고 묵상하는 것은 작가 유근택이 작업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익숙한 장면이 캔버스 위에 투영될 때, 일상에서 간과되고 가려져 있던 것은 되레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전시 <REFLECTION>은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채웠다. ‘세상의 시작’ ‘분수’ ‘반영’ 등 지난 몇 년에 걸친 작업을 연작으로 선보인다. 전통의 동양화를 살짝 비껴간 듯한 분위기는 종이가 젖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 캔버스와 물감의 물성에 적극 개입한 결과다. 깊게 파고든 일상을 겹겹이 쌓아 작가 내면의 양상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작품은 화가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은, 인간 유근택의 모습에 가깝다. 12월 3일까지, 갤러리 현대.
아트와 패션
일본 패션 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와 한국 작가가 만난다. 디자이너가 아닌 예술가로서 그를 조명하는 전시는 처음 펼쳐지는 일. 스니커즈 디자인 샘플과 각종 개인 소장품, 직접 만든 영상, 음악을 통해 그의 예술적 면모를 감상할 수 있다. 자신의 신발끈을 묶지 못한다는 뜻을 지닌 야스히로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쿠츠히모 무스베나 군’은 전시 타이틀인 ‘KNOT KNOT LAND’와 이어진다. 매듭(KNOT)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일 아티스트 6명을 묶고 이었다. 문연욱, 이광호, 이형구 등 디자인, 공예, 설치미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야스히로의 작업 세계에서 영감 받은 신작 30여 점을 공개한다. 12월 10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