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하여
부탄은 수력발전을 기반으로 하는 탄소중립 국가로, 지속가능성 지수에서 항상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친환경 여행 버킷 리스트가 되고 있는, 자그마하고 신비한 나라, 부탄 여행하기.
비행기가 구름으로 뒤덮인 히말라야산맥의 뾰족한 봉우리 사이를 지나 파로 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하기 전까지 심장이 여러 번 멎는 듯했다. 녹색 지붕의 저층 목조건물로 둘러싸인 축구장 몇 개 크기에 불과한 짧은 활주로를 감당할 파일럿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 아담한 도착 라운지로 들어서면서 비행장의 유일한 탑승객이던 우리의 눈은 점점 커졌고 입은 벌어졌다. 수작업한 목가적 풍경의 벽화가 우리를 맞이했고, 면세점이 있을 법한 곳에는 독립 서점과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니시네요.” 출입국 도장이 가득한 내 여권을 펼쳐 본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콕에서 경유할 때 “여권 사증란에 자리가 별로 없네요. 새로 발급받으세요”라고 한 소리 들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해발 2200m에 위치한 부탄의 유일한 국제공항부터 이미 신선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여행 가이드 펜초(Pencho)와 운전사 켄초(Kencho)의 환대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와 미리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주위의 한산한 모습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부탄에 관광객이 얼마나 있는지를 물었다. “아마 200명에서 300명 정도일 거예요. 성수기라서요.” 펜초가 대답했다. 성수기 여행자가 300명이라니! 부탄을 방문한 여행객은 지속가능한 발전 비용과 환경 부담금 개념의 체류비로 하루 200달러 이상을 지불한다.
부탄(Bhutan)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이라는 뜻이다. 부탄인 스스로는 용의 나라라는 뜻이 담긴 ‘뚝위’라고 한다. 부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1907년에 왕조를 세운 부탄은 수력발전을 기반으로 하는 탄소중립 국가로 지속가능성 지수에서 항상 상위를 차지한다. 2004년부터 세계 최초로 담배와 담배 제품 판매를 전면 금지한 금연 국가다. 바로 이 점이 히말라야산맥만큼 높은 기대를 품고 부탄을 방문한 이유다.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와 함께 주목받는 그들의 관광 전략인 ‘적은 관광객’ ‘높은 부가가치’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싶었다. 특히 현대 불교의 생활상과 경제적 메가 허브를 지향하는 남부 도시 겔레푸(Gelephu)의 마인드풀니스 시티(Mindfulness City) 같은 야심 찬 조성 계획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주로 자유여행을 즐겨온 내게 부티크 여행사 ’마이부탄(MyBhutan)’에 일정의 모든 것을 맡기는 건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정직하고 진정성 있게 부탄을 체험하는 여정 속에서 지역사회와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기꺼이 여비를 지출할 수 있었다. 현지 장인의 디자인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고, 현지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부탄인 소유의 지와 링 헤리티지(Zhiwa Ling Heritage) 호텔에서 첫날을 보낸 것처럼 말이다.
부탄의 호텔 산업은 늘 정부 당국의 강한 통제를 받았다. 아만(Aman)은 부탄에 최초로 들어선 럭셔리 리조트로, 초반 안목 있는 여행객을 사로잡은 최초의 5성급 호텔 브랜드가 되었다. 이후 파로(Paro), 팀푸(Thimphu), 푸나카(Punakha), 강테이(Gangtey)와 붐탕(Bumthang)에 럭셔리 숙박 시설을 선보이며 호텔 산업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모든 로지는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최근에는 지속가능성과 웰빙을 선도하는 식스 센스(Six Senses)가 들어섰고, 앤비욘드(andBeyond)는 부탄에 아프리카의 사파리 여행 방식을 도입해 야생 동식물도 가까이서 만날 수 있게 됐다. 한편, 얼마 전부터 부탄의 가정식 환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탄의 일상 문화를 겪어보는 홈스테이도 늘어났다. 이런 홈스테이 중 하나인 멘드렐강 헤리티지 홈(The Mendrelgang Heritage Home)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에 머물며 한 가족의 실제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이부탄이 마련한 여정에 따라 서쪽에 위치한 파로에서 160km(약 100마일) 떨어진 강테이까지 매일 밤 다른 숙소로 이동했다. 가파른 나무 절벽길을 3시간이나 걸어서 17세기 사원 탁상 곰파(Takshang Gompa)에 도착하는 하이킹 코스는 이번 여행 중 가장 힘들었다. 영어권에서 호랑이 둥지(Tiger’s Nest)로 불리는 이곳은 티베트 불교를 믿는 부탄 최고의 불교 성지다. 부탄에 불교를 처음 들여온 파드마삼바바 전설에 따르면, 8세기경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이곳 바위산 동굴에서 명상 수련을 했다고 한다. 탁상 곰파는 1951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고 1998년에 큰 화마를 겪은 뒤 대대적 복원 공사를 통해 현재 모습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부탄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이 장엄한 사원은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인데도 전혀 붐비지 않았다. 하루는 기도 깃발로 장식한 현수교를 건너 도착한 푸나카에서 그곳의 해피니스 팜(Happiness Farm)의 안주인 옴 카르마(Aum Karma)에게 수세기를 이어온 천연 염색과 직조 기술을 배우는 매혹적 체험을 했다. 부탄의 수공예 직물과 전통 의상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른데, 대부분의 남성은 우아한 무릎 높이의 소매가 넓은 고(Gho)를, 여성은 수작업한 발목 길이의 키라(Kira)를 입는다.
