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MBTI, 8체질을 안다는 것
체질을 알고 나면 삶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8체질을 아시나요?” 8체질은 한의학에서도 주류에 속하지는 않기에 8체질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처음엔 ‘그런 게 있었어?’ 싶었으니까. 8체질은 체질의학인 사상체질에 바탕을 둔 한의학 체계다. 체질의학은 사람마다 오장육부의 허와 실이 다르기에 체질에 따라 생리적·병리적 차이가 생겨 치료와 생활, 섭생을 모두 달리해야 한다는 이론. 체질을 8가지로 나누기에 ‘8체질 의학’이라고 한다.
내가 ‘금음체질’이라는 건 루푸스라는 자가면역질환이 생긴 후 알게 되었다. 양의학으로는 부작용 위험이 높은 스테로이드가 유일한 치료인 병이기에, 다른 병행할 치료 방법을 모색하다 8체질 한의원을 찾게 된 것. 8체질의 주된 치료법은 체질음식, 체질침, 체질한약이다. 가장 중요한 건 체질식단이었다. 가능하면 체질에 맞는 식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적합한 운동을 했으며, 해로운 음식과 습관은 자제했다. 내가 속한 금음체질은 특히 식단이 까다로운 체질에 속한다. 모든 육식과 밀가루가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완벽한 체질식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해로운 음식을 먹을 때 이로운 음식을 더해서 먹거나, 보양식으로 삼계탕 대신 연포탕(금음체질에겐 모든 해산물은 이롭다)을 선택하는 등 일상에서 체질음식을 상기하고 가능하면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또 땀을 많이 흘리는 조깅보다는 필라테스를 하고, 머리까지 열을 오르게 하는 탕목욕과 음주, 카페인 음료를 멀리했다. 허술하게나마 이런 식이법을 7년 넘게 유지했더니 가끔 치솟던 염증 수치가 안정돼 5여 년간 매일 먹던 스테로이드를 끊을 수 있었다. 2주에 한 번 들르던 류마티스내과 진료를 지금은 6개월에 한 번꼴로 받는다. 고위험 산모였음에도 순조롭게 자연분만을 했고, 출산 후에 오히려 전보다 건강해졌다. 물론 애초에 질병이 없던 사람보다는 아니겠지만, 스스로 몸 관리를 잘했음에 뿌듯함을 느낀다. 루푸스 환자인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데는 8체질 식단을 참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믿으면서.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지만, 한 달 전부터는 주말마다 체질침 치료도 받고 있다. 다시 한의원에 발걸음하게 된 것은 엄마의 결단 덕분이다. 그간 그토록 8체질을 권해도 한의원을 찾지 않더니, 몸이 허해지고 탈모가 심해진 탓인지 드디어 딸의 설득에 못 이기듯 따라나선 거다. 처음 8체질 한의원에 가면 생활 습관이나 음식 알레르기, 그 외 특이 사항에 대한 문진을 하고, 진료실에서 건강상 고민을 물어본 후 맥진을 받아 체질을 가늠받는다. 체질에 따라 고유한 맥의 모양이 있는데, 이는 숙련된 의사가 진맥을 통해 확인해야 하고,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1~3회의 맥진이 필요하다. 그 후 체질침을 맞고, 1회 복용량의 체질한약을 받게 된다. 이렇게 특정 체질침을 맞고 한약을 먹은 후 24시간의 컨디션도 체질을 확정하는 근거 자료가 된다.
8체질 한의원은 가족이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 체질은 유전되기에 가족의 체질을 알면 더 정확한 체질 진단을 받을 수 있어서다. 엄마와 내 체질은 같았다. 이를 알고 나니, 내 아이의 체질도 궁금했다. 이왕이면 어릴 때부터 몸에 이로운 음식 위주로 섭취하면 더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렇게 삼대 모녀가 8체질 한의원을 찾았다. 아이는 아직 자기 몸 상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진맥과 체형 식습관 등을 토대로 체질진단을 하는데, 맥의 모양이 작아 정교한 맥진이 어렵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부모의 체질을 모두 확인하는 것이 방법! 하지만 남편이 난관이었다. 8체질 한의원행을 진작에 권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실랑이를 벌였기에. ‘체질에 맞는 음식을 아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나의 말에 8체질을 ‘과학적 근거 없는 사주 같은 것 아니냐’며 반박하고는 했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권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딱 3번만 매주 토요일 함께 8체질 한의원에 가자는 내 제안이 먹힌 것. 남편의 진맥은 매우 명확해서 단번에 토양체질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아이는 나와 같은 금음체질로 나왔고, 그 후로 세 가족이 매주 함께 한의원을 다니고 있다. 사실 남편이 이렇게 태세 전환한 이유는 고질적인 아토피피부염 문제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치료지만, 피부는 음식과 관련이 커 8체질로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는 하지원 원장의 담담한 대답에 마음이 동한 것. 두 번째 진료에서 그간 수많은 피부과에서 정확한 진단도 치료도 못 받고 연고만 바르고 있다고 하소연까지 한 남편은 대뜸 “한약도 있나요?” 묻더니 2개월 치 약을 먹겠다고 했다. 체질한약은 나도 지어 먹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8체질 식단으로 효과를 본 후 종종 지인들에게 권해왔다. 자꾸 소화가 안 된다는 선배, 월경을 1년에 고작 1번 정도밖에 안 한다는 동생, 5일을 굶어도 1kg도 안 빠진다는 후배에게 말이다. 하지만 절실하지 않은 이들은 8체질을 그저 특이한 누군가의 믿음 정도라 여기는 듯해 안타까웠다. 몸이 약해졌을 당시 절실하게 느꼈다. 우리 몸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걸. 알레르기 반응도 건강할 때는 나타나지 않지만, 약해졌을 때는 맞지 않는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매일 먹는 음식을 내 몸에 이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질 수 있다. 완벽할 필요도 없다. “음식은 영양학적인 면과 체질의학적인 면을 모두 살펴야 하기에 극단적 체질식으로 영양 손실을 입는다면 그것 또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원 원장의 설명이다.
특히 고른 영양소 섭취가 중요한 아이들은 소화기와 피부 질환에 문제가 있지 않으면 다소 느슨한 체질식도 괜찮다고. 두 달째, 일주일에 두 번 침치료를 꾸준히 받은 엄마는 벌써 몸 상태가 달라졌다고 한다. 잠도 푹 자고, 여기저기 결리는 증상도 줄었다는 거다. 탈모 치료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희망을 갖고 앞으로도 열심히 8체질 치료를 받겠다고 하신다. 또, 자주 감기에 걸려 항생제를 달고 살던 딸아이도 꾸준한 침치료 덕인지 감기에 걸려도 가볍게 걸리거나 심해지지 않아 소아과행을 멈췄다. 아직 효과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남편도 아토피피부염을 위한 체질한약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고 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 인삼만 먹으면 머리가 아픈 사람, 날 때부터 긴장을 잘하는 사람 등 개개인의 경향성은 다양합니다. 그런 차이점에 기준을 두고 체계화한 것이 체질의학이죠. 이론적 바탕 위에 임상적 경험과 검증이 쌓여서 이루어진 의학이라 원래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건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비주류 의학이라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데, 오해받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8체질을 의심하는 이들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하지원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8체질은 한번 알아두면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반려의학이다. 8체질을 알고 산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살뜰히 보살피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되는 거다. 이게 바로 요즘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웰니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