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가 날개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을 이번 시즌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칼라가 날개다’라고 고쳐 써야겠다. 목둘레를 따라 양쪽으로 날개를 펼치는 칼라의 존재감이 지금 정점에 이르렀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높게 솟은 부채 모양의 팬 칼라 대신 앙증맞은 피터팬 칼라가 달린 의상을 입었더라면 세계를 호령하던 위엄은 한풀 꺾여 보였을지도 모른다. 영화 <애수>의 로버트 테일러나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가 트렌치코트의 깃을 빳빳하게 세우지 않고 얌전하게 젖혔더라면, 애절한 러브 스토리도 강인한 남성미도 지금처럼 절절히 기억되지는 않았을 거다. 대한항공 승무원의 유니폼 칼라 디자인이 뾰족하게 솟은 스카프처럼 날카로운 모양이었다면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테고, 피에로의 목에 장난스러운 프릴 칼라를 달지 않았더라면 특유의 우스꽝스러움도 덜했을 거다.

칼라는 실루엣이나 색상, 소재만큼 강인한 흡인력을 발하는 디자인 요소는 아니지만 옷이나 그 옷을 입은 사람에게 미묘한 표정을 입힌다. 옷의 맨 위에, 얼굴의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는 특별함 덕분인데, 이번 시즌 그 기본에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운집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허리나 어깨 못지않은 매력적인 스타일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칼라에 디자인의 힘을 실은 대표적인 컬렉션은 루이 비통이었다. 페티시를 주제로 모래시계 실루엣의 아슬아슬한 시스루 룩을 선보인 루이 비통 컬렉션이 천박해 보이지 않았던 건 목둘레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 새하얀 칼라 때문이었으니까. 그 모양이 지나치게 뾰족하거나 과장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마치 핑킹가위로 둥글게 오려낸 듯한 단정한 플랫 칼라는 페티시에 정숙함을 드리우는 신선한 반전이 돼주었다. 남자가 같은 재킷을 면 티셔츠에 걸쳤을 때와 와이셔츠 위에 걸쳤을 때의 느낌을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전자가 더 세련돼 보일지는 몰라도 후자가 더 단정하고 격식을 차린 듯 보인다. 칼라는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부터 어떤 모양의 칼라가 어떻게 달렸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얼굴을 만든다. 그리고 이번 시즌 의상들에서 그 힘이 제대로 드러난다. 머지않아 옷 가게에선 이렇게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컬러도 아닌, 실루엣도 아닌 ‘둥근 칼라 달린 옷 좀 보여주실래요?’라고.

칼라 의상 즐기기
이번 시즌 루이 비통, 마크 제이콥스, 미우미우, 지방시, 안토니오 마라스 쇼의 모델들의 옷차림에서 칼라를 쓱 지워내면 금세 밋밋한 옷이 된다. 그만큼 칼라는 단순히 목에 달린 장식이 아닌, 옷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칼라의 디자인이 엄청나게 화려하거나 특별한 것도 아니다. 런웨이에서 칼라 달린 의상을 즐기는 몇 가지 쉬운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데, 칼라의 색만 달리하는 배색 효과가 가장 대표적이다. 시스루 옷과 대비되는 흰색의 라운드 칼라는 루이 비통 쇼의 요염한 모델들을 정숙해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을 일으켰고, 큼직한 어깨에 흰색이나 네이비 컬러의 큼직한 플랫 칼라를 양쪽으로 떼어내어 단 미우미우의 컬렉션은 1940년대 빈티지 스타일을 고루하지 않게 표현해내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동시에 넓은 어깨에 다른 색 칼라를 장식함으로써 미식축구 선수 같은, 어깨가 한결 좁고 세련된 느낌으로 부각되었다. 엄마의 옷장에서 영감을 받아 향수 짙은 컬렉션을 선보인 안토니오 마라스 쇼에서도 칼라의 배색 효과는 빛났다. 어쩌면 얌전한 시골뜨기 여자처럼 보이는 데 그쳤을지 모를 의상들은 끝이 뾰족하게 떨어지는 흰색 칼라를 단 덕분에 단정하면서도 도도해 보였다. 검은색 옷에 피에로 칼라를 연상시키는 흰색 주름 장식을 목에 두른 모델들을 캣워크에 세운 카르벤 쇼도 흥미로웠다.

칼라의 소재나 프린트를 다르게 조합해 좀 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든 쇼도 있다. 시스루 소재와 대비되는 검은색 새틴 소재의 칼라로 옷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은 지방시의 컬렉션은 고급스러운 동시에 엄격함을 유지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테일러드 코트는 풍성한 모피 칼라를 덧댐으로써 날렵함에 위엄까지 더했다. 잘록한 모래시계 실루엣의 마크 제이콥스는 도트 무늬를 드리운 앙증맞은 베레와 피터팬 칼라가 짝을 이루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사랑스럽게 연출했고, 돌체앤가바나 컬렉션은 몸판에는 호피 무늬, 시퀸 장식 등을 화려하게 연출하고 칼라 부분만 담백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대비 효과를 냈다. 나폴레옹 칼라에서 영감을 받은 큼직한 칼라를 단 코트로 겨울을 만끽한 버버리 프로섬과 높게 세운 하이 칼라에 코르사주를 장식한 모스키노 컬렉션, 장식적인 칼라로 쿠튀르적인 멋을 더욱 부각한 알렉산더 맥퀸 등 칼라를 주인공으로 한 쇼는 넘쳐났다. 이 컬렉션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번 시즌 칼라 의상을 즐기는 신선한 방법을 섭렵할 수 있다.