파로에서 팀푸를 지나는 길에 우리는 높이 3100m의 도출라(Dochula) 고개에 잠시 멈춰 경이로운 파노라마 풍경을 감상했다. 이 야크 농장의 지형은 기온 상승과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에서 큰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또 하루는 람페이리(Lampeiri)의 왕립 식물원에서 NGO 단체인 ‘그린 부탄(Green Bhutan)’과 함께 나무를 심으며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어느 저물녘, 우리는 위대한 행복의 성 푸나카 종(Punakha Dzong) 주위를 래프팅을 하며 통과했다. 아버지의 강으로 불리는 포추(Pho Chhu) 강과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 모추(Mo Chhu) 강이 만나는 푸나카 계곡에 어둠이 깔리자 부탄의 명상적 면모가 한층 드러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꿈꾸는 부탄의 참모습이자 진정한 럭셔리 라이프일 것이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 호화로운 장식이나 고급 편의 시설이 아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청정한 자연과 현대적 기술로 파괴되지 않은 소박한 시골 생활에 대한 경이로운 경험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생명체 중 인간만이 즐거움을 위해 유일하게 탐험한다. 여행자와 여행지의 지역사회 모두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세계를 탐험할 방안은 무엇일까? 팬데믹 탓에 2년간 봉쇄된 부탄에서는 청년 7명 중 1명이 고임금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 겔레푸 마인드풀니스 시티는 이를 해결하고자 산업, 문화, 영성을 결합해 점진적 성장을 도모하고 외부 세계가 조금씩 스며들 방안을 구상하는 중이다. 부탄의 소중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어쨌든 외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곳만의 문화적 진정성이야말로 ‘용의 땅’에서의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내가 이 마법 같은 산속의 왕국과 사랑에 빠졌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나 마 사 미(Na ma sa me)’. 종카어로 ‘무한히’ 또는 글자 그대로 ‘땅과 하늘 사이’라는 뜻이다.
STAY
아만코라(Amankora)
부탄의 대표 럭셔리 호텔이자 부탄 최초의 리조트이기도 하다. 부탄의 중심과 서쪽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곳곳에 5개의 로지가 있어 각기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모든 로지는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소박하면서도 고요한 명상의 장소로 꼽힌다. 히말라야 식물을 사용한 스파테라피,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과 함께 티베트 동부의 영적 지도자 미낙 린포체가 진행하는 부탄과 불교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지와 링 헤리티지(Zhiwa Ling Heritage)
지역 석재와 정교하게 채색한 목재로 지은 본관 건물에 위치한 투 베드룸 로열 레이븐 스위트룸은 장수, 행복, 부의 여신을 기리는 복합적 장식의 실내 성소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상와(Sangwa)
럭셔리 텐트 캠프로 나만을 위한 비밀 캠프에서 양궁, 다트 같은 전통 스포츠를 체험하고, 통나무 장작불 옆에서 민속 공연을 관람하거나 부탄의 위스키를 마실 수 있다.
식스 센스 부탄(Six Senses Bhutan)
식스 센스는 부탄에 아름다운 숙소 5곳을 운영하지만, 겨울 추위를 피해 티베트에서 날아온 검은목두루미의 생생한 소리를 들으며 포브지카 계곡의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맞이한 강테이에서의 아침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부탄 스피릿 생추어리(Bhutan Spirit Sanctuary)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5성급 웰니스 호텔로, 부탄의 전통 의학자가 처방하는 허브 지압부터 티베트의 쿠니 마사지도 제공된다.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수영장도 놓치지 말자.
앤비욘드 푸나카 리버 로지(andBeyond Punakha River Lodge)
아늑하고 편안한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로,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하거나, 가이드가 안내하는 트레킹과 하이킹, 래프팅과 카약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