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는 ‘MZ’지만 을지로보석에서 ‘할머니의 손맛’을 낸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속 ‘장사천재 조사장’ 조서형의 웰니스 라이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으로 요리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기분은 어떤가?
감동이었다. 요리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이면 매 순간 감동의 연속이구나.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마지막 화를 볼 때 진짜 울었다. 4개월이 넘는 긴 여정을 동고동락한 셰프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다. 재료에 대한 고찰, 덜어냄의 미학, 조리법의 활용 같은 것들.
많은 배움과 깨달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이름을 건 요리’를 주제로 에드워드 리 셰프와 권성준(나폴리 맛피아) 셰프가 겨룰 때, 에드워드 리 셰프가 ‘이균’이라는 한국 이름을 밝히며 한국 음식과 문화에 담긴 정체성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한식 요리사로서 정체성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한식의 본질을 잊지 말자, 너무 끼 부리지 말자.
한식 요리사에게 한식의 본질은 뭔가?
계절에 따른 재료의 맛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여름이면 제철인 민어나 갯장어(하모)를 먹고, 겨울이면 복어나 성게를 먹는다. 같은 된장이라도 봄에는 갓 가른 햇된장으로 나물을 무쳐 맛을 내지만, 겨울에는 묵은 된장으로 묵은지를 지진다. 미식을 통하면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재료의 퀄리티가 중요한 이유다.
신선한 제철 재료와 그 쓰임을 연구해왔다. 10년 넘게 일하면서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나?
스스로에게, 손님에게 정직하자. 장사는 판 만큼 이득을 본다. 부끄럽게 번 돈은 안 쓰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어릴 때 엄마가 의류 사업을 하셨는데, ‘남의 돈 벌려면 항상 정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긴 시간 요리를 하면서 그 생각을 고집하다 보니 사람들이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다.
진심이 통하는 요리를 찾아온 손님에게 음식을 내기까지 어떤 생각을 하나?
내 요리를 찾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기대감을 채우도록 시즌마다 달라지는 음식을 접시에 오롯이 담는다. 찬 바람이 불면 따뜻한 사케랑 오뎅을 내놓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시원한 물회를 대접한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재료 역시 변화의 폭이 크다. 기후로 인한 재료의 변화에는 어떻게 대처하나?
올해 유독 변화가 컸다. 여름철엔 민어와 갯장어(하모)를 많이 쓰는데, 올여름이 너무 더워서 생선 살이 엄청 물렀다. 그래서 생선의 무름이 느껴지지 않게 식감 좋은 채소 무침이나 해초류를 곁들였다. 간은 입맛을 끌어올릴 수 있게끔 일부러 강하고 새콤달콤하게 했다.
맛깔나는 음식을 집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소스를 잘 활용해보길 추천한다. 보통 간장 하면 양조간장만 생각하는데, 국간장도 있고 멸치액젓이랑 섞은 멸간장 등 종류가 다양하다. 나물 무칠 때는 요리 에센스랑 멸간장을 1 대 1 비율로 섞어 버무리면 웬만큼 맛있고, 좋은 기름을 써야 한다. 나도 일주일에 한 번 방앗간에 가서 참기름, 들기름, 참깨를 받아 온다.
손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95년생 MZ다. 장사할 때 젊음이 주는 장점과 단점은?
장점은 실수가 용납되는 것.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단점도 어리니까 걔가 뭘 하겠어? ‘어리니까’ 포용의 범위는 넓고, 칭찬의 범위는 좁다. 어려도 실수 없이 엄청난 걸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부단히 애쓴다.
그렇게 애쓰며 마주한 어려움도 있었나?
올해 초, 번아웃이 왔다. 일은 하고 있지만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이유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없어졌다. 손님한테 내가 만든 음식을 내놓고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전부 미루고 10년 만에 처음 삿포로로 한 달간 휴가를 다녀왔다. 일 생각을 지우려고 백화점 식품관도 안 가고, 소스나 술도 사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결국 냄비 사서 스키야키를 만들어 먹긴 했지만.(웃음)
한 달간의 휴식기를 가졌는데 어땠나?
첫 일주일은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너무 재미있더라. 스키도 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내가 이렇게 노는 걸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스무 살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교육관 때문에 진로를 빠르게 정해 쉬지 않고 달렸다. 열심히 일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삿포로에 다녀온 후로는 앞만 보면서 달리기보다는 가끔 뒤돌아보고 스스로를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전과 크게 달라졌나?
예전에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방법을 몰랐다.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12시까지 마감을 하고 새벽 2시에 잠들었다. 지금은 몇 가지 규칙을 정하고 내 삶을 지키려 노력한다. 두 달 전부터 매일 아침마다 1시간 30분 정도 러닝을 하고, 주말이면 모든 업무를 제쳐두고 서울에서 벗어난다. 서울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일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 조금 생각이 많아진다 싶으면 일단 걷고, 매일 밤 자기 전 15분 정도 명상도 한다. 직원들과는 오전 10시 전에는 전화하지 않기, 오후 11시 이후로는 카톡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나?
음식을 만들 때의 기분이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짜증나면 일하기 싫어지지 않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요리해야 그 요리를 맛보는 손님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출근 전 되도록 부정적 감정은 비워내려고 한다. 음식할 때 멘탈 케어는 매우 중요하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다. 미식으로 삶의 안정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정확히 찾기. 배달앱을 켜서 메뉴를 고르기 어렵다면 단순 허기를 채우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행위는 찰나의 행복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에 맞는 음식이 확고해야 그걸 먹었을 때 만족감도 높다. 어떤 음식이 마음에 들면 다양한 방법으로 최대한 많이 먹어보면서 탐구하길 추천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미식은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식은 곧 행복이다. 맛있는 거 먹는 게 행복이고, 행복이 맛있는 걸 먹는 거다. 그래서 자꾸 어딘가로 향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 너무 설렌다.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먹을 게 또 있어? 이번 주말에는 여수에 간다. 바다가 차가워지는 시기인데, 여수 물고기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음식을 찾아 전국을 여행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앞으로 계속 음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다. 사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하면 질리기 마련인데, 새로운 메뉴를 찾다 보면 음식의 무궁무진함을 알게 된다. 배울 것도 많고. 시장이나 식당에 가서 이모님이나 할머님한테 말을 걸 때는 나도 모르게 넉살이 좋아진다. “이모님,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저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좀 보여주시면 안 돼요?” 그러면 신나서 알려주신다.
사업가 입장에서 웰니스적 라이프스타일은 뭐라고 생각하나?
내 마음을 적절히 환기시켜 행복을 찾는 것. 내가 행복해야 음식도 더 맛있게 할 수 있고, 여행을 가서도 더 많은 걸 보고 즐길 수 있다. 일을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무언가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잘 쉬려고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사업적으로는 2025년 3월 론칭을 목표로 반찬 큐레이팅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새로운 고깃집 브랜드도 계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 음식으로 계절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쉬는 법도 알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알았으니 이제 누군가에게 음식으로 계절을 온전히 담아내는 사람으로 기억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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