쇼핑은 이렇게
칼라를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실용적인 디자인이면 스타일링하는 데 더 요긴하다. 만약 흰색 셔츠 칼라만 사고 싶다면 남성 와이셔츠 가게를 기웃거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어두운색 계통의 의상에 액세서리처럼 연출하기 좋다. 가장 안전한 도전은 몸판과 칼라 부분이 서로 다른 색으로 대비된 디자인이나 가벼운 프린트가 들어간 디자인. 기존의 옷을 활용 할 생각이라면 클래식한 화이트 셔츠를 입고 니트 스웨터를 걸쳐 칼라의 멋을 살리는 방법도 괜찮다. 칼라의 모양을 결정했다면 자신의 얼굴형에 잘 어울리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아무리 멋진 칼라가 달린 옷이라도 어울리지 않거나 목이 답답하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니 칼라가 달린 옷을 쇼핑할 때는 직접 입어보고 칼라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착용감 등을 확인하자.

Shopping List

가을 신상품들 중 칼라가 멋진 옷을 골랐다.

1. 탈착 가능한 칼라가 달린 니트 스웨터는 95만8천원, 파비아나 필리피 (Fabiana Filippi). 2. 면 소재의 셔츠는 41만원, 푸시버튼(Push Button). 3. 양모 소재 코트는 97만원, 케이트 스페이드(Kate Spade). 4. 울 소재 톱은 가격미정, 미우미우(Miu Miu). 5. 면 소재 톱은 가격미정, 구호(Kuho). 6. 울과 아크릴 혼방 소재의 톱은 19만5천원, 폴앤앨리스 (Paul&Alice). 7. 실크 소재 재킷은 69만9천원, 미샤 (Michaa). 8. 케이프 칼라 블라우스는 8만9천원, 컬쳐콜 (Culture Call). 9. 오리가미 스타일의 칼라가 장식된 코트는 가격 미정, 이세이 미야케 (Issey Miyake).

얼굴 형태에 따른 칼라 고르기

칼라가 달린 옷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목이 답답해서, 얼굴이 커서, 목이 짧아서, 어깨가 좁아서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이런 고정관념을 조금만 버리면 이번시즌 새록새록 드러나는 칼라의 멋이 내 차지가 될 수도 있다. 얼굴형만 고려해도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

1. 달걀형 얼굴 어떤 옷도 잘 받는 달걀형 얼굴. 날렵한 V라인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싶다면 목선이 삼각형으로 드러나는 디자인을 선택하면 된다. 라펠 칼라나 숄 칼라처럼 목선을 깊이 드러내는 동시에 칼라의 라펠 부분은 클래식하게 디자인된 칼라는 달걀형 얼굴을 더 우아해 보이게 한다. 목둘레에 꼭 맞는 플랫 칼라나 라운드 칼라는 인상을 부드럽고 어려 보이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2. 동그란 얼굴 동그란 얼굴형이라면 얼굴이 더 동그래 보이는 라운드 칼라는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둥근 네크라인에 달린 둥근 모양의 칼라는 최악이다. 일반적인 디자인으로 꼽히는 삼각형 모양의 셔츠 칼라가 가장무난하며, 목선이 V자 모양으로 시원하게 드러나는 오픈 칼라는 동그란 얼굴을 어느 정도 날렵해 보이게 한다. 또 뒤쪽 깃은 높고 앞쪽 깃은 벌어진 나폴레옹 칼라처럼 큼지막한 칼라는 동그란 얼굴을 세련되게 변신시킨다.
3. 네모난 얼굴 턱이 각진 네모난 얼굴은 목선을 드러내는 것이 유리하다. 플랫 칼라처럼 목선에서 납작하게 접히는 칼라가 효과적인데 칼라의 모양이 둥글수록 네모난 얼굴형을 보완할 수 있다. 반면 높은 깃과 커다란 라펠이 달린 칼라는 피하는 것이 좋은데, 광대뼈까지 튀어나온 편이라면 인상이 강해 보일 수 있다. 날렵한 테일러드 칼라나 좁다랗게 떨어지는 숄 칼라는 인상에 도시적인 매력을 더하는 데 효과적이다.
4. 긴 얼굴 얼굴이 긴 편이라면 끝이 뾰족하게 떨어지는 디자인의 칼라는 무조건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핀 포인트 칼라처럼 과장되게 뾰족한 디자인은 얼굴의 길이를 칼라의 끝까지 연장시키는 착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긴 얼굴에는 부드러운 둥근 모양의 짧은 칼라가 잘 어울리며, 얼굴도 길고 목도 긴 편이라면 스탠드 칼라나 롤 칼라처럼 목선을 살짝 가리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에디터
    박선영
    포토그래퍼
    KIM WESTON ARNOLD, 안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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