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실루엣 이야기
몬드리안 룩, 모즈 룩, 옵아트 룩 등 1960년대를 풍미한 스타일들의 교집합은 간결한 실루엣이다. 담백한 H 라인과 짤막한 A 라인, 둥그스름한 코쿤 라인, 사다리꼴의 트라페즈 라인까지. 이번 시즌 트렌드를 이끄는 60년대 스타일의 열쇠는 실루엣이 쥐고 있다.
새로운 전환점이나 출발점이 된 순간은 언제 돌이켜봐도 자극적이고 매력적이다. 20세기 패션을 통틀어봤을 때 1960년대는 바로 그런 순간에 속한다. 여자의 몸을 속박하던 패션은 1960년대에 들어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잘록한 허리는 느슨하게 풀렸고, 다리를 감싸던 치렁치렁한 길이는 종아리 위로 깡충 올라왔다. 과거에 비해 한층 간소화된 60년대 패션에는 혁신, 모던, 미래, 젊음이라는 매력적인 수식어가 붙었다. 그리고 그 성과들은 현재까지도 20세기 패션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현재의 디자이너들이 그 역사적인 순간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에서 수많은 영감을 얻는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움이 가득했던 60년대의 패션은 계속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깊은 우물이나 다름없으니까. 특히나 이번 시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60년대 스타일이라는 우물가로 많은 디자이너가 모여들었다.
60년대 스타일에 주목한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가장 먼저 그 시절의 디자이너들과 조우했다. 디자이너의 파워가 자리 잡기 시작한 60년대는 디자인이 곧 트렌드가 되는 시절이었다. 입생로랑의 몬드리안 룩은 이를 잘 설명한다. 1965년, 입생로랑은 화가 몬드리안의 추상화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그림을 옮겨놓은 실크 드레스 하나를 선보였다. 선과 면을 분할한 몬드리안 패턴은 일자로 똑 떨어지는 원통형 실루엣의 드레스 위에 올려졌는데, 발표 즉시 값싼 인조 섬유로 모방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선보인 옵아트 패턴의 드레스와 남성 슈트를 본떠 만든 스모킹 슈트도 6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직선으로 떨어지는 코트와 날렵한 팬츠로 테일러링의 귀재로 주목받았던 앙드레 쿠레주 역시 쿠레주 룩이라는 영원불멸의 스타일을 남겼다. 플라스틱과 메탈 조각을 연결해 의상을 만든 파코 라반은 획기적인 시도로 미래 패션을 선도하는 디자이너로 칭송받았고, 미식 축구복에서 영감 받아 제작한 직선의 저지 소재 미니드레스로 스타 디자이너가 된 메리 퀀트는 그녀 자체가 걸어 다니는 트렌드 선구자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H라인이나 A라인, 트라페즈 라인, 원통 라인 등 담백하고 간결한 실루엣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동그란 단추를 달거나 예술적인 프린트를 입히거나 형형색색의 컬러를 더하는 방식으로 심심하지만은 않은, 젊고 세련된 60년대만의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의상을 더욱 근사하게 기록한 것은 패션 아이콘들이었다. 통이 좁은 날렵한 슈트를입은 비틀스는 모즈 룩을 대중화하는 데 큰 영향력을 끼쳤고, A라인으로 살짝 퍼지는 베이비돌 실루엣의 미니드레스를 입은 트위기는 10대들의 패션을 이끌며 60년대를 영(young) 패션으로 물들였다. 단추가 달린 7부 소매의 H라인 재킷과 사다리꼴 모양의 드레스의 앙상블 룩을 즐겨 입었던 재클린 케네디는 60년대 실루엣의 하이 패션 버전을 책임졌다.
60년대를 이끈 디자이너와 디자인, 패션 아이콘은 이번 시즌 런웨이 곳곳에서 되살아났다. 60년대 스타일을 차용한 대표 컬렉션은 프라다 쇼였는데, 미우치아 프라다는 입생로랑의 몬드리안 패턴과 앙드레 쿠레주의 버튼업 코트, 파코 라반의 메탈 장식과 로웨이스트 실루엣까지, 매력적인 요소들만 콕콕 짚어내 절묘하게 조합했다. 재키 룩을 떠올리게 했던 보테가 베네타의 컬렉션은 보다 성숙한 60년대 스타일을 배우기 좋다. 니트 스커트 슈트와 트라페즈 실루엣의 코트, 모델의 부풀린 헤어까지 60년대 풍 우아함을 만날 수 있다. 마르니는 직선으로 떨어지는 실루엣의 코트와 팬츠, 원피스 위로 60년대의 대표 미술사조인 옵아트 패턴을 한껏 채색했다. 가죽 소재로 변신한 쿠레주 룩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코트들을 내놓은 로에베는 7부 소매로 경쾌함을 유지했다. 질 샌더는 직선, 원통, 사다리꼴 모양의 의상에 미니멀리즘 무드와 선명한 원색을 곁들여 60년대 실루엣을 한층 현대적으로 변신시켰다. 일자로 떨어지는 납작한 부츠에 노랑, 초록, 파랑 등의 미니드레스와 코트를 통일되게 선보인 블루마린 쇼는 모즈 룩의 부활을 알려왔다. 아퀼라노 리몬디의 의상들은 파코 라반의 시퀸 장식을 떠올리게 했고, 필로소피의 파스텔 톤 베이비돌 실루엣의 코트를 입은 모델들은 그 시절의 트위기를 추억하게 했다.
아직도 60년대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목마르다면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도 있다. 그 시절 영국을 대표하는 모델이 트위기였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모델은 에디 세즈윅이었다. 앤디 워홀의 뮤즈였던 그녀의 삶을 조명한 영화 〈팩토리걸〉에서는 에디 세즈윅이 즐겨 입었던 기하학적인 무늬의 미니드레스와 스모키 메이크업 등 60년대 패션과 뷰티, 그리고 예술까지 고루 만날 수 있다. 르네 젤위거 주연의 〈다운 위드 러브〉는 60년대 풍 더블 브레스트 스커트 슈트와 모자 패션을 선보이는데, 60년대 슈퍼모델이었던 진 슈림턴의 의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바비〉는 정수리를 부풀린 60년대 헤어스타일과 쿠레주 룩의 다채로운 변신을 감상할 수 있다. 60년대에 개봉한 고전 영화는 그 시절의 패션을 더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카트린 드뇌브의 우아함이 녹아든 <세브린느>와 세실 커트 헤어를 한 미아 패로우를 만날 수 있는 〈Rosemary’s Baby〉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간결하고 세련된 60년대 스타일을 펼쳐 보인다. 이렇듯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런웨이 위에서도, 영화의 캐릭터 속에서도 건재힘을 자랑하는 60년대 패션은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혁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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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박선영
- 포토그래퍼
- Photo / KIM WESTON ARNOLD, 안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