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위한 화이트 드레스

탐스러운 기교와 디테일로 점철된 여름을 위한 화이트 드레스.

화이트 원피스 트렌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임팩트 있는 광고나 이미지가 얼마나 오랜 시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주위 사람에게 ‘화이트 원피스’에 대해 물으니 20대 동생이나 30대 동료, 40대 지인까지 하나같이 이온음료 광고에 등장했던 배우 손예진을 말하니 말이다. 웃자고 시작한 이야기에 무려 20여 년 전에 지중해가 펼쳐진 그리스 산토리니섬을 배경으로 슬리브리스 화이트 원피스를 입고 광고에 출연한 그가 소환됐다. 누군가는 연신 광고의 배경음악을 흥얼거렸다. 특유의 밝고 싱그러운 미소를 무기로 무척 오랜 기간 청순한 분위기를 어필했던 그다(그런데 20대 청춘은 대체 이 광고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지금도 의문?!). 한편, 다른 사람도 똑같은 대답은 아니었어도, 주로 ‘여성스럽다’ ‘휴양지’ ‘클래식’ 등 해당 광고를 설명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유사성을 띠는 대답을 했다.

화이트 원피스가 풍기는 이미지는 여전히 청량하고 깨끗하다. 오죽하면 순수와 순결을 강조하려고 베일과 웨딩드레스도 화이트이건만, 이번 시즌의 화이트 원피스는 위와 같은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그보다 여러 단계를 더 나아가 온갖 기교와 디테일로 점철된다. 화이트 원피스가 이토록 다양한 디테일을 품을 수 있었던 데는 보헤미안 룩이 다시 주목받아서이기도 하다. 탐스러운 러플과 레이스, 아일릿 디테일 등이 때로는 구조적이고 힘있게, 때로는 하늘거리며 로맨틱하게 화이트 원피스에 녹아든 까닭. 끌로에, 이자벨마랑, 가브리엘라 허스트 등이 대표 주자다. 특히 끌로에는 다시 한번 보헤미안 바람을 일으키는 데 선두에 선 브랜드로, 2024 S/S에 이어 F/W까지 쭉 보헤미안 키워드를 이어갈 예정이다.

레디투웨어인지 쿠튀르인지 헷갈리는 아트적 터치의 피스도 대거 런웨이에 올랐다. 반인반수(!)를 연상시키는 질 샌더의 예술적 술 장식 드레스,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생전에 입은 화이트 원피스를 재구성해 만든 페티코트 드레스, 모델 카이아 거버가 입은 이음새 없이 입체적으로 재단한 발렌티노의 컷아웃 미니 드레스 등이 그렇다. 이번 시즌에는 미니멀한 클린 룩에서조차 당장이라도 파도가 몰아칠 것 같은 폭풍 전야의 으슬으슬함이 느껴진다.

알투자라의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단조로운 실루엣에 반해 일부러 구긴 디테일이 특징인데, 이를 입은 톱 모델 사샤 피보바로바의 히스테릭한 표정까지 더해 범상치 않은 스타일이 완성됐다. 웰던에서도 오버사이즈 튜브 톱 드레스 끝자락을 모델이 손끝으로 쥐고 걸어 나왔는데, 마치 이불을 돌돌 말고 나온 모양새처럼 보여 그것을 놓칠세라 괜한 긴장감이 돌았다.
알라이아의 보디컨셔스 드레스가 주는 관능, 이세이 미야케의 얼굴까지 가린 시어 드레스의 묘한 긴장감, 구찌의 밸런스, 아딤의 쾌락과 로에베의 위트까지, 화이트 원피스가 전달하지 못할 단어, 즉 메시지는 무엇도 없다. 그럼, 백문이 불여일견, 다음 화이트 원피스 20개 중 당신을 설명해주는 룩은 무엇인가? 

에디터
김지은
포토그래퍼
COURTESY OF GORUNWAY
디자이너
이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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