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AKE ME HAPPY / 정려원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는 배우 정려원에게 긍정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행운의 주얼리, 쇼파드와의 만남.
드디어 <졸업> 첫 회가 전파를 탔죠. 첫 방송을 지켜보았나요?
집에서 혼자요. 제가 MBTI J형이라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편인데, 그래서 혼자 보는 걸 좋아해요. 별명이 ‘칼 모니터’예요. 저희 드라마는 뭐랄까, 인스턴트가 아닌 집밥, 그중에서도 뚝배기예요. 서서히 뜨거워지거든요. 요샌 워낙 속도감이 빠른 드라마가 많아서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요즘은 갈등을 참지 못한다고들 하죠. 그래서 ‘사이다 서사’라는 게 인기예요.
저희는 대신 선물같이 오는 희열이 있어요. 멜로가 늦게 터지거든요. 저도 멜로가 맞나 싶다가, 뒤늦게 얼굴을 감싸면서 “어떻게 하면 좋아! 미쳤나 봐!” 한 거 같아요.
“하하, 미쳤나 봐!”의 순간이 언제 올지 지켜봐야겠네요. 선구안이 좋아요.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뜨겁게 사랑받은 작품도 있고, <김씨 표류기> <검사내전>처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좋은 작품도 있죠.
<김씨표류기>도 그렇고 <검사내전>도 대본을 받고, ‘이런 운이 나한테 또 한 번 들어온다고!’ 했을 정도로 제게 특별하게 남은 두 작품이에요. <졸업>도 결국 내가 하게 되겠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5년 전의 저였으면 못했을 것 같은데 이제 힘을 주고 빼는 법을 좀 알게 될 때 만나게 된 거죠.
첫 회는 서혜진을 굉장히 공들여서 보여주죠. 삶이 명쾌했던 서혜진이 흔들리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타일링까지 고민한 게 느껴졌어요.
빙고! 16분까지 랩을 하더라고요, 제가.(웃음) 그 많은 대사를 다 한 번에 찍거든요. 원래 박스 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 박스가 어그러지죠. 모든 게 공감이 갔어요. ‘내가 서혜진이야’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의상도 이번에야말로 제 거를 가장 많이 섞었고요. 원래 대치동 선생님들은 더 화려하게 입지만, 저희는 옷을 클래식하게 입으면서 대신 주얼리, 시계를 화려하게 가자고 했죠. 내면에서는 쓰나미가 불어닥치더라도 겉모습은 항상 의연하고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그게 거칠지 않은, 단단한 모습이 잘 보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스승이냐 강사냐. 드라마에서 이 질문도 중요해요. “왜 스승처럼 굴려고 하지?”라는 대사처럼 서혜진에게는 또다른 딜레마가 되겠죠..
맞아요. 강사 선생님들도 누군가에게는 스승으로 남고 싶어 하세요. 하지만 한정된 시간의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스승이 될 수는 없어요. 혜진이 준호를 가르쳤을 때는 일대일 과외였고, 이 친구에게는 스승이 된 거예요.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설렌다는 평이 많았죠. 동료 배우로 위하준 씨는 어땠어요? 멜로는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너무너무 괜찮은 친구예요. 대본에서 준호는 되게 ‘폭스남’이에요. 그런데 그 친구는 과묵하고 진중한 편이다 보니 “쌤, 뭐 하세요?” 해도 조금 달라요. 둘 다 무뚝뚝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 톤을 대본보다 좀 더 라이트하게 바꿨고 감독님도 이대로 가자고 하셨죠. 이 친구 때문에 더 매력적인 혜진이를 찾은 것 같아요. 사실 저한테는 너무 MZ 같은 친구여서.(웃음) 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거든요.
처음 만난 사람과 오늘부터 설렘을 연기해야 하다니.
제가 대선배일 텐데 어떻게 다가가야 하지? 이렇게 하면 너무 선 넘는다고 생각하려나? 저도 어떻게 할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물에다 물고기 풀어놓듯이 하고선, 둘이서 알아서 하라니 결국은 친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새로 준비하는 소설이 학원을 다루는데 영문으로 ‘Hakwon’으로 쓰고 있다죠.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학원에 대한 추억이 없을 수 없는데, 려원 씨는 어땠어요? 호주에도 학원이 있었나요?
호주에서 과외는 한 번 해봤지만 학원은 너무 생소했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학원과 입시에 대해 처음 알게 됐어요. 이렇게까지 치열할 줄 몰랐거든요.
경쟁과 성장에 대한 압박은 학원 강사의 몫만은 아니죠.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해요.
