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오일의 희망
땅의 전유물이라 여기던 식물성 오일이 물속에서 자란다. 조류 속에서 다시 태어난 오일의 정체.
대체 식용유의 존재를 처음 마주한 건 지난봄 방문한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다. 덴마크, 영국, 멕시코, 뉴질랜드, 인도 등 12개국에서 모인 프레스들은 식탁에 둘러앉을 때마다 독특한 미식 경험 보따리와 그로 인해 갖춰진 취향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전했다. 구성원 중 3분의 1 이상이 채식을 지향하는 덕에 각국의 다채로운 채식 다이닝 소식도 흥미로웠다. 여러 일정 속에서 식탁을 가장 뜨겁게 달군 건 한 레스토랑에서 뿌듯한 표정으로 메뉴를 소개하던 셰프의 입에서 지속가능한 오일(Sustainable Oil)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을 때다. 세계 ‘맛잘알’들이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대체 오일을 활용한 요리를 혀로 열심히 탐구한 기억이 선명하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을 비롯한 각종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오일이 어떻게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일까? 더 놀라운 사실은 대체 오일이 이미 프리미엄 푸드 마켓 에러헌(Erewhon)과 회원제로 운영되는 스라이브 마켓(Thrive Market)에서 판매되며, 버거 전문점 쉐이크쉑, 합다디에서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를 놀라게 한 지속가능한 오일의 정체는 바로 배양 오일(Cultured Oil)이다. 이 오일은 식물과 과육의 씨앗에서 추출하는 오일의 패러다임을 엎고 미세조류를 활용한다.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작은 미세조류를 통제된 환경의 수조에 넣고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당을 공급한다. 이 과정을 거친 세포를 발효하면 해조류는 며칠 안에 설탕을 식용류로 전환한다. 이후 압착 과정을 거쳐 기름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조류를 활용한 오일이 식용유의 ‘대체’로 불리는 이유는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물과 토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대체 오일로 대표되는 브랜드인 제로 에이크 팜(Zero Acre Farms)은 해조류 오일이 대두유 오일 생산 대비 86%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물 사용을 83% 줄이며, 90% 적은 토지를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생산에 필수적인 토지와 물, 비료 없이 물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다. 숲을 태워 밭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야생동물이 터전을 잃는다. 전 세계 팜유 유통량의 8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은 이미 상당 부분 파괴된 실정이다, 배양 오일은 탄소 발생 역시 불가피한 곡물의 성장과 비교해 확실히 친환경적인 식품 산업이다. 환경에 착하고 지구에 이로운 지속가능한 오일의 맛은 어떨까?
지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평범했다’ 정도다. 신선한 올리브유가 주는 감동도 조류 특유의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셰프가 미식의 영역에서 배양 오일의 특별함으로는 맛의 중립성을 꼽는다. 주연보다는 조연이 되길 택하는 배양 오일은 두드러지는 맛과 향이 없어 오일의 기능을 하되 다른 재료를 빛나게 한다. 구이, 로스팅, 튀김, 스무디, 커피 등 활용 범위가 무한하고 일반 오일보다 약 38℃ 높은 279℃의 발연점은 고온에서 향과 맛이 변할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도 셰프들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다. 2021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를 채식 기반의 레스토랑으로 전환한 뒤에도 3스타를 유지하는 세계적인 셰프 다니엘 흄(Daniel Humm) 역시 배양 오일의 가능성을 보고 대표적인 배양 오일 브랜드 알지 쿠킹 클럽(Algae Cooking Club)의 요리 책임자로 함께하고 있다. 알지 쿠킹 클럽은 배양 오일의 맛에 대해 가볍고 중립적이며, 약간의 버터 풍미가 난다고 소개한다. 소믈리에 수준의 미각을 가졌다면 마지막에 헤이즐넛 향을 느낄 수도 있고, 오일 특유의 미묘한 텁텁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쯤에서 드는 의문점이 있다. 배양 오일에 필수적인 당의 원료인 사탕수수의 존재다. 세계에서 수확량이 많은 작물 중 하나인 사탕수수는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높지만 여전히 생산과정에서 충분한 물이 필요하다. 기존 오일 대비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100% 친환경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이 밖에 식용유, 올리브유, 대두유 같은 일상적인 오일로 대체되기까지는 치명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구매를 머뭇거리게 하는 가격이다. 평균적으로 473ml 기준 20달러에 달하는 가격은 카놀라유, 포도씨 오일, 올리브유 등 일반 오일의 몇 배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2억 톤 이상의 식용유가 소비되는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배양 오일의 보편화를 지금 당장 기대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발견과 가능성, 미슐랭 셰프들의 적극적인 활용은 분명 반가운 뉴스다. 지구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미식의 다양한 가능성과 실험, 확장은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와 꿈을 펼쳐줄 새로운 선택지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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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그래퍼
- 현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