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식사는 무엇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어야 하는 법. 건강한 실천을 절로 부르는 저속노화 식단의 변신.
단맛, 짠맛, 지방맛에 중독된 현대인. 정제 탄수화물, 초가공식품, 알코올 같은 자극은 신체의 노화를 촉진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0대 사망 원인 중 당뇨가 8위, 고혈압이 9위이고, 그에 따른 합병증인 심장질환은 2위를 차지했다. 젊은 층의 만성질환이 급증하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정희원이 제시한 ‘저속노화 식사’는 이런 노화를 늦추는 메커니즘적 특징을 가진 식단이다.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장수식으로 유명한 지중해식 식사와 고혈압을 예방하는 ‘DASH’ 식사의 장점만 모아 정리한 것.
‘MIND’ 식사라고도 하는 저속노화 식사의 핵심은 간단하다. 초가공식품, 단순당, 정제 곡물, 붉은 고기와 동물성 단백질을 줄이고 통곡물, 콩류, 푸른잎 채소를 충분히 먹자는 것. 기본 원칙만 지키면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저속노화 식사법을 보다 맛있게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푸드 전문가 4인에게 미식의 관점에서 바라본 저속노화 식단에 대해 물었다.
VEGE RICE
장진아 | 베이스이즈나이스 & 베지스튜디오 대표
식생활은 편하고 맛있고 즐거울 때 연속성을 가진다. 채소밥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채소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맛을 전하기 위해 탄생했다. 장진아는 개념적 요소의 틀 안에 갇히기보다 나의 몸과 식사에 관심을 갖고 정성스레 관리하는 데 집중하길 권한다. 그런 노력이 모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속노화를 실천하게 될 것. 최소한의 조리를 거친 채소 8가지를 식이섬유가 풍부한 100% 통곡물밥 위에 반숙란과 함께 올렸다.
모든 채소는 각 재료의 색과 질감, 식감, 향미를 끌어올릴 조리법을 찾아 요리했다. 아보카도와 부추는 생채처럼 무치고, 적양배추는 식초에 가볍게 절였다. 양념을 골고루 발라 직화한 미니새송이는 육류의 식감을 대신한다. 볶은 감자 옆 완두콩은 두부와 함께 버무려 부드러움을 가미했다. 사이사이 보이는 호박씨는 오독오독 씹히며 입 안에 고소함을 퍼트린다. 살짝 구운 오크라와 로즈메리 소금을 뿌린 방울토마토, 케일까지 자리하면 완성. 채소의 화려한 색감은 한데 어우러져 서로 긍정적 시너지를 낸다.
MIND COURSE
김민재 | 안다즈 서울 강남 조각보 키친 셰프
지중해 인근에 위치한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터키 네 국가의 특색을 담은 저속노화 코스 요리. 지중해 식단의 이점을 반영한 저속노화 식단의 개념에서 영감 받았다. 붉은 고기 대신 닭과 생선을 주재료로 삼았고, 영양의 균형을 위해 통곡물과 베리를 더했다. 핑크빛 레몬드레싱을 두른 도미 카르파치오는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블루베리와 라즈베리, 블랙베리가 고소한 곡물과 견과류, 치즈와 함께 뒤섞인 샐러드로 혀의 감각을 살려보길.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싶다면 부드러운 닭 육수에 삶은 닭고기와 각종 채소를 곁들인 치킨 포토푀를 맛볼 것. 구운 연어 주변으로 초록 채소를 다양한 형태로 자르고 꼬아 올린 터키식 연어 스테이크는 시각적 재미까지 선사한다. 모든 플레이트에는 향신료를 적절히 사용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메인 재료의 맛과 향을 끌어올렸다. 샐러드에는 시트러스 향이 나는 사라왁 후추를 뿌려 마무리했고, 포토푀에는 블랙 트러플을 얇게 저며 가니시로 올렸다. 그 외에 딜, 레몬바질 같은 향긋한 허브도 한가득.
TOMATO TOFU ROLL
최윤기 | 점점점점점점 메인 셰프
최윤기는 제철 식재료가 품은 계절의 자연스러움이 음식에 묻어날 때 비로소 건강한 음식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음식은 우리 몸과 에너지, 넓게는 지구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 그렇기에 제철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채식 요리로 각각의 한 끼를 가치 있게 섭취하기를 제안한다. 이런 식사를 지속하다 보면 저절로 저속노화의 길을 걷게 될 것. 일본의 네기도로 초밥에서 착안한 토마토 두부말이밥은 다채로운 식감과 풍미를 지녔다.
겉면을 살짝 익힌 폭신한 두부를 잡곡밥과 함께 김으로 말고, 새콤한 토마토 절임을 올렸다. 대저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데쳐 껍질을 벗기고 잘게 잘라 직접 끓인 채소 간장과 들기름, 쪽파, 통들깨와 함께 숙성해 과육의 아삭함을 최대한 유지한 것이 특징. 최대한 열을 가하지 않고 조리해 재료가 가진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LENTIL SALAD
노진주 | 홀썸모먼트 대표
식단 2만여 가지를 탐구한 노진주가 찾은 건강 식단의 공통점은 간결하다. 조리하지 않은 자연 식품을 직접 요리해 즐겁게 먹기. 이 과정은 건강한 음식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던 입맛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러니 음식을 고를 때 내 몸과 잘 맞는 지속가능한 식단인지 우선적으로 고려하길. 생활습관으로 자리매김한 나만의 식단은 어느새 우리 몸의 노화를 늦출 거다.
렌틸콩을 활용한 샐러드와 수프, 라이스 볼을 순서대로 섭취하면 저속노화 식단의 핵심인 혈당 관리에 용이하다. 잎채소 위에 올린 렌틸콩과 병아리콩은 오븐에 구워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콩의 식감을 바삭하게 만들었다. 토마토, 셀러리, 당근, 양파를 고단백의 렌틸콩과 함께 뭉근히 끓인 수프는 영양의 균형을 잘 맞춘 포만감 있는 요리다. 렌틸콩과 현미, 백미를 혼합해 지은 밥을 70~100g으로 뭉쳐 만든 라이스 볼은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좋은 선택지. 출출할 때 간식 대용으로도 부담 없다.
- 포토그래퍼
- 류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