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과 모닝루틴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아침’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모닝 루틴의 중요성.
언젠가부터 ‘아침’은 성공과 부를 논하는 콘텐츠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됐다. 개중에는 다소 과장된 어휘로 아침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사람도 있다. N년째 미라클 모닝을 시도 중인 내게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인도한 영상 속 앤드루 휴버먼이 그랬다. 미국 신경과학자이자 스탠퍼드대에서 정신의학 교수로 재직 중인 휴버먼이 등장하는 영상의 섬네일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이렇게 하면 하루를 망칩니다” “성공하려면 아침에 일어나서 무조건 해야 하는 것”. 이 콘텐츠들이 여느 자극적 방법론을 넘어설 수 있었던 건 주관적 내면의 변화 대신 객관적 지표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아침의 뇌
눈을 뜨자마자 요란하게 울려대는 스마트폰 알람을 끄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시간을 확인한다. 자연스레 그다음으로 시선이 꽂히는 곳은 밤새 쌓인 각종 알람이다. 흥미를 끄는 몇몇 메시지에 답장한 뒤, SNS를 배회하며 반사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버린다. 앤드루 휴버먼 교수는 누구나 겪었을 이 보통의 아침을 두고 “하루를 망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침은 우리의 뇌를 세팅하는 시간이라서 그렇다. 잠에서 깬 직후의 약 1시간은 신경 물질인 도파민의 경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간이다. 도파민은 흔히 보상과 중독을 관장한다고 알려졌지만, 뇌에 활력을 더하는 에너지원의 역할도 한다. 중뇌에서 분비된 도파민이 ‘메타인지의 뇌’라고도 하는 전전두엽을 지날 때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치판단과 의사 결정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은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뇌파의 관점에서도 아침은 중요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뇌에는 세타(Theta)파가 흐른다.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몽롱한 상태로 이해하면 된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그 어딘가. 세타파가 흐를 때 뇌는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상상력과 집중력, 창의력 등 우리가 흔히 타고나야 한다고 표현하는 자질을 이 시간에 고양할 수 있다. 세타파는 외부 자극보다 내면에 집중하도록 만들기에 마인드셋을 재정비하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캄캄한 방 안에서 스마트폰 불빛에만 의존해 선별되지 않은 다량의 콘텐츠를 흡수하는 건 자기 계발의 골든 타임을 놓치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아침에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다면 답은 하나다. 잠에서 깬 직후 뇌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뇌과학자는 마음 훈련, 즉 명상을 제안한다. 아침에 분비되는 도파민은 명상을 할 때 뇌의 전전두엽을 지나는 경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1990년대 명상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명예교수 존 카밧진은 마음 챙김 명상에 바탕을 둔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MBSR)라는 명상 프로그램으로 명상이 집중력을 높인다는 과학적 효과를 입증했다. MBSR은 몸의 감각을 체계적으로 훑는 보디 스캔,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알아차리기 같은 방법을 포함한다.
8주간의 실험 결과, 매일 프로그램을 수련한 집단은 전보다 감각에 대한 주의력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는 뇌의 능력이 강화된 것이다. 기상 직후 세타파가 활성화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면 명상을 하며 스스로를 향한 긍정적 생각을 주입하는 방식도 하루를 건설적으로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서 내면 소통과 명상을 연구하는 김주환 교수는 “잠재의식을 리프로그래밍하기 위해 ‘자기 확언(Self Affirmation)’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뇌는 우리가 흔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표현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의 초기값인 셈이다. 스스로를 향한 의심과 불만이 가득 잠재되어 있다면 우리의 무의식은 늘 부정적 시나리오를 맴돌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할 수 있다’는 흔하디흔한 말이라도 차곡차곡 쌓아두는 편이 낫다. 김주환 교수가 강조하는 건, 긍정적 자기 확언을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으라는 것이다. 무의식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둔 아침의 뇌가 쏙쏙 흡수해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단 한 번의 명상으로도
5일간 매일 아침 15분 일찍 일어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눈길을 주지 않을 자신이 없어 알람 시계로 잠을 깨웠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암막 커튼부터 젖혔다. 빛을 쬐고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신 뒤 곧장 명상에 돌입했다. 처음 3일은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5분을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었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몽롱한 상태에서 긍정적 자기 확언은커녕 명상이 하루를 더 피곤하게 할 것 같다는 날 선 의심만 커질 뿐이었다. 아침 명상이 조금 편해진 건 4일 차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졸린 기운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5분은 거뜬히 명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가만히 알아차리고 흘려보내기를 반복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쯤 오늘 할 일에 대한 부담과 걱정을 덜어내도록 돕는 긍정의 말도 떠올렸다. 가장 눈에 띄는 수확은 별 소득 없이 흘러가기 바쁘던 오전 근무 시간에 부담이 큰 일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집중해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오전에 하고 나니 능률이 올랐다. 쓸데없는 잡생각을 이어가다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빈도가 줄어든 건 아침에 되뇌던 긍정적 말이 가져온 효과일까? 밤이면 찾아오는 만성 두통도 잦아들었다. 8분가량의 명상 한 번만으로도 주의력 저하와 불안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걸 보면, 이런 변화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 하루를 바꾼다는 건 엄연한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