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GAMBIT / ‘나는 솔로’ 남규홍 PD
<나는 솔로>를 연출한 남규홍 PD가 짠 판은 이기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상이 깊이 공감할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는 솔로>가 2024 대한민국 퍼스트 브랜드 대상 프로그램(연애 예능)상을 수상했어요. 소감이 어때요?
사실 저는 상에 연연하지 않아요.(웃음) 어떤 상이든 저마다 가치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 상은 소비자 지향적이면서도 광고 지향적인 프로그램, 냉정하게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나는 솔로>가 받는다는 건 의미가 있는 거죠. 중심에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이거 받아도 되겠구나.
벌써 18기를 떠나 보내고 19기를 새롭게 맞이할 때가 됐죠. 시청자가 연애 예능에 오래도록 열광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연애’는 꾸준히 통하는 장르예요. 어떤 프로그램이든 좋아할 요소가 하나라도 있으면, 너도나도 보고 입소문을 타면서 결국에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트로트 프로그램도 그렇잖아요. <나는 솔로>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워요. 그렇지만 유행이라는 건 계속 돌고 도니까 이 인기도 언젠가는 가라앉지 않을까요?
10년 넘게 ‘남녀의 사랑’을 고집하고 있잖아요.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제가 잘하는 걸 상품성 있게 만들어 시장에 통하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장르가 제일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짝>에 대한 아쉬움도 한몫했고요. 그때의 동료들과 여전히 함께하고 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는 게 의미가 커요. 과거에 끊어진 것을 다시 이은 거니까. 열심히 만들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고요.
시장이 원하는 게 뭔지 판단하는 남규홍만의 기준이 있어요?
저는 디테일한 사람이 아니에요. 분석적이거나 학구적이지도 않고요. 계획도 안 세워요. 그냥 믿는 거예요. 제 느낌을요. 물론 최선을 다해요. 완성도 높게 잘 만들면 사람들은 외면하지 않거든요.
콘텐츠의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도 그 느낌으로 끄집어내나요?
세상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느낌이 와요. 누군가 엄청난 추위를 느낄 때 따뜻한 옷이나 음식을 주면 좋아하잖아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틈을 자꾸 보려고 해요. 제가 세상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건 아니지만 잘 캐치하려고 하죠. 과거에 경험한 것에서 꺼내 쓰기도 하고요. 20년 전에 읽은 책이나 스쳐 지나가면서 본 사람 같은 거요. 끌어다 쓰는 거죠, 에너지 쓰듯이.
<나는 솔로>를 만들 때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갈증을 느낀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본능과 본성에 충실해요. 그런 본능을 채우기 위해 뭔가를 필요로 하고요. 사랑도 그중 하나죠. 가장 보편적인 주제를 특별하게 그려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느낄 수 있게 하자는 마음이었어요. 보편적이니까 스스로든 남에게든 대입하고 판단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반영하도록 사실적으로 만들어야겠다.
사실적인 표현을 끌어내는 방법은 뭐예요?
크게 말하면 세계관을 다시 만드는 거예요. 우리만의 시스템을요. ‘솔로 나라’라는 동일한 세계 안에서 사람과 주제만 바뀌는 거예요. 그냥 프로그램 구성을 하는 거랑은 달라요. 그 세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같은 규칙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거든요. 우리 사회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요. 그랬을 때 사람들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나더라고요.
그렇게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이 완성됐군요.
진정성은 <나는 솔로>에서 설정한 최상위의 지향점이에요. 캐스팅, 촬영, 편집 모든 과정에서 진정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도려내요. 아무리 재미있다고 한들 그걸 욕심내면 우리가 정한 틀이 무너지거든요. 반대로 아무리 진정성이 느껴지더라도 재미가 없다면 굳이 넣지 않아요. 방송은 늘 입체적이고 종합적이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는 않잖아요. 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죠.(웃음)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로 살아남으려면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할까요?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지지 않기. 사람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프로그램의 중심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해요. 내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관심이 없으면 상대방도 없거든요.
그런 콘텐츠가 곧 지속 가능한 콘텐츠가 된다고 보나요?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렇겠죠. 콘텐츠의 용도나 방향은 한 큐에 정리하기 힘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다 필요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다 불필요하니까요. 모호해요. 그럼에도 어떤 콘텐츠건 잘 만들면 지속 가능해요.
잘 만든 <나는 솔로>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처럼요?
제작 초기에 구상한 모습에서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물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작은 아이디어가 긴밀하게 바뀌기는 하죠. 그건 계속 일어나는 일이에요. 근데 근본적인 건 다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잘못 시도했다고 후회하는 것도 없고요.
10년 전, 블로그에 쓴 말이 생각나네요. “방송 날을 받고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방송은 나간다. 언제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하고 나면 후회는 없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방송 날을 잡으면 품질 차이는 있어도 그냥 나가요. 그리고 그게 가끔은 그럴듯해 보여요. 늘 멋지게 꾸민 사람한테만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거든요. 세수도 안 한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로 앉아 있어도 눈길이 갈 때가 있잖아요. 너무 정교하면 인위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이러나저러나 최선을 다했고 만족하면 되죠. 포장지만 예쁘면 뭐 합니까?
오늘은 예쁜 포장지를 입은 것 같았어요. 포즈를 너무 잘 취하던데요.
하하. 저는 제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요.
누군가 자신을 카메라로 24시간 촬영한다면 어떤 행동이 가장 눈에 띌 것 같아요?
계속 일하는 거죠. 먹고 자는 것 빼고는 일해요. 요즘은 운동을 안 해서 그런 지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저 좀 불쌍한 인간이네요.
일에 완전히 빠졌군요. 일을 안 할 때는 뭘 해요?
가족이랑 외식도 하고, 동네 뒷산 산책도 하고요. 가끔 화제가 됐다 싶은 콘텐츠가 있으면 찾아 봐요.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선산>이 1위를 했길래 조금 봤어요.
사람 구경도 해요?
아뇨. 땅만 보고 다녀요. 가끔 산책하는 강아지 쳐다보고요. 일부러 사람들을 쳐다보고 분석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의외네요. 한 인터뷰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잖아요.
왜 그랬을까요? 별 의미도 없는데. 젊어서 그랬나 봐요.(웃음)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하는 거예요. 거창한 의미를 두면 무거워져요. 사람 중심의 프로그램이 훨씬 의미 있고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람 중심으로 관심을 갖고 보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 속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 함께 고민할 수 있거든요. 세상은 그냥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바라보면 되는 거 같아요.
MBTI가 궁금해졌어요.
안 해봤어요. 내향적이고 비현실적이고 감성적이고 극도로 무계획적인 사람. 이 정도면 됐지, 검사 꼭 필요합니까?
하하. 2024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3월이에요. 올 한 해 새롭게 이루고 싶은 건 없어요?
새로운 콘텐츠를 한두 개라도 만들면 좋겠어요. 함께하는 제작진이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면 하거든요.
그건 너무 대표의 마인드셋인데요.
그러게요. 나 진짜 일 생각만 하나 봐요. 개인적인 목표는 안 세웠는데…. 이걸로 할게요. ‘잘 먹고 잘 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