“대치동에서 한번 떨어져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온다”는 대사처럼 연예계도 다르지 않죠. 한번 이탈하면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저에게도 있어요. 제 생각에는 같은 문화와 연령대라면 비슷한 무게를 공유할 것 같아요. 제 나이대와 비슷한, 일하는 여성들은 저와 같은 고민을 할 거고요. 아까 서혜진에 대해서 명쾌하다고 하셨는데, 그 단어가 너무 좋았어요. 요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거라서. 예전에는 뭉뚱그려서,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점점 경계가 또렷해지고 제 삶이 명쾌해지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면 회색존에 많이 담아두면 안 돼요.(웃음)
다시 말해 흔들림 없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겠고요. 제작 발표회에서 <졸업>을 두고 ‘운명적’ ’인생작’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예요?
대본을 딱 1년 전 오늘 5월 12일에 받았어요. 화보를 촬영하는 중이었는데, ‘멜로에 안판석 감독님?’ 바로 하겠다고 했죠. 쓰나미 같은 멜로를 생각했는데, 가랑비 같은 멜로였어요. 대사도 법정물보다 많은, 말 그대로 ‛끝판왕!’ 나는 멜로를 해도 이런 멜로가 오는구나.(웃음) 작품을 할 때는 다 같은 에너지로 해요. 그런데 <졸업>은 늘 달리기만 했던 제가 저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준 첫 작품이에요.
지금까지는 스스로에게 다정하지 않았나요?
완벽주의자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더 잘했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하곤 했어요. 모든 드라마는 집 같아요. 완벽한 집이란 없잖아요. 이게 괜찮으면 이게 마음에 안 들죠. 그런데도 어딘가 완벽한 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늘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제게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집 같다는 표현이 좋네요. 단점이 많더라도, 결국은 나의 집이기도 해요.
맞아요! 소개팅, 부동산, 대본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보기 전에 제일 설레요.(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에요. 이번에는 충분했던 거죠. “This is enough!”
극 중에서 혜진은 준호에게 “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죠.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한다면 어때요?
저 역시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동력은 무엇인가요?
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아는 힘. 알 것 같은 거 말고 아는 거. 마흔 살 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선명해졌어요. “과거로 돌아갈래?”라고 하면 저는 안 가요.
그래서인가요? 동시대 여성에게 공감받고 영감을 주는 역할을 많이 해왔죠.
주체적인 여성을 좋아해요. 그런 역할을 자주 했던 이유는, 제가 실제로 진짜 소심했기 때문이에요. 너무 소심하니까 답답한 캐릭터를 하는 게 싫었어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하자’고 했죠. 맨 처음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백여치를 맡았을 때 카타르시스가 컸어요. 법정물도 그렇죠. 평소의 저라면 못하는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연기할 때는 나 자신을 깨버릴 수 있으니까.
소심한 사람이 연예인을 하면 상처받을 일이 많을 것 같은데요?
너무 많았죠. 예전에는 소심함을 단점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제는 그만큼 섬세한 거라고 긍정하고 있어요. 사실 소심해서 예능도 잘 안 나간 거예요.
요즘은 유튜브 콘텐츠도 새로운 예능이죠. 자연스럽게 잘하던 걸요?
‘그럼에도 잘 못한 거 없나?’ 해요. 예능에서 불편해하는 저를 보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이거는 제가 그냥 마인드가 바뀌어야 해요.(웃음) 이제 편하게 나가고 싶어요.
동시대의 ‘패셔니스타’인데 화보는 여전히 재미있는 작업인가요?
항상 재밌고 아직도 신기해요. 옷은 좋아했지만 헤어와 메이크업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예전의 저는 해주는 대로 하고 신경 안 썼거든요. 메이크업과 헤어를 하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를 너무 늦게 안 거 같아요. 지금도 화장을 잘 못해요. 그런데 마흔이 넘으니까 화장하는 게 예의 같고.(웃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만 포기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거든요. 그게 참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거기서 고유의 멋이 만들어지는지도 모르죠. 모두가 ‘정려원 재킷’을 사던 때가 있었는데, 당장 지금 입고 있는 재킷도 정보 올리면 많이 살 거 같은데요?
이건 인스타그램에 빈티지만 파는 분에게 샀어요. 4만5천원인가. 더 이상 안 입게 되는 건 당근마켓도 해요.(웃음)
예전에 스스로를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소심한 사람’으로 칭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어요?
틀이 좀 생긴 단단한 사람.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 것 같아요?
사람은 진화하는 동물이니까. 지금 ‘정려원 2.0’으로 업데이트된 것 같아요. 또 어떻게 업데이트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전 버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온 게 시작이었죠. 이제 서울이 어떤 곳이 되었나요?
24년째죠.(웃음) 이제는 서울이 집이에요. 두고 가기 힘든 집이 됐어요. 되레 호주에 가면 좀 낯설어요. 팬데믹을 거쳐 근 4년 만에 가니 운전할 자신이 없었어요. 원래는 1년 계획으로 정박했다가 떠날 곳이었는데, 이젠 여기가 제 집이죠.
인생이 항상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조차 모르죠.
늘 좋은 곳만 간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인생이 데려간 곳이 제게 유익하긴 했어요. 평생 그렇게 믿으며 가볼 것 같아요. 어디를 가든, 나한테 유익하겠구나.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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