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트로피컬 룩의 제철, 여름이다!
야자수 나뭇잎 사이로 햇살 한줌이 새어 들어온다. 레몬 스쿼시의 톡 쏘는 상큼함이 입안을 맴돈다. 알록달록 피어난 열대꽃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남태평양의 섬 어딘가에서의 달콤한 휴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이국적인 트로피컬 룩의 제철, 여름이다!
봉오리를 활짝 피운 열대꽃과 과즙을 듬뿍 머금은 열대 과일 모티프의 프린트는 트로피컬 룩의 흥취를 돋운다. 회화적인 프린트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그래픽적인 프린트는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태양을 향해 쭉쭉 뻗은 야자수와 노랗고 붉게 제 색깔을 뽐내는 꽃들, 파인애플, 파파야, 바나나의 열대 과일 등이 그대로 녹아 있는 트로피컬 룩은 열대 지방의 민속 의상에서 유래되었다. 열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과 과일이 프린트로 즐겨 사용되고, 더위를 고려해 얇고 가벼운 천을 평직으로 직조한다. 또 허리에 자연스럽게 두르거나 어깨에서 천을 한번 묶는 등 최소한의 봉제가 만들어내는 편안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이런 열대 지방의 민속 의상은 이방인이 보기엔 더없이 이국적이다. 특히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 되면 남국의 정취가 깃든 트로피컬 룩은 진가를 발휘한다. 설령 남국의 휴양지에 발을 딛지 못했더라도 보는 것 혹은 입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곳에 가 있는 듯한 이국적인 향취를 느낄 수 있다.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원주민이‘ 알로하’를 외치고,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의 그림에서 걸어나온 듯한 여인이 하얀 티아래꽃을 꽂고 춤을 추고, 삼바 팬츠를 입은 카리브해 청년이 웃음으로 반겨주는 황홀한 어딘가! 그 설레는 상상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트로피컬 룩이 있어 이 뜨거운 여름이 더욱 반갑다.
트로피컬 룩은 봄, 여름 시즌의 단골손님이지만 매 시즌 조금씩 다른 매력으로 등장한다. 때로는 하와이 원주민이 패션쇼 런웨이 위를 걷고 있는 듯 민속적인 색채가 지나치게 짙어질 때도 있고, 때로는 남국의 이국적인 정취만 살짝 빌려올 때도 있다. 전자는 휴양지에서는 모르겠지만 도심에서 입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고, 후자는 일상에서의 활용도는 높지만 열대 지방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다소 밋밋할 수 있다. 다행인 건, 이번 시즌 트로피컬 룩은 민속적인 색채와 현대적인 실루엣, 이 두 가지가 고루 섞여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마치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하와이언 펀치한 잔과 같은 조화랄까. 은은한 과일향과 톡 쏘는 알코올, 시원한 얼음, 예쁜 살구빛이 감도는 칵테일처럼 이번 시즌 트로피컬 룩은 무더운 여름철 청량제로 제격이다.
더 맛있는 트로피컬 룩을 완성을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의 레시피를 곁들이면 좋다. 첫째, 제아무리 열대식물을 프린트로 옮겨왔다고 해도 무채색의 컬러 팔레트를 더하면 트로피컬 특유의 생기 넘치는 분위기는 기대할 수 없다. 트로피컬 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밝고 대담한 색채! 시큼한 레몬향을 폴폴 풍기는 레몬색부터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청명한 푸른색, 강렬한 태양을 닮은 붉은색과 오렌지색, 꿀벌이 날아들 것만 같은 꽃분홍색과 보라색, 야자수를 연상시키는 초록색과 연두색 등 보는 것만으로도 남국의 뜨거움이 전해지는 색상은 트로피컬 룩의 감성지수를 한껏 드높인다. 둘째는 관상식물이라 불릴 만큼 봉오리를 활짝 피운 열대꽃과 과즙을 듬뿍 머금은 열대 과일에서 모티프를 따온 맛있는 프린트들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회화적인 프린트는 여성스럽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그려낸 그래픽적인 프린트는 세련된 분위기를 낸다. 이때 잔잔한 무늬보다는 큼직하고 선명한 무늬가 훨씬 더 이국적이다.
마지막 요소는 시폰이나 실크처럼 입었을 때 몸을 자연스럽게 휘감는 하늘거리는 소재다. 몸을 따라 흐르는 자연스러운 실루엣에 어깨나 가슴 라인, 다리 라인 등 살갗이 슬쩍 드러나는 은근한 노출을 곁들이고, 허리를 강조하면 더없이 매력적인 여름 트로피컬 룩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시즌 트로피컬 룩을 전면에 내놓은 쇼는 디올이었다. 모델의 워킹에 따라 요염하게 춤추는 시폰과 실크 등의 시스루 소재 위로는 상큼한 레몬색과 하늘색, 오렌지색이 드리워 있고, 알록달록한 열대의 꽃이 만개해 있다. 허리선을 높인 하이웨이스트 실루엣을 고집한 덕분에 한결 날씬해 보이고 다리도 길어 보인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민속 의상인 무무드레스에서 영감 받은 디올의 다채로운 트로피컬 무드의 의상들은 목에 건 꽃목걸이와 색색의 슈즈로 화려함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디올이 농염한 트로피컬 룩을 선보였다면 프라다는 좀 더 고급스럽고 성숙한 트로피컬 룩으로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바로크 무드의 실루엣에 열대의 식물과 동물을 형상화한 기하학적인 무늬, 그리고 샛노란 바나나 무늬를 곁들인 프라다표 트로피컬 룩은 프린트의 믹스앤매치로 새로운 멋을 만들어냈다. 특히 거의 모든 컬렉션에 더해진 경쾌한 줄무늬와 밑단에 주름을 넣은 플라멩코 스커트는 트로피컬 룩 특유의 생기와 율동감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다. 셔츠 형태의 상의, 엉덩이 라인은 딱 붙고 밑단은 펄럭이는 플라멩코 스커트, 그리고 옥스퍼드 슈즈라는 예상 밖의 조화는 트로피컬 룩을 도심으로 옮겨올 만한 세련된 스타일링 팁도 제안한다.
간결한 실루엣의 튜닉 원피스에 먹음직스러운 오렌지와 레몬 프린트를 큼직하게 그려 넣은 스텔라 맥카트니의 컬렉션도 트로피컬 룩을 한층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장식을 배제한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에 헤어와 메이크업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하고, 오로지 열대 과일 프린트로만 포인트를 살린 의상들은 생기 넘치는 색상과 프린트가 발산하는 밝고 건강한 힘이 얼마나 센지 잘 보여준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찾은 가장 입고 싶은 트로피컬 룩의 주인공은 저스트 카발리 쇼의 야자수 무늬 점프슈트였다. 초록빛 잎사귀가 큼직큼직하게 그려진 프린트에 몸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실크 소재의 점프슈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열대 정원의 푸르름과 시원함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트로피컬 룩의 대안은 모스키노 칩앤시크 컬렉션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라는 노래의 한 구절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바다 속 모티프 액세서리와 나뭇잎, 꽃, 과일 등 흥겨운 프린트들, 카프리 팬츠와 플레어스커트, 그리고 생기 넘치는 진분홍빛 입술까지. 소녀가 맞은 여름은 더없이 활기차다.
반면 랑방 컬렉션에 등장한 트로피컬 드레스는 우아한 여인의 향기를 진하게 드러낸다. 광택이 살짝 도는 실크 소재에 톤 다운된 색상의 야자수 나뭇잎을 그려 넣은 이 드레스는 타히티섬의 여인들의 민속 의상인 파레오(Pareo)를 쏙 빼닮았는데, 마치 한 장의 천을 몸에 두른 후 목에서 한 번 묶은 듯한 실루엣이 무척 이국적이다.
트로피컬 룩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짐을 싸서 남태평양 혹은 카리브해, 또는 동남아시아 등 뜨거운 남국으로의 행에 몸을 싣고 싶어진다. 강렬한 색상과 프린트와 대비되는 시원한 밀짚 소재의 신발과 모자, 가방 등을 함께 매치하면 이국적인 정취는 더욱 깊어지며 잘 빠진 킬힐의 스트랩 슈즈를 신고, 클러치백을 가볍게 손에 쥐면 한여름 밤의 파티 룩으로도 금세 변신시킬 수 있다. 뜨거운 여름의 매력적인 파트너, 트로피컬 룩이 있어 여름은 더욱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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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박선영
- 포토그래퍼
- KIM WESTON ARNOLD, 